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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낯선 이름의 병 첫번째, 흉선종

면역기관 흉선에서 발견된 종양

by Joyce 노현정
응급실 첫 방문

동생이 나를 병원의 응급실에 데려갔을 때, 이미 나는 숨을 쉬는 것이 힘들고 창백한 얼굴에 눈을 뜨기 어렵고 다리를 절룩이기 시작했다. 처음 방문했던 미국의 응급실은 낯설고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의료진들의 배려 또한 느껴졌다. 고통을 부여잡으며 절뚝거리고 있는 내게, 응급실에선 휠체어를 내어주겠다 했지만 나는 그것을 습관적으로 괜찮다며 거절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는 도움 받아도 되는데, 도움을 구해야 할 때는 도움을 요청해도 되는 건데. 괜찮다는 대답을 달고 사는 내가 어쩌면 그렇게 큰 병을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픈 시간을 지나며 나의 모습을 많이 뒤돌아 보았다. 여동생의 도움으로 힘겹게 수속 과정을 마친 후 응급실에서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몸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꼼꼼히 검사한 후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바쁜 응급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백인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나의 증상들은 어지러움, 힘이 없음, 눈을 잘 뜨지 못함, 극한 메스꺼움, 온몸의 근육통 등이었고 증상을 들은 의사 선생님은 막막해했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밤새 새벽에 가슴이 답답하여 잠을 잘 수가 없어 소파에 기대앉아 겨우 잠이 들었다고 추가설명을 드렸는데, 그 점을 캐치한 의사 선생님은 가슴의 Xray를 찍어보자고 했고 나는 방사선과로 옮겨졌다. 친절하게 농담을 전하는 X-ray 담당자들의 small talk에, 고통과 두려움에 쌓인 나는 평소와 달리 여유 있게 대화를 응답하지 못하고 애써 웃기만 했다. 차가운 X-ray를 찍은 후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응급실의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X-ray 결과를 살펴본 의사 선생님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얼굴로 설명하시길, 내 가슴에 커다란 덩어리 (Mass)가 있으니 위암이 예상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CT를 찍어보자며 나를 인계했다. 위암이라니. 큰 병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나는 소화도 잘하고 음식들을 잘 먹어왔는데 내가 정말 위암을 진단받는 건가. 내가 겪고 있는 통증과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CT를 찍으러 옮겨지는 그 찰나와 기다리는 시간 동안 참 멀쩡한 척을 해보려 해도, 병원이 너무 추웠던 걸까, 나의 손발과 입술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흉선종 진단

긴장되는, 아니 사실은 많이 두려운, CT 결과를 듣기 위한 짧은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쪽 복도에서 걸어 나오는 훤칠한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위암이 아니라고 했다. 그 덩어리는 심장과 폐 사이 발견된 흉선종이고 세포를 떼어내 보면 알겠지만 암은 아닐 것이기에 그냥 종양덩어리를 제거하면 된다고, 너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목구멍 안으로 세포를 떼어내는 그 과정이 조금 고통스러울 뿐, 위암이 아니라 너무 다행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기쁨에 나도 같이 안도했다. 20대 중반에 커다랗게 자랐던 양성종양도 한국에서 개복수술로 제거하고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이 종양도 그것과 별반 차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흉선종, 이름도 처음 듣는 낯선 종양. 하지만 이것은 또 한 번의 수술일 뿐 나는 앞으로 잘 이겨낼 것이라 믿으며, 비록 내 몸의 온갖 통증들은 나아진 것 없이 여전했지만 응급실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밤, 또다시 나의 씩씩함을 누가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지 못한 새로운 증상이 찾아왔다. 편도선이 심하게 부은 것 마냥 목이 심하게 부은 것 같은데, 아픈 통증은 없었다. 왜 그럴까, 몸이 좋지 않아 목이 조금 부은 걸까? 그런데 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점점 침을 삼키기가 어렵고 숨을 들이마시기도 쉽지 않은 것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도 몸에 점점 어둠이 엄습해 오는, 참 불편하고 꺼림칙한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흉선종으로 인해 합병증으로 발생한 중증근무력증의 증상으로, 내 몸 특히 호흡기관들의 근육들이 힘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중증근무력증이 너무나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그날로부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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