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선종이 불러온 합병증, 근육에 힘이 빠지다.
호흡을 하는 근육이 힘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참 무서운 일이다. 믿을 수 없지만 중증근무력증은 바로 그런 끔찍한 일이 가능하게 만드는 질병이었다. 흉선종이라는 종양을 떼어내면 이 고비도 순탄히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흉선종(thymoma)은 중증근무력증 (myasthenia gravis)이라는, 더더욱 낯선 이름의 합병증을 가져왔다.
흉선종을 진단받았지만 수술받고 금방 회복하겠다 다짐했던 그날밤, 목에서 침 삼킴, 음식 및 물 삼킴이 어려워지는 것을 천천히 경험하기 시작했다. 하체에서는 이상하리만큼 발이 차갑고 피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한 감각에 시달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다리의 힘을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이었다. 지나고서 보니 응급실을 갈 때 절뚝거렸던 것도 다리 근육이 무력해져 발란스를 잃었기 때문이었고, 9월 13일 혀가 구겨진것 또한 중증근무력증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 증상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오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병일까
흉선종은 심장과 폐 사이에 위치한 흉선이라는 림프기관에 생긴 종양이다. 흉선은 면역 시스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다가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퇴화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하는데, 나의 경우 이 흉선에 종양이 생겨 크기를 점점 키워가고 있었다. 9월 23일 응급실에서 흉선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종양의 크기는 약 5cm였다.
흉선종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자가항체 (autoantibodies)를 만들어내어 중증근무력증이라는 합병증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름이 알려주는 것과 같이 이 병의 증상은 근육이 무력해지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근육 자체에는 이상이 없지만, 신경과 근육사이의 신호전달이 방해받아 근육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흉선종에서 생성된 자가항체가 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차단하면서,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달되는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근육이 힘을 잃게 된다.
내가 앓는 병이 중증근무력증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 계시는 엄마 덕분이었다. 그 누구도 나의 상황을 진단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한국에서 마음 졸이시던 엄마는 여동생으로부터 나의 힘든 증상들을 전달받으며 무척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셨던 듯하다. 우리 엄마 - 사실은 컴퓨터를 잘 못하시는데, 핸드폰으로 열심히 검색하여 찾아내신 기사가 바로 "흉선종이 발견될 경우 합병증으로 중증근무력증을 앓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아픈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님의 절박한 마음은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내었다. 시각을 다투며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나에게 너무도 중요한 정보를 보내주신 것이다. 지난 23일 낯선 이름의 흉선종을 진단받았을 때만 해도 병원의 그 누구도 중증근무력증을 언급한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가 보내주신 기사를 읽어보니 비로소 내 몸상태가 이해가 되었다. 이런 병이 있구나, 내 흉선에 생긴 종양이 이런 병을 불러들였구나. 그럼 이제 나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다리의 힘이 빠져버렸다
미국에는 urgent care라는 곳이 있다. 예약 없이 바로 방문해 필요한 진료를 받을수 있기에, 담당의사를 만나기까지 기다리기 어려울 때, 또는 병원들이 문 닫은 후 밤늦은 시간 급히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이다. 심각한 중증이 아니어도 방문 가능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일반 대형병원의 응급실과는 또 다른 곳이다. 응급실에서 퇴원한 다음날이었던 9월 24일, 엄마가 보내주신 글을 읽고 나는 내가 중증근무력증을 앓고 있음을 인식했고 증상이 점점 괴로워질 것 같아 마음이 두려웠다.
저녁 8시경, 미국에서 나를 엄마처럼 돌보아주시는 이모, 여동생과 함께 urgent care라도 다녀와야겠다 싶어 서둘러 차에 올라타던 순간 - 갑자기 멀쩡했던 내 몸이 대나무, 아니 전봇대가 넘어가듯 뒤로 꽈당하고 넘어졌다. 내 발이 무력해지면서 내 몸을 지탱하지 못한 것이다. 나의 발은 마치 남의 발 마냥 내 뜻대로 할 수 없었고 나는 그대로 아스팔트길에서 뒤통수를 바닥에 찧으며 넘어졌다. 내 발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수 없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그저 밸런스를 잃은 한 번의 실수라고 스스로 되뇌었다 - urgent care를 다녀오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내 몸의 급격한 변화를 부정하며 나를 내 의지로 살릴 수 있다 믿었다. 나는 그저 긍정적이었고, 중증근무력증을 너무도 몰랐다.
미국 살면서 처음 가보았던 urgent care에서는 중증근무력증에 도움이 된다며 스테로이드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목과 다리의 힘 빠짐 증상에는 도움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밤부터 나는 온몸에 통증과 함께 중증근무력증의 무시무시한 증상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9월 23일 응급실에서 알려준대로 나는 흉선종 제거 수술을 준비하기 위해 의료진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다음 진료일을 기다리기엔 내 몸이 너무나도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