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통장잔고로 행복하지 않았다
돈 벌었던 얘기의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절대 통장의 액수로 행복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누구에겐 큰 돈일 수 있고 또 누구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처음 벌어보는 큰돈이 처음엔 신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존감이 엄청 올라간다거나 특별해 보인다거나 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자신이 의아하기도 했다. 열심히 돈 벌려고 하는 마음이 동기부여가 됐다면 힘든 것도 더 참고 더 열심히 일할 텐데. 그러나 나는 ‘보상’으로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처음 스타트업을 했을 때 시애틀에서 작은 피칭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신 부부의 집에서 머물렀었는데 비즈니스 애널리스트 셨던 남편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Millionaire 까지는 다 똑같아. Billianaire 가 아닌 이상. 생각해봐, 그 정도 벌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보는 눈이 달라지면 스스로와 혹은 자식들에게 투자하고 쓰는 씀씀이가 달라지겠지. 애들 Ivy League 보내고 나면 통장에 남는 잔고는 비슷해.”
빨리 벌기는 했지만 돈 잘 버는 프리랜서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아직 그러기엔 더 펼칠 수도 있는 나의 가능성이 너무 아쉽지 않나. 지금 나이에 통장에 몇 천만 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과연 나에게 큰 의미가 있을까. 차라리 잃어보고, 투자해 보고, 써보기도 하면서 돈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20대 중반의 나에겐 더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돈에 대해 가장 크게 만족한 부분도 있다. 내가 하려는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이 말은 하루에 4-5번의 미팅이 있을 때 택시를 타고 이동해도 괜찮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싶을 때 거리낌 없이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상 속에서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소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편리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딱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든다는 것
그럼 있다가 없기도 하는 돈 말고 내가 가장 크게 얻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많은 것이 있지만 그 모든 걸 종합해서 말한다면 바로 나라는 사람의 대체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말은 내가 만드는 디자인이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대체 불가능한 역량은 그런 식으로 많이 쓰이지만 그건 너무 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닌가. 대체 불가능한 소설, 영화, 그림 등의 결과물 일 수도 있지만 이런 꼭 직업적인 역량이 아니더라도 대체할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 습관, 타협하지 않는 것, 나만의 스토리가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혼자 책임지고 해야 했던 그 시기에 클라이언트 한 명 한 명을 상대하며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기준과 습관, 태도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런 가치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가치들은 더 어려운 도전을 해야 할 때 다시 또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스스로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사실 내가 만든 건 ‘값비싼 쓰레기’였다
요즘엔 강의와 멘토링, 심사활동이 많아졌다. 글로 쓰는 것과 다르게 현실적이고 진솔한 그래서 직설적이기도 한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중에 내가 항상 말하는 얘기가 있다. 제발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고. 창업 혹은 창업가에 대한 많은 얘기들 중에 사업 아이템과 본인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을 혹시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법인은 별도의 인격으로 대해야 하며 모든 문제는 법인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이디어나 아이템 역시 이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처음 아이템을 만드는 창업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보면 사업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표출한다는 느낌을 더 받았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라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우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시장이 필요로 하지 않는 쓰레기가 된다. 내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건 지원받은 돈이건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하늘 어딘가 떠돌아다니는 공해가 되어버린다. 이 부분이 일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다. 이럴 땐 보람을 느끼기 힘드니까.
왜 글을 쓰셨어요?
가끔씩 받는 질문 중에 어떻게 글을 쓰게 되셨냐고 물어보는 질문이 종종 있었다. 내 나름의 비법일 수 있는데 그런 거를 공유해도 되냐고. 역으로 난 별로 그런 위기감을 느끼지도 않았고, 만약 읽고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해도 그 자체로 더 크게 만족하고 보람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분은 극적으로 말하면 클라이언트가 뺏기거나 일이 줄어들 수도 있지 않냐고 했는데 그렇지도 않을 거니와 그런 식으로 바라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읽고 다 같이 성장하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내가 천만 원을 벌 수 있었다면 그다음 단계는 다른 사람들을 천만 원을 벌 수 있게 하는 게 성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 썼다.
앞으로의 이야기
앞으로도 나는 버는 돈, 매출, 소득 이런 지표보다 하는 행동이 더 값비싼 사람이 되고 싶다. 디자인 스튜디오가 창업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천만 원 수익을 만든 건 3개월도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위에서 말한 다른 사람들이 수익을 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방향도 기획 중에 있다. 준비가 된다면 이런 얘기도 글로 쓰려고 한다.
당분간은 그동안 썼던 내용들 중에 가장 중요하게 느꼈던 ‘대체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서 써보면 어떨까 구상하고 있다. 사소한 일상의 습관에 대한 얘기일 수도, 목표를 세우고 관리하는 자극적인 글일 수도, 또는 꿈을 찾는 설레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은 1등만이 뛸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모든 순간이 긴장과 예민이었던 24살, 세상을 향해 겁 없이 뛰었던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