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기

접지가접생이다.

by now nina
‘오늘은 몸이 별로 안 좋아, 별로 달리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이래저래 따질 것 없이 그냥 달렸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삼보 전진 택시'였다.

젊은 날, 나는 걷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대학 교내 셔틀버스를 놓치면 강의는 빼먹기가 일쑤였다. 걸어서 캠퍼스 꼭대기에 있는 강의실까지 가는 것은 효율성 제로의 노동으로 여겨졌다. 여름엔 더워서, 겨울엔 추워서 걷기 싫었다. 봄, 가을은 예쁜 옷을 입고 산들산들 걸어볼 만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짧은 거리도 걸어서 가는 것은 질색을 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삼보 전진 택시’이다. 세 걸음 걸어야 하면 택시를 탄다 하여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렇게 중년이 되어 바쁘게 살던 어느 봄날, 직장동료들과 첨성대 주변을 산책하게 되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온 천지에 그 달콤한 향기가 퍼져있고 투명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이다. 모두 들뜬 표정으로 계속 길을 재촉하는데 의자에 걸터앉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매만지며 숨을 몰아쉬는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나였다. 걷기를 싫어하다 보니 걷기가 힘들어진 날이 온 것이다. 남들이 알아줄 만한 이름 있는 병은 아니지만 면역력이 떨어져 자잘한 질환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체력이 바닥을 기는 한마디로 한심한 내 모습이었다. 걸어야겠다는 자각이 왔다. 그리고 한 동안은 밤 산책도 꾸준히 하고 걷기에 시간을 투자했다. 당연히 컨디션이 좋아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걷는 날보다 걷지 않는 날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걷기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


한국인의 하루 평균 보행량은 8000보 정도이고 한 시간 가량 걷는다고 한다. 그중 운동 삼아 걷는 시간은 20분이고 나머지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루어진다. 지자체마다 걷기를 장려하기 위해 걷기 좋은 거리를 조성하고 보행자 편의를 도모하고 있는 덕분에 보행인구가 증가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국민 4명 중 1명만이 운동으로서 걷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걸어봐서 걷기가 몸에 좋다는 것은 아는데도 나는 왜 그 4명 중에 1명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걷기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걷기를 운동으로 하는데 아무 장애가 없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일어서서 나가기만 하면 되는 운동이다. 그러니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된다. 기회는 한번뿐이라든지 지금이 아니면 시작할 수 없다고 하면 나부터 등록하려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언제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 미루게 되고 안 하게 되는 것이다.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바로 단점이 되어버린다.


둘째, 투자한 것이 없으니 안 해도 손해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영이나 헬스처럼 매달 시설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든지 스키처럼 장비를 구입해뒀다면 그 운동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일단 안 하면 손해 니까. 걷기 운동은 비용이 발생하거나 장비가 필요하거나 무엇인가를 따로 배울 필요도 없다. 집에서 입는 간편한 트레이닝복에 편안한 운동화만 신으면 된다. 안 해도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없으니 자꾸 내일로 미루게 된다 진입장벽이 낮은 장점이 이번에도 단점이 되는 거다.


쉽게 가질 수 있으니 열망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것 같다.

거기에 결정적인 이유 하나를 보태자면 게으름이다.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파묻고 리모컨을 눌려 놓친 연예프로를 찾아보다가 벌떡 몸을 일으켜 나가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오늘 말고 내일 해도 되는 위의 두 가지 이유가 나의 게으름과 만나 ‘매일 걷기’는 ‘매일 내일 걷기’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수고를 아끼고 당장의 몸 편함을 추구한다. 마음을 다져먹고 매일 걷기를 결심하고도 걷지 못하는 날이 많다. 약속이 있는 날은 물론이고 비 오면 비 와서 기쁘게 못 나가고 추우면 추워서 감기 걸릴까 봐 안 나간다. 날씨 핑계 대지 못하게 워킹 패드는 구입했지만 소파에서 위킹 패드까지가 천릿길이다.


걷기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걷기를 버킷으로 실행하려면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 확실하게 뇌에 인지를 시켜놓아야겠다. 내가 체감할 수 있고 기억하기 쉽도록 좋다는 정보들을 끌어 모아 4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4가지가 넘어가면 기억하기 어렵다.


첫째, 걷기는 근육, 뼈, 관절 건강에 좋다.

걷는 동작은 뇌하수체에 영향을 미쳐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촉진시켜 근육량 유지에 도움을 준다. 발을 바닥에 디디면서 뼈를 자극하여 골밀도가 증가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해준다. 걸으면서 팔다리 관절을 사용하여 골관절염을 예방하고 관절을 강화시킨다.


둘째, 걷기는 심장, 혈액순환, 장 건강에 좋다.

