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는 흘러 보낼 것

by now nina

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 나는 시골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공용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에는 새벽 시장을 다녀온 아주머니들의 짐보따리와 몇몇 부지런한 노인들이 타고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니는 버스는 인근 직장인의 통근용이기도 했다. 버스는 파출소, 면사무소를 지나 바닷가 작은 초등학교에 나를 내려주고 해양연구소, 중학교, 다른 초등학교를 거쳐 터미널로 돌아왔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늘 같은 시간에 타는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의 직업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여자들이 많았다. 엄마, 고모 3명, 언니, 나 할머니까지 여자였다. 여자 많은 집이 그렇듯 다들 패션에 관심이 많고 그중 한 명은 뛰어난 멋쟁이이다. 막내 고모가 그랬다. 고모의 검정 벨벳 롱코트 안에 감춰져 있던 짧은 미니스커트와 롱부츠는 지금도 내 마음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고모가 펌을 할 동안 미용실에 비치된 여성지의 패션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어린 시절 즐거운 놀이 중 하나였다.

학창 시절에는'논노'같은 일본 패션지를 사모으고 매해 새로운 패션지를 정기 구독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스타일은 따로 스크랩해서 계절별 파일로 모았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공립 유치원 교사가 되고도 나의 옷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 때 즐겨 입던 치마를 입고 버스를 타면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눈길들이 쏠려옴을 느꼈다.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은 종종 버스를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도시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기분 좋음과는 다른 불편한 감정이었다. 그럴 즈음 나보다 서너 살 많은 동료 교사를 통해 칭찬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는 얘기를 들었다. 분명 얘기하는 사람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칭찬을 하려는 의도를 가진 듯이 얘기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다른 학교 남교사들 사이에서 나를 두고 ‘결혼만 안 했으면 나도 저런 여자랑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키 크고 옷 잘 입는 멋쟁이라 눈에 띄어서 그런 것이라고 모호한 칭찬으로 얘기를 마무리했다.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다 있다고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버스 안에서 달라붙는 눈길들이 음흉하게 느껴지고 마치 내 잘못으로 술자리 안주거리가 된 것처럼 마음이 쓰였다.

결국 짧은 치마 대신 긴 청바지로 다리를 가렸다.

한번 그렇게 움츠려 들자 옷을 입을 때마다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었다. 평범한 티셔츠를 입을 때에도 목이 너무 파졌는지,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 겨드랑이가 보일지 신경 쓰였다.

사회 초년생이었고, 시골 생활은 처음이었던 나는 그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어쩔 줄을 몰랐다.


몇 해가 지나, 학교를 옮기고 대학 친구 S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짙은 화장에 부푼 파마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녔다. 커다란 링 귀고리, 런웨이에서만 볼법한 아방가르드한 패션에 여름에도 부츠를 신었다. 보수적인 교직 사회에서 그녀의 파격적인 패션은 늘 뒷담화 거리였다. 그러나, 내가 정말 놀랬던 건 그녀의 패션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대처하는 그녀의 태도였다.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옷을 왜 이렇게 입고 다니느냐고 물으니 친구는 상냥하게 대답했다. “내가 좋아서 입어요.” 그녀는 묻는 사람에게 조금의 불쾌도 드러내지 않았다.

앞에서는 웃으며 칭찬의 말을 늘여놓고 뒤에서는 험담하는 사람들을 알고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친구와 쇼핑을 하게 되었다.

매장에 옷들을 보고 있는데 “ 너, 대학 시절 멋쟁이여서 좋아했는데, 이제는 공무원 같은 옷만 고르네” 했다.

친구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재킷에 청바지를 교복처럼 입고 다니면서도 나는 내가 여전히 멋쟁인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몸매가 드러나거나 눈에 띄는 옷은 모두 남의 옷으로 여기며 평범하고 무난한 옷만 찾고 있는 나를 나는 몰랐다.


나는 내가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 눈치 보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옷을 고를 때 나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입고 싶은 옷보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더 신경 쓰는 눈치 보는 옷 입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왜 같은 뒷담화를 당해도 친구는 영향받지 않는데 나는 움추려들었던 것일까?


나는 뒷담화의 원인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옷을 잘못 입어서 술자리 안주꺼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신임 여교사 말고는 달리 술자리 안주꺼리가 없는 그들의 열정 없고 무료한 일상 탓이 아니고, 성희롱 뒷담화를 시샘하듯 내게 일러준 서너 살 많은 동료 탓도 아니었다. 젊음이라는 원죄도 모자라 긴 다리를 드러내고 짧은 치마를 입은 탓이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탓이고 어쩌다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아무도 입 대지 못할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나를 고쳐나갔다.

결국 자유롭고 멋지게 옷 입기 좋아하던 원래의 나와는 멀어져 버렸다.


친구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었고 그것은 그녀의 정체성이 되었다. 뒷담화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녀가 부러운 것이었다. 눈치보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입을 수 있는 과감함이 부러웠고 그녀의 용기를 질투하고 있었다. 나 역시 친구의 태도가 부러웠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타인이 가지고 있을 때 질투하고 시기한다. 뒷담화는 자기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들이 욕구불만과 열등감을 타인을 향해 쏟아내는 일이다. 자기 삶에 만족하고 열중하고 있으면 뒷담화할 시간이 없다. 뒷담화는 부러움과 열등감과 질투를 숨기고 싶은 약자의 도구이다.


내가 눈치 보는 옷 입기를 하게 된 것은 뒷담화 때문이 아니라 뒷담화의 책임이 내게 있다고 믿어버린 탓이다.

내 잘못이 아닌 것을 내 잘못으로 여기고 갇혀버린 탓이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내 장점도 비판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내 부족함도 개성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성품이 하는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은 그의 기준대로 살도록 두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된다.

나의 본질은 내 안에 있으며 누구의 평가로 바뀌지 않는다.


바다에 파도가 일 듯 세상에는 뒷담화가 일어난다.

내가 흘려보내면, 들썩거리며 밀려오던 파도가 마지막엔 물거품으로 사라지듯이 뒷담화도 그렇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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