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끝나버린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라 - 탈무드-
언제나 내 버킷 1번은 '뉴욕에서 가을맞이 하기'였다.
돈벌이의 고단함이 몰려오면, 여름의 끝자락에 뉴욕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아침 햇살을 즐길 내 모습을 상상하며 퇴직까지 남은 날을 계산하곤 했다. 초록이 무성히 우거진 나무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나는 블루보틀 커피 한잔 앞에 두고, 가끔 눈을 들어 공원 옆으로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읽던 책으로 고개를 숙일 것이다. 오래 동안 불변의 버킷 1번이었다.
한 번만 내 직업에 대해 솔직해 보자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기는 쉬워도 있는 그대로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단 한 번만 유치원 교사로서의 내 모습에 대해 솔직해져 보자. 사범대 국교과나 영교과 대신 유교과를 선택한 것은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었고 그것을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선택이었다.
"우리 민서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어요" 유치원 졸업을 할 때 학부모가 건네준 편지에 적혀있던 말을 이번에는 동료 교사가 들려준다. "선생님반 아이들은 운이 좋아요."
아이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거리를 두는 교사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일수록 자기가 사랑받는지 아닌지 직감적으로 안다. 아이들의 타고난 사랑스러움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따뜻함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 유치원 교사로 30년을 살아올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것 같다. 늘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순간순간 행복했고 빛났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하는 유치원 교사와 나는 너무 멀었다. 유치원 교사는 부드러운 인상에 나긋한 목소리, 상냥한 태도를 지닌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까칠한 인상에 직설적인 말투와 솔직한 태도를 가졌다. 그들은 내게서 유치원 교사를 읽어내지 못했고 직업을 밝혀야 할 상황이 오면 마치 커밍아웃하는 심정이 되곤 했다. 유치원 교사 사회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직업적 이질감은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유치원 교사 모임에서 느끼곤 했다. 사회적 위치로서 유치원 교사는 늘 몸에 맞지 옷처럼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갑한 교사 조직에 30년이나 머물게 한 것은 방학과 아이들이었다. 물론 공무원이라는 안정감을 뿌리 칠 수 없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네 멋대로 행복하라
'꿈꾸는 사람들의 도시 뉴욕, 네 멋대로 행복하라' - 글, 사진 박준
도발적인 책 제목에 이끌려 단숨에 읽어치웠다. '멋대로 행복하라니' 행복하기 위해서 멋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살고 있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책은 뉴욕 관광을 안내하는 책이 아니라 뉴욕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책의 절반이 넘는 분량이 제 의지로 삶을 선택해서 뜨겁게 살아가는 뉴요커와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주체 못 할 동요는 책을 읽고 또 읽게 만들었다.
당신은 당신일 뿐이야. 어떤 일을 하며 살겠다고 결정하는 건 당장 죽을지 살지를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 그걸 왜 그렇게 어려워하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맹인견에 이끌리며 걸어가듯, 열정에 이끌려 현재를 걸어가는 거야.
뉴욕은 내 삶의 반대편, 내가 살고 싶었지만 살아보지 못한 삶의 표상이었다.
Smile ! You`re Beautiful
드디어 2010년 두 명의 친구와 뉴욕으로 자유여행을 갔다. 홍콩을 경유하여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8시. 길거리의 흑인과 백인들이 똑같이 무서워 보였다. 장시간 비행과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돌아다닌 덕분에 빨리 어디든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하룻밤을 예약한 한인숙소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 어쩌자고 이 밤에 나는 피곤에 절어 뉴욕의 한가운데 와 있는 것일까? 사방은 낯설고 거리에 왠지 웃는 흑인이 말이라도 걸어올까 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첫날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는 다른 세상에 와있음을 실감했다. 여름답게 화창한 날씨도 한 몫했다. 한인숙소에서 거리를 향해 첫발을 내디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 진짜 자유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가 무엇을 입든 어떤 일로 하루를 보내던 오롯이 내 마음이다. 공기에 섞여있는 자유의 냄새를 한껏 들여마셨다.
혼자라면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을 맨해튼 한복판에 숙소를 정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구겐하임 미술관을 둘러보고 센트럴 파크에서 일광욕을 했다. 첼시마켓과 타임스퀘어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핫도그를 사 먹었다. 벼룩시장을 어슬렁거리고 소호 맛집을 찾아갔다.
어느 늦은