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면 나보다 상황이 나은 사람은 언제나 있다.
백화점 근처로 이사 오니 백화점 갈 일이 많아진다.
약속 없는 주말에 할 일 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산책 중 더위를 피해 들어갔다가 저녁나절 할인하는 간식을 사 오기도 한다. 예전에 나들이 삼아 백화점을 올 때는 온 가족이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가방을 고르고 신발까지 어울려야 흡족해하며 나섰다.
이제 가까이 살며 들락거리다 보니 그런 치장에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입고 다닌다.
처음 2~3년은 백화점 나들이가 너무 즐거웠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은은한 향수 냄새, 넓고 쾌적한 그곳은 진정 신세계라 종일 있어도 지겹지 않았다. 이벤트홀은 빠뜨리지 않고 둘러보았고 명품 매장 줄 서기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구경만 하다 나올 것이 뻔한 명품 매장이 시들해지고 읽기도 어려운 브랜드들의 어이없는 티셔츠 가격이 피곤해졌다. 그러다 이런 비싼 옷을 누가 사 입는지 매장 안의 사람들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다 친구와 백화점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오랜만에 옷을 차려입었다. 새로 산 검정 재킷에 일자 와이드 팬츠를 입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평소와 달리 잔뜩 멋 부린 모습이 어쩐지 낯설다. 힘 빼고 입었을 때는 드러나지 않던 초라함이 화장하고 옷 입고 액세서리까지 갖추고 나니 드러나 보이는 듯하다. 나답지 않게 움츠려 든다. 얼른 옷을 벗고 평소에 입던 청바지에 티셔츠로 갈아입고 거울을 보니 편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런 내 모습이 낯설었다.
어릴 적부터 남들을 크게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도 부잣집 친구도 얼굴이 예쁜 친구도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 일뿐, 다른 사람이 부럽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라서 좋았다.
세상은 각기 다른 매력과 장점을 가진 사람으로 가득하고, 우리는 결코 그것을 비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함에서 비롯된 자기애라 할지라도 꽤 오랫동안 단단하게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랬던 내가 백화점 옆으로 이사 와서 부자와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키워온 것이다.
해외 편집 샵의 천만 원짜리 신발을 신고 수백만 원짜리 카디건을 걸친 사람들 속에서 SPA 브랜드 재킷과 운동화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초라함을 덮기 위해 아예 멋에 관심 없는 듯 피하는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이 일은 짧았지만 강렬하게 나를 흔들었다.
돈으로 환산되는 물질의 세계 속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존감을 잃어버린 나를 만난 것이다.
백화점은 연간 매출금액에 따라 VIP 등급을 나누고 발레파킹부터 고객 라운지, 무료 커피까지 급을 나누어 서비스한다. 어쩌다 들러 바쁘게 쇼핑만 하다 갈 때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그들의 잣대를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잣대로 은연중에 스스로를 재고 있었다. 결국, 백화점 발 설국열차 꼬리칸에 올라타 앞칸의 사람을 부러워하며 열등감에 젖어들고 있는 나를 보았다.
누군가 나보다 부자라는 사실이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길 만한 일인지 나에게 물었다. 당연히 아니다.
나를 초라하게 만든 것은 주위의 부자가 아니라 비교하고 움츠려 든 나 자신이었다.
남과 비교하여 잘난 척하고 우월감에 절여있는 모습도 꼴불견이지만 쓸데없이 비교하고 열등감으로 움츠려 드는 것도 보기 흉하다.
이제 어떤 옷을 입어도 위축되지 않는다. 다름만 있을 뿐 우열은 없다며 정신승리를 가장 하지도 않는다. 갑자기 자신감이 차올랐느냐 하면 그 반대이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상대적인 열등함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그러나, 열등감에 빠지지는 않는다.
비교하는 한 누군가 나보다 상황이 나은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 된다. 부자끼리도 서열이 있고 인기 연예인도 순위가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데 나의 열등함에 상심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나의 열등함을 태평하게 받아들이되 열등감에 빠지지는 말자.
열등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이지만 열등감은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다. 열등하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할 것 없다. 인생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이므로 단순 비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누가 더 건강한지, 누가 더 행복한지, 누가 더 자신에게 만족하는지 잴 수 없다. 우리 모두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각자에게 열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