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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Sep 22. 2023

여행 가방은 미리 싸 둡니다

언제라도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2023년 7월 딸이 몽골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몽골은 생각지도 않았던 행선지라 조금 망설였지만 결국 딸과의 여행이라는 것에 끌려 패키지여행을 결정했습니다. 패키지여행은 여행 일정표와 가이드가 있으니 따로 준비할 것도 없는 편리하고 쉬운 여행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날짜가 다가오자 설렘보다 귀찮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 많이 걸어야 하니 운동화를 신어야겠고 초원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려면 색깔 쨍한 옷이 필요하겠지, 전통 게르는 갑자기 전기가 안 들어오거나 물이 안 나올 수 있다는데, 낮에는 더워도 밤에는 춥다는데, 평소에 먹던 영양제도 챙겨야 하고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도 필요하잖아’ 머릿속에 온갖 준비물들이 떠다니는데 정작 손은 까닥하기도 싫었습니다. 여행 짐 싸는 일이 너무 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제가 여행을 안 다녀본 것도 아닙니다. 가족들과 휴양지 패키지여행도 다녀보고 친구들과 유럽이나 미국으로 자유여행도 다녀봤습니다. 심지어 모든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제가 준비해서 다녔습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뉴욕으로 전화를 걸어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를 확인하고 집안을 정리해 두고 공항으로 떠나는 일을 망설임 없이 해치웠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표로 작성해 인쇄해서 들고 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곤 했습니다. 그 종이는 아직도 투명 파일에 끼워져 있습니다.


  투명 파일에 든 종이를 들고 그때처럼 적힌 물건들을 챙겨 담으면 되는데 몸이 움직이기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를 챙기면 또 하나가 생각나고 그렇게 세면대와 화장대와 수납장을 왔다 갔다 반복하다 보면 떠나기도 전에 지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행 전날 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날이 되어서야 여행가방을 꾸렸습니다.


그래도 여행은 즐거웠고 시간은 금방 흘러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얼른  집에 돌아가 샤워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전에 먼저 가방 정리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두서없이 쑤셔 넣은 가방을 풀어서 기념품을 꺼내고 빨랫감을 나누고, 물건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정리하는 일이 큰일처럼 여겨졌습니다.


 젊었을 때는 잘하던 일도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제게는 여행가방 싸고 푸는 일이 그랬습니다. 이제 비로소 직장에서 벗어나 여유 있게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몸이 귀찮아합니다.


 언제라도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더 이상 짐 싸고 푸는 일이 여행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여행짐을 목록화하고 미리 여행 가방을 챙겨 두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행가방 정도야 가볍게 싸고 풀고 그게 무슨 일이냐 할 수 있지만 저에게는 큰 일입니다.  먼저 캐리어부터 바꾸었습니다. 10년도 더 된 샘소나이트 캐리어는 아직 튼튼했지만 딸의 경량 캐리어에 비해 무거웠습니다. 중간에 디바이더로 나누어져 있는 가벼운 캐리어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작은 파우치들로 디바이더 한쪽을 채워두었습니다.


제가 챙겨놓은 7개의 준비파우치를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세안 파우치입니다.  1. 워터클렌져와 폼 클렌징  2. 칫솔과 치약  3. 샴푸, 린스, 바디클렌져, 바디로션, 샤워타월 4. 수건입니다. 숙소의 컨디션에 따라 3,4번 준비물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 화장품 파우치입니다. 1. 선크림과 기초화장품  2. 마스크팩 3. 머리고무줄, 머리핀, 화장솜, 면봉, 4. 손톱깎이, 액세서리통입니다.  보통 화장대 앞에서 귀고리나 반지를 빼기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도록 바로 넣을 수 있는 작은 액세서리통을 준비합니다. 화장품 가방에는 머리고무줄, 머리핀을 넣어두면 찾기 쉽고 씻을 때 편리합니다.


  셋째, 약파우치입니다. 비상약(해열제, 소화제, 연고, 밴드/모기약, 식염수)과 평소에 먹는 영양제를 챙깁니다.


 넷째, 속옷과 양말 파우치입니다. 세탁해야 할 속옷이나 양말을 넣을 수 있도록 칸이 나뉜 파우치를  준비합니다. 이렇게 해두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세탁기에 바로 넣을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다섯째, 전기용품파우치입니다. 어답터와 충전기, 셀카봉과 이어폰을 챙깁니다.


여섯째, 신발파우치입니다. 호텔에서 신을 슬리퍼나 산책에 필요한 운동화나 구두를 넣을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장바구니입니다. 단체 패키지 여행할 때  한병, 선크림, 핸드크림 등은 장바구니에 담아 버스에 두고 다녔습니다. 장바구니는 스페어 가방이자 쇼핑가방이 되어주는 만능템입니다.


선택사항으로 물놀이 파우치가  있습니다.

1. 수영복 또는 레시가드와 가운, 2. 수경, 수모, 귀마개, 머리 고무줄, 3. 선스틱, 4. 아쿠아 슈즈

5. 지퍼 방수가방 등은 따로 챙겨두었다가 필요시 가져갑니다.


 일곱 개의 기본 파우치와 한 개의 물놀이 파우치은 국내 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호텔이든 민박이든 크게 달라지지 않는 기본 준비물들입니다. 파우치 번호를 매겨두고 필요물품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물론 7가지 기본 파우티를 다 채워 놓을 수는 없습니다. 화장품을 언제까지 넣어 둘 수는 없으니깐요. 그렇지만 미리 준비된 품목별 파우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 짐 싸고 풀기는 쉬워집니다.


마지막으로 여행용 크로스 백에 챙길 물건을 적어봅니다. 1. 충전기와 이어폰 2. 선글라스와 모자 3. 여권과 국제 운전 면허증 4. 현금과 달러와 비자카드 5. 볼펜과 수첩등입니다. 충전기는 공항이나 식당에서 충전할 일이 생길 수 있고 볼펜과 수첩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이렇게 여행준비를 해 놓으면 실제로 여행 떠나기 전에는 옷만 챙기면 됩니다.




저는 몽골의 푸르른 초원에서 말을 타고 전통게르에서 깜깜한 밤하늘의 별과 유성을 보고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시작과 끝을 여행 가방 싸고 푸는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장식했습니다. 다음 여행은 오롯이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이제 캐리어를 끌고 나서면 됩니다. 국내로 떠난다고요? 여권대신 신분증 들고 가면 됩니다.

비로소 여행 중 읽을 작은 책 하나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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