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꿈은 외교관이었어요. 멋있어 보였거든요. 그 무대의 정상을 맛보고도 싶어서 모의유엔동아리를 하면서 친구들과 뉴욕의 대회에도 참여해 상도 받아보고 NGO와 함께 스위스에 있는 UN본부에 잠깐 열리는 인권이사회회의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각국의 외교관들이 오는 본부의 회의장이 정말 멋있고 웅장했죠. 결심을 하러 간 거 였어요. “내가 한 번 외교관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던지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요.
같이 간 언니가 공작새가 자유롭게 노니는 유엔 정원에서 마음의 결정을 내렸냐고 묻더라고요.
“아니, 언니 이건 아닌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 가까이서 보니 아니라는 생각이 더 굳건하게 들더라고요. 뉴욕에서 대회를 할 때도 제가 관심이 가는 건 점심시간 나와 잠깐 거닐며 봤던 코너에 있던 카페베네였어요. ‘아, 여기는 뉴욕 스타일에 맞게 인테리어를 어떻게 바꾸고 동선을 이렇게 짜고 메뉴를 이렇게 했네. 내가 만약 뉴욕에 이런거 차리면 이거를 이렇게 하고 저거를 저렇게 할텐데’
한창 뜨거운 논제와 각국의 입장이 펼쳐지는 인권이사회 장에서도 이런 생각 뿐이었어요 ‘아 이런이런게 불편한데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참 좋을텐데. 내가 만들어볼까? 앱 디자인은 이런식으로 하고.. 끄적끄적.. 아 또 이런 것도 있는데...’ 하면서 이상한 궁상들로만 머리에 가득 차있었죠.
어딜가도 그런식이었어요. 무엇을 사용해도, 어딘가에 가도 그런 생각들 뿐이었어요. 누군가가 어쩌다가 비즈니스를 하게 되었어요? 라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사실 아직도 제가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집에서 잘 때 빼고 그런 생각들 밖에 안해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것 같아요. 어차피 다른 일을 해도 집중이 안되니까요.
경영학과 학생도 아니고 집에 사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비즈니스가 뭔지 알 리가 있나요. 그냥 나는 이런생각만 하는 사람인데 그런 생각이 나중에 알고나니 비즈니스모델이고, 브랜딩이고, 기업가정신이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했어요. 창업을.
창업놀이는 그만하고 싶어
많은 이야기는 생략할게요. 처음 창업을 했는데 끝에 뜻이 맞지 않아 회사를 나왔어요. 그리고 나오면서 같이 창업한 회사를 소송했어요. 투자도 받고 뭔가 대단한 게 이제야 막 시작되는 것 같았는데 힘든 결정이었어요. 근데 오히려 나오고 보니 미련이 없더라고요. 그 회사가 아니라 창업에. 지원사업에, 투자에, 피칭, 사업계획서 회사가치평가 등등.. 대충 한 번 맛보고 나니까 꼭 굳이 그런 방식으로만 창업을 할 수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역으로 들더라고요. 사무실을 구하고, 밤 새듯이 일하고, 끊임없는 필요한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어디 지원사업을 받아야 한다, 누구에게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이 꼭 창업에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요. 이렇게 사업하는 분들을 무시한다는 생각은 결코 아니에요. 저는 그랬어요. 뒤 돌아보니 나는 창업을 한게 아니라 창업놀이를 한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어요.
