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하루에, 감사
삶은 참 찬란하다. 어김없이 뜨는 아침햇살에 나는 당연한 듯 눈을 뜨고, 분주한 일상이 지나 하루가 마무리되면 어느새 찾아온 밤에 나를 맡겨 휴식과 잠을 청한다. 365일 참으로도 꾸준하게, 내 삶은 살아있는 나에게 새로운 하루라는 기회를 선사하며 찾아온다.
우리의 신체는 참으로 신비로운 존재임을, 나는 병을 앓고서야 진심으로 깨달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감각과 기관이 하나로 이어진 나의 몸, 하나의 유기체는 내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히 나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나의 호흡은 평탄히 쉬어지고 애쓰지 않아도 맛있게 삼켜지는 음식은 내 몸의 영양분으로 쓰인다.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건강한 자가 누릴 수 있는 감사한 자유이다.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을 때,건강했었을 때의 나는 하루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사실“몇만가지" 였음을 - 나는 병을 앓기 시작한 후에 절절히 깨달았다. 매일 아침 안정된 호흡 속에 자연스레 두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하루를 맞이하는 것은 너무도 귀한 일인데 나는 몸이 그토록 아프고서야 매일 하루하루가 반짝거리고 있음을 알았다.
잃고서야 깨달았다
흉선종과 중증근무력증을 진단받고 하루아침에 나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음식 한 숟가락은커녕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어려워 빨대를 꽂아 아주 천천히 물을 빨아들였다. 나를 위해 누군가가 정성스레 만들어주시는 죽을 한 숟갈 한 숟갈 뜨는 것도 힘이 들었고, 영양분 섭취가 어려우니 팔에는 늘 링거바늘을 꽂고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 온몸의 감각을 모아 호흡을 놓치지 않고자 의도적으로 애를 써야 했다. 하루에 3번씩 수십 알의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약을 삼키는 것도 힘이 들어 나는 어린아이처럼 약 먹기를 싫어했다. 나의 눈은 눈꺼풀의 힘이 빠져 더 이상 반짝반짝 눈을 뜰 수 없기에, 책과 텔레비전을 못 보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힘이 들었다. 게다가 웃는 것도 근육에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새삼스럽게 슬퍼하며 인지했다. 중증근무력증 때문에 목소리가 잘 않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흉통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웃는 것도 나에게는 힘겨운 일이 되었다. 왜 나는 호흡하는 기쁨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보는 것을, 그들과 함께 소리 내어 웃는 것의 소중함을 그제야 절절히 깨닫게 된 걸까.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 삶에서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기 전의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실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건강한 몸을 가진 내가 해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모든 행위와 일상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아프기 전의 나는 정말 가슴 가득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늘 먼 미래를 쳐다봤다. 다가올 나날들을 준비하느라 바빴고 오지 않은 날들을 계획하느라 현실에서 기뻐하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참 많이 놓쳤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목표한 것들을 해내기 위해 나를 수없이 채찍질했고 근심하며 욕심내기 바빴다. 잠을 줄이며 내가 해야 할 일을 더 매달렸고 배만 고프지 않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유학생활 내내 건강한 식단은 생각지도 않았다. 내 몸이 건강한지 내 마음이 평온한지를 먼저 살폈어야 했는데, 현실의 나를 돌보기보다는 너무 먼 미래만 쳐다봤다.
그리운 일상
아프고 나서 가장 그리웠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었다. 음식을 삼키는 연하작용이 어려워지니 한 숟가락 한입한입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키는 것이 내게는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고, 그래서 식사시간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너무도 약해진 내 몸은 옆에서 누군가 소리만 내어도 근육발작이 일어나고 목이 막혀버렸기에, 내가 죽을 한입 한입 먹을 때는 나의 안전한 식사를 위해 모두들 숨을 죽이고 떨어져 있어야 했다.그래서 그때의 나는 가족들과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같이 마주 보고 앉아 웃으며 밥 한 끼 함께 먹어보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원이었다. 약혼자와 함께 결혼을 준비하면서 조금이라도 살을 빼겠다며 먹고 싶었던 떡볶이를 야식으로 먹지 않았던 어느 날이, 그렇게도 아쉽고 그리웠다. 몇시간을 친구와 수다 떨수 있는 힘도, 원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리서치하는 에너지도, 모두, 모두, 소중했다.
이런 소중한 일상의 행복을 아파보기 전에 하나하나 깊게 누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하루 특별한 일이 있지 않아도, 내손으로 딱히 성취한 것이 없다 해도, 매일매일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야 할 것들이 삶 속에 켭켭이 있다. 구겨진 혀를 발견하기 전만 해도 나는 못 먹을 음식이 없었고 내 두 발로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늘 누릴 수 있는 순간순간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 해내야 할 것들을 떠올리며 그날그날 누려도 될 행복을 훗날로 미루었다. 몸이 아파 고통스럽고 무력해질수록 일상의 하나하나가 너무도 그리운 나날이었다. 그렇게 아파보고서야 알았다. 건강, 우리는 우선,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 보고 느낄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삶을 하루하루 누려야 한다.
그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 나는 너무 아팠지만 꼭 살아나겠다고 다시 돌아가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신앙이 없던 나였지만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리고 고통스러워도 이렇게라도 살아있을 수 있음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 시간들도 분명 나에게 이유가 있는 시간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