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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조이 Sep 18. 2023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한 거리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넷플릭스 영화나 한 편 볼까 하고 누워있던 어느 토요일 저녁, 2시간 거리에 사는 친구 어머니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가족장으로 한다며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친한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로서도 모처럼 토요일 저녁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컸고 무엇보다  왕복 4시간의 밤길 운전이 버겁게 다가왔습니다. 전화를 끊고 망설이는 나를 보던 남편이 먼저 양복을 갖춰 입고 나서며 가자고 했습니다. 결국 남편과 함께 조문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지 말라던 친구는 막상 가니 반거워 하더군요. 밤 12시경 집으로 도착해서 남편에게 "고마워" 하고 인사했습니다. 운전해 준 것도 함께 조문해 준 것도 고마웠습니다.   


  한참 동안 인사를 잊고 살았습니다. 가족이니깐 일일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해주는 것도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공통분모 제하듯이 당연한 소리들은 서로 생략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20년이 넘게 살았습니다.  '늘 하는 일인데 뭐'하는 일상적인 마음이,  '우리 사이에 뭐' 하는 친밀한 마음이 고마운 마음을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바라는 점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친밀함이 고마움을 덮어버리니 나니 그 자리에는 불만만 남아 있었습니다. 친구나 직장동료에게는 작은 친절에도 인사를 하면서도 정작 남편에게는 무심하게 넘겼습니다. 익숙하다고 해서 서로에게 길들여졌다고 해서 예의를 생략해도 되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노후 생활의 행복의 질은 남편과의 관계의 질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0대가 넘으면 아내도 남편도 직장에서 가정으로 돌아와 같은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상황을 맞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혼자 살아가든 함께 살아가든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타인입니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존중의 의미이며 남편과 내가 서로 다른 존재임을 스스로에게 깨우치는 말입니다.  


   남편은 여전히 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굳이 말을 해야 아느냐고 합니다.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는것도 노력이고 성의입니다. 무엇보다  말을 하면 고마운 마음이 더 선명해집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말을 합니다. 고맙다고 말하는 만큼의 거리, 함께 살아가기 위한 거리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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