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메리는 수영장 물이 그녀의 뭄을 감싸 오자 그제야 자신이 하루 종일 계속
서 있느냐 얼마나 애쓰며 정신을 집중했는지 깨달았다. 몸을 뒤로 기대어 그대로 둥실 떠가도록 두었다. 차가운 물이 마치 그녀의 몸을 붙드는 손처럼,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가락처럼 느껴졌다.
-수영하는 여자들-
무엇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가능할까?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은 곳은 수영장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제법 수영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25미터 레인 끝까지 가는것이 힘겨운 실력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내게는 물이 그렇다.
처음 수영을 접했던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1990년, 부산 영주동에 있는 코모도호텔에서 단기 수영강습이 있었다. 그때 나는 곧잘 따라 해 시범조교로 동작을 시연하기도 했다. 수영에 꽤 소질이 있었던 거다. 단기 수영강습은 1주일짜리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근처 계곡을 찾아간 것은 수영강습이 끝난 직후였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바위 옆 물에서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이다. 당황했지만 바로 옆에 친구들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몸이 밑으로 가라앉는다. 배웠던 수영을 해 보려고 해도 놀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헐렁한 티셔츠는 물을 가득 안고 복어처럼 부풀어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나를 밑으로 잡아당긴다. 올라가려고 애를 쓸수록 물만 먹게 되고 숨이 막히자 힘이 빠지고 패닉이 왔다. 공포감으로 마비된 머릿속으로 지역뉴스에 자막이 흐르는 모습이 떠올랐다.
(부산대 이모양(만 22세) 수영미숙으로 **계곡에서 익사)
‘아, 내 죽음은 자막 한 줄로 처리되겠구나, 익사사고는 아나운서의 입에 올릴만한 사건도 아니겠구나 ’
그 순간,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아당겨서 바로 옆 바위에 내려놓는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친구는 내 샛노란 얼굴을 보고 놀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선배 언니가 허우적거리다 꼬르륵 가라앉는 나를 본 것이다. 선배 언니는 수영강사였다. 내가 빠진 곳은 말로만 듣던 U자 지형, 한 발 차이로 깊은 물에 빠지게 되어 있었다. 젊은 날 순간적인 죽음 체험이었다. 어지간히 놀랬던지 그 후로 몇 년 동안 수영장은커녕 목욕탕도 피했고 어쩌다 목욕을 가도 탕에 들어가지 못했다.
수영을 본격적으로 다시 배우게 된 것은 딸 때문이다.
푸껫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 남편은 객실에 쉬러 가고 호텔 야외 2층 수영장에 일곱살 딸과 둘이 남게 되었다. 튜브를 탄 딸은 신나게 발장구를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엔 입구 쪽에 있었는데 어느새 튜브를 타고 혼자 깊은 풀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나는 발이 닿지 않는 곳에는 갈 수가 없는데 이를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수영장 선 베드에는 희고 몸집 늘어진 외국인들이 느긋하게 누워 담소를 나누고 있다. 평화로운 모습이다. 수영장을 지키는 관리인은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곧 나타날 것이고 아직 딸은 깊은 줄 모르고 잘 놀고 있다.
나만 애가 탄다.
튜브에서 잘 놀던 딸이 갑자기 엄마가 자기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엄마를 찾는다.
‘진주야, 미안하지만 엄마는 그곳에 갈 수가 없어, 발이 바닥에 닿지가 않아’
울음이 나기 직전이었지만 꾹 참고 웃으며 딸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엄마의 불안과 긴장은 정확하게 딸에게 전달되었나 보다.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물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튜브를 벗고 풀장 위에 조성된 화단으로 올라가려는지 짧은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다. 화단 아래는 1층 수영장인데 그 높이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안 된다고 소리치며 물로 뛰어들며 아이와 나를 구해줄 누군가를 찾았다. 그때 거짓말처럼 남편이 나타나 딸을 물에서 데리고 나왔다. 내가 미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전에, 아무나 잡고 도와달라고 소리 지르기 직전에.
수건을 가지고 다시 나타난 관리인은 영문도 모르고 우리를 향해 순하게 웃고, 조용한 담소를 나누던 외국인들도 그대이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데 나만 지옥을 체험하고 난 것이다. 수영을 배워야겠다. 눈앞에 딸을 구하러 바로 뛰어들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아찔한 순간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딸과 함께 레슨을 받았다.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물에 머리를 넣으면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고 공포가 몰려왔다. 잘 가다가도 일어서서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수영실력이 늘 리가 없다. 그리고 알게 되었는데 나는 흔히 말하는 몸치였다. 겨우 자유형을 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래도 꾸준히 강습을 받다 보니 상급반으로 밀려 올라갔다. 배영, 평형 대강 하고 접영은 패스해도 다이빙까지 어찌어찌 경험하게 되었다.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늘지 않는 수영을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물에서 살아 남기 위한 생존 수영을 했지만 계속 물을 접하다 보니 물에서 노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개인풀이나 수영장이 있는 펜션이 비싼 가격에도 예약이 치열한 것을 보면 누구나 물놀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좋아하지 않으면 락스와 아이들 분비물이 섞인 수영장 물을 들이키며 그렇게 오랫동안 이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피해야 할 이유보다 해야 할 이유가 더 크면 하게 되고, 하다 보니 좋아지고 결국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수영장을 다시 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깊은 물에 뛰어들어 ‘바닥을 찍고 솟아오르기’이다. 물론 준비운동 먼저 할 것이다.
물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라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은 수영실력이 나아져서가 아니라 물의 바닥을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은 수질은 별로였지만 수심 2m 깊이의 레인이 있었다. 처음 깊은 물에 뛰어내려야 했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것 같았다. 허리까지 오는 물에서도 자유형 도중에 멈춰 서서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을 확인해야 안심하는 내가 수심 2m의 물에 뛰어드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수강생들에 떠밀려 어떨결에 한번 뛰어내리자 신세계가 열렸다. 바닥을 발로 차고 반동을 이용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일은 너무 짜릿했다. ‘바닥까지 가니깐 오히려 올라올 수 있구나, 바닥을 짚는다고 죽는 것이 아니었어.’ 전율이 일었다. 나는 바닥을 치고 솟아오르기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수영실력이 일취월장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빠져 죽을까봐 겁을 내며 안전바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물에서 노는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바닥 찍고 솟아오르기’를 하고 나면 수영을 즐길 것이다. 팔을 앞으로 주욱 뻗으며 몸을 길게 늘여 느릿하게 하는 자유형은 정말 기분이 좋다. 물의 저항을 가볍게 손으로 밀어내고 찌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평형은 숨쉬기가 편해서 좋다. 그러다 다시 자유형.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자유형에서 배영으로 팔을 돌려 뻗어 물 위에 드러눕는다. 가끔 엉덩이 옆으로 손을 저어 물의 부력을 느끼며 둥둥 떠 있는 기분은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다. 힘을 빼고 물 위에 누워있으면 세상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깃털 같은 가벼움만 남는다. 천천히 무중력의 공간을 유영하듯이 떠다니는 것만큼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 비록 내 수영실력은 미숙하지만 온 몸을 물에 맡기고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자유를 누린다.
수영이 심폐지구력을 향상시키고 근육에 무리를 주지 않는 유산소 운동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수영을 시작하지 않는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중력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지금 바로 수영복을 챙겨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