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못할 때
세상에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상황들이 많다. 좋은 일, 기쁜 일로만 드라마 같으면 좋겠는데 슬픔도 아픔도 똑같이 우리의 삶에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찾아온다. 내게는, 이 병을 만났던 그때가 그랬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며 결혼을 준비하던 나는, 그해 9월 13일 혀가 구겨진 이후 극심한 통증 속에 9월 23일 흉선종을 발견했고 9월 24일에는 다리를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 9월 25일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증상을 겪게 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질병과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겪은 고통보다 더한 아픔을 겪으셨거나 겪고 계시는 분들이 지금도 하루하루를 이겨내시는 중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아픈 시간을 겪으며 병을 앓는 많은 분들을 떠올렸다. 특정한 대상이 없어도 - 병의 이름이 무엇이든 - 힘겹게 투병하는 모든 이들을 떠올리며 조금 더 공감하게 되었다. 아픔을 기록하는 나의 글이 병마와 싸우는 분들께 혹시라도 불편함을 드리기보다는 부디 공감과 응원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약혼자는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떨어진 거리 LA에서살고 있었다. 내가 아프기 시작한 뒤로 그는 늘 나를 보러 왔고, 나는 점점 병들어 가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집 앞에 왔다고 약혼자가 문을 두드리면, 나는 아픈 내 모습이 속상해서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며 고집부리고, 약혼자는 그냥 얼굴만 - 내 상황이 어떤지 얼굴만 보고 돌아가겠다고 청한적이 많았다.
호흡곤란이 시작되다.
9월 24일 밤 urgent care를 가는 길, 다리의 힘 빠짐으로 꽈당 크게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몸상태가 그러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9월 25일, 그날도 약혼자는 나를 보러 왔고 부엌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있었다. 나는 약혼자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조금이라도 덜 아픈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내 방에서 스스로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의지로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갔는데, 그 순간 내 다리가 지난밤처럼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내 몸은 하필 closet 방향으로 쿵 넘어졌다.
closet의 큰 유리가 와장창 깨어졌다. 그 소리를 듣고 약혼자가 바로 달려왔지만, 너무 무섭고 당황한 감정 속에 호흡이 흐트러진 나는 숨 쉬는 것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들숨날숨이 되지 않는 상황. 숨을 쉬려할수록 내 목에서는 짐승 같은 소리만 흘러나왔다. 처음 겪는 호흡곤란은 너무 끔찍했다. 내 옆에 있는 약혼자와 마침 나를 보러 달려오신 이모도 나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내가 다시 호흡을 되찾고 다시 안정될수 있었는지, 지금의 나는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9월 26일, 극심한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에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응급실에 두 번째로 실려갔다. 사람이 꽉 찬 응급실에 빈 간이침대조차 없어 몇 시간의 기다림 끝에 겨우 한자리를 차지하고 봐도, 나의 고통에는 특별한 해결책이 없었다. 너무 아픈 머리를 검사하려 MRI를 찍어보았는데 다행히 뇌는 깨끗했다. 그저 고통스러워하는 나에게 병원은 모르핀 주사를 놓았다. 내가 앓는 병이 중증근무력증인듯하다고 호소하여 신경과 의사를 요청했으나 의사 선생님과 만나기까진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중증근무력증 확진
4시간의 기다림 후 내 또래인듯한 인도계 의사를 만났고 중증근무력증이 맞다고 확인은 받았지만 당장 병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신경과 의사는 자신이 처방하는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면 내가 금세 나아져 일상생활은 가능할 거라고 했다. 나는 너무 살고 싶었고 그의 말이 맞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린 나는 그날 응급실에서 정신을 잃었다. 나를 보호자로서 지켜보시던 이모가족, 외삼촌 가족, 여동생은 나를 입원시키기로 결정하고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상황이 많이 급박하다고 연락을 취하셨다. 미국 병원에서의 첫 입원이 응급하게 진행되었다. 고통과 근무력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나는 사실 스스로 참을성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다. 엄살도 잘 부리지 않고 아픈 것을 참 잘 참는다. 그런데 이 병들을 만나고선 그 통증을, 온몸에 퍼진 그 무력함을 이겨내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폐와 심장 사이에 위치한 흉선종은 내 몸을 공격하는 자가항체를 뿜어내는 공장이나 다름없었다. 입원첫날 밤새 겪은 통증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메스꺼움과 어지러움, 심장이 타는 듯한 느낌, 각종 근육통등의 통증은 알고 보니 가슴속에서 급속히 자라는 종양으로 인한 아픔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흉선종이 급격하게 커질수록 자가항체는 무섭게 늘어나 중증근무력증 증세는 더욱 심각해져 갔다. 내가 근육에 힘이 빠지는 병을 앓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잠시 팔다리를 못쓰는 거겠지, 두려워하지 말자' 며 담담했다.
하지만 호흡근육에 힘이 빠지고, 음식은 커녕 물 한모금 삼키는 것조차 어렵고, 눈꺼풀의 힘까지 빠져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니 이것은 차마 상상하지 못한 삶이었다. 다리가 힘이 빠져 계속 넘어지고 결국엔 한걸음도 제대로 걷지못해 휠체어에 앉아야 했다. 눈 근육에 힘이 없어지니 햇빛을 느끼는 것이 힘이 들어 나의 병실은 깜깜하게 커튼을 쳐야 했다. 눈동자 또한 힘을 잃어, 내 두 눈은 점점 초점이 맞지 않아 졌기에 거울로 보는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힘이 빠진 근육 때문에 내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작아졌다. 호흡이 어려우니 잠을 들 수도 없었다. 잠이 들면 얕은 호흡을 의식적으로 유지할 수가 없어 바로 숨이 막혔기에, 나는 살기 위해 잠들지 못하는 자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숨쉬기, 눈 뜨기, 잠자기, 먹기, 말하기, 걷기 - 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 해내기 어려운 행위가 되어버렸다.
9월 23일 흉선증 발견에 이어 사흘 만인 9월 26일 중증근무력증 진단이었다. 혀가 구겨진 후 불과 2주 만에 나는 무시무시한 병 두 가지를 몸 안에서 발견했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듯한 병마는 무서운 기세로 내 몸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