걷기는 유산소 운동이라서 심장을 튼튼하게 하여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을 예방한다.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혈압관리를 해주며 대사질환을 예방해준다. 걷기는 장마사지를 해서 변비에 도움을 주고 당연히 체중조절에도 효과적인 운동이다.


셋째, 걷기는 치매예방과 두뇌 운동에 좋다.

치매는 뇌의 손상에서 비롯되는데, 우리의 뇌는 해마다 해마가 1~2% 감소한다고 한다. 걷기를 꾸준히 하면 해마를 키울 수 있고 뇌의 위축 단계에서 다시 건강한 뇌로 만들 수 있어 치매예방이 된다. 걷기는 뇌에서 가장 먼 발바닥에서 뇌를 자극하여 두뇌운동이 된다.


넷째, 걷기는 호르몬 분비와 면역증가에 좋다.

걷기를 하면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 통증을 줄여주는 엔도르핀, 수면을 돕는 멜라토닌, 식욕을 조절하는 그렐린 등의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수면을 돕고 우울증을 완화해서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멘털을 강화해 준다. 걷기는 심신치유효과가 있어서 면역증가에 효과적이다.


바르게 걷기 방법


한국인의 4대 질환(심장병, 암, 뇌졸중, 치매)이 걷기 하나로 다 예방되고 완화된다. 굉장하다. 이러고도 걷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이제 어떻게 걸어야 하나 바른 자세를 알아봐야겠다. 바른 자세는 간단하게 3가지로 머릿속에 넣어두면 된다.


첫째, 몸의 모양이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조이고 고개를 들고 등을 펴서 몸을 곧게 만든다. 팔은 L자로 구부려 팔꿈치를 자연스럽게 몸에 붙인다.

둘째, 호흡이다.

들숨보다 날숨을 두배로 한다. 코로 한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배 길게 내뱉는다.

셋째, 리듬이다.

일정한 속도로 걷기보다 3분 간격으로 빠르게, 천천히, 조금 빠르게, 빠르게 순으로 템포를 조절하며 리듬을 타는 것이 좋다. 이때 보폭은 자신의 키에서 100센티를 뺀 정도가 적당하다.


나의 걷기 계획


걷기 힘든 이유와 걸어야 할 이유와 바른 자세까지 알아봤으니 이제 실천해야 한다.

출, 퇴근길에 걸을 것인지 위킹 패드 위에서 걸을 것인지 걷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출, 퇴근길 걷기의 장점은 걷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니 시간이 절약된다. 도로 상태에 따라 대근육뿐만 아니라 미세근육까지 같이 사용하니 건강에 더 좋고 상쾌한 공기까지 마실 수 있다.

단점은 복장에 제약이 따른다. 꾸미고 싶은 날도 걷기 위해 간편한 복장을 해야 하고 가방과 신발까지 멋 부리기는 포기해야 한다. 자외선에 피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마스크로 가려야 하고 날씨에 제약을 받는다.

워킹 패드 걷기의 장점은 날씨에 관계없이 실내에서 유튜브나 티브이를 보면서 운동할 수 있다. 운동 후 샤워가 바로 가능하다. 단점은 평평한 면을 걸어 대근육 위주의 운동이 되고 공기 순환에 제약이 있으며 일부러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한다.


결론은 내가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금 나는 시간이 중요한 가치이므로 출퇴근 길 걷기를 기본으로 한다. 배낭을 메고 자유로운 두 손으로 몸의 균형을 잡을 것이다. 음악을 들으며 30분 걷기를 생활화한다. 걸으면서 피로가 줄어들고 에너지가 축적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지 몸의 상태를 살필 것이다. 위킹 패드는 탄력적으로 걷기를 보충할 때 활용한다.




매일 걷기를 하기 위해 사설이 너무 길었다.

걷기는 앉아서 자판을 두드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노트북을 덮고 나가면 되는 것인데 나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말들을 늘여 놓았다.

우리 몸은 상황을 너무 잘 안다. 마음이 쉬고 싶다고 느끼면 몸은 한 발 앞서 마음이 풀어놓은 자리에 먼저 드러눕는다. 몸은 내 의지와 다른 또 하나의 인격체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몸이 거부하지 않도록 먼저 마음을 잘 설득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젊은 날 걷기를 그토록 싫어했던 것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중시했던 탓이다. 걷기가 목적이 아닌 단지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탓이다. 인생길도 최종 목적지만 따진다면 죽음밖에 없고 과정이 인생이라는 것을 걸음을 통해 알게 된다. 내 두발로 땅을 딛는 것은 삶에 접속하는 방법이다.

접지가 접생이다.

센텀 강변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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