마치 대학에 가려면 내신은 몇 점이어야 하고 등급은 몇 점 컷이 있어야 한다는 식 처럼 창업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 시장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그러니 각 이해관계 당사자는 창업하려면 이걸 해야한다, 이걸 받아야 한다 이런식으로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요. 그래 어느정도 맞긴 한데 본질에 집중해보자. 하나씩 팔아서 그게 두개가 되고 여러개가 되고 매출이 커지면 필요하면 사업체를 내고 사무실을 구하고 하는거지. 그러고 내가 할 만큼 버티다가 다른 사람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 투자도 받고 해외진출도 하고 그러는거지. 그런 마음으로 'AI 검색엔진 비슷한걸 만든다'는 사람에서 '앱디자인 한장에 얼마에요’ 말하는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그렇게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단가가 커져서 사업자를 냈고, 프로젝트 단위가 커져 혼자 일을 할 수가 없어 사람들을 구했고 종종 만나는 장소가 필요해서 사무실을 구했고 그러다 맡기는 일이 더 커져서 파트너사도 찾고 그렇게 조금 조금씩 성장했던 것 같아요. 투자는 정말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 받지 않는 다고 생각했고 지원사업, 광고, 마케팅도 하지 않았어요. 클라이언트 한 명한테 잘하면 그게 다른 한 명이 되고 그게 점점 커질거라는 무식하다면 무식하게 일했던 것 같아요.
프리랜서 vs 1인기업가
저는 개인적으로 제 스스로가 아직도 완벽한 1인기업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프리랜서는 개인적으로 일정한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돈을 받는다면 1인기업가는 자신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시스템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꼭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시스템이 돈을 벌어다 줄 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 1인기업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요. 그래서 지금 운영하고 성장시키려는 에이전시 형태의 디자인사업도 전형적인 형태가 아니라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하려고 자꾸 애쓰고 있어요. 내가 디자인을 직접하지 않아도 디자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 최소한의 운영으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구조. 이부분은 어느정도 안정화가 되면 글로 소개할 지 조금 더 고민 해 볼게요.
당신에게 1인기업가를 권하는 이유
시스템? 자동화된 수익구조? 이런 거창한 거 일단 잊고 당신에게 1인기업가적 사고방식을 조금이라도 권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에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아주 도움되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에요. 내가 억만장자 백만장자인 자본가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모든 걸 책임지고 운영하다는 건 자본가로 생각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지름길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에요. 직장 때려치고 사업체를 내라는 게 아니라요. 사회가, 회사가, 학교가, 또는 부모님이 강요하고 원하고 해주는게 아니라 나 혼자 마케팅도 하고 영업도 하고 서비스도 직접 제공해야 한다면 스스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게 생각보다 값진 고민이라는걸요. 정부가 지원해주는 사업비도 없어, 투자자도 없어, 나를 대변해주는 회사의 네임벨류도 없어, 나 스스로 시장에 뛰어들어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해주고 그 댓가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보는 거죠.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할 지도 모르고, 더 강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꼭 거창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꼭 많은것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연습’이 중요한거죠.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서비스를 올렸던 크몽에는 이런 서비스도 요즘에 있더라고요.
멋있는 한글싸인 만들어드립니다
한글싸인 만드는데 대학졸업장과 석사학위 필요한거 아니잖아요. 근데 이걸 본 그 당시에 10,000원에 팔아서 총 935개를 팔았더라고요. 그 분은 어떻게 판매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라면 이런 질문들을 클라이언트에게 물어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의뢰자가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인지?
2. 의뢰자의 이미지와 분위기는 어떠한지?
3. 주로 싸인이 필요한 경우는 어떤 경우인지? (계약서, 편지 등)
4.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
5. 싸인을 의뢰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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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무엇(What)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How)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똑같이 옷 팔 수 있고, 디자인도 팔 수 있는데 과연 내 스타일대로 어떻게 세상에 내 보일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한 번 쯤 스스로 해보는 것이요.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건대 생각보다 사용자를 생각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 만 더 고민하면 기회가 많다는 뜻일 수도 있고요.
마지막 글을 쓰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특별한 얘기는 아니지만 10편의 글 중에서 가장 제 자신의 솔직한 얘기를 썼어요. 1인기업으로 1달에 1천만원벌기 연재는 끝났지만 글은 계속 쓰려고요. 혹시 111시리즈에 관해 궁금하신 부분을 댓글로 남겨주신다면 따로 또 답변의 글을 모아 작성하는 글을 작성해 볼게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디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