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러워하는 인생이 있었으니

부러움도 힘이 된다.

by now nina

얼굴이 이쁜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이쁘지 않으니 부러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질투나 선망이라기보다는 호감의 감정이다. 또 머리가 좋은 사람에게 저절로 마음이 간다. '뇌섹남'이라는 TV프로를 보다가 아무 관심도 없던 아이돌에게 혹했다. 그가 지닌 명석함에 반한 것이다. 얼굴이 수려한 사람을 보는 일, 머리가 좋은 사람을 보는 일은 내게 즐거움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 나일 필요는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그저 내가 나인 것이 좋았다. 다른 인생이 부럽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훌쩍 흐르고 중년의 어느 겨울날, 해운대 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 '와인이 있는 재즈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저녁 공연 관람 전에 카나페를 곁들인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행사였다. 연말 문화행사에 기분이 들뜬 나는 와인을 한잔 마시고 자리를 잡았다. 미리 좌석을 확보한 선배 덕분에 바로 앞자리에서 무대의 공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재즈 공연답게 무대는 블루 조명이 환상적으로 빛났고 분위기는 무러 익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가수의 노래는 감미롭고 매혹적이었다. 재즈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가수였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그녀는 너무 빛나 보였다. 의자에 느긋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공연을 즐기던 나는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울컥함을 느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의 빛남


아니 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보고 울컥해지다니, 내가 가수가 되고 싶어 했나? 그건 분명 아니다. 그럼 이 울컥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는 그녀에게서 50여 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부러움이었다. 무대 위의 그녀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한 색깔로 자기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 돈을 벌고 얼마나 인지도가 있는 유명가수인지 나는 모른다. 무대 아래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름 모를 재즈 가수에게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의 빛남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다는 그 멋진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자각과 함께 그녀가 사무치게 부러웠다.


부러워하는 것도 힘이 된다.


처음 느껴 본 '부럽다'는 감정은 낯설었지만, 순식간에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갑자기 내가 이미 너무 많이 살아버렸고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와있다는 생각이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없는 것 같았다. 지독한 상실감이었다.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도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울컥해진 것이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었다. 부러워해야 알을 깨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을 부러워한다는 것은 그것이 내게 없다는 말이고 내게 없는 그것을 내가 원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결핍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채우려고 하는 열망을 가질 때 부러움도 힘이 된다.

부러워하는 마음이 긍정적인 발전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부러워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부러워하기 좋은 때!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이라면 그래서 내 세계를 확장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나는 부러워하고, 부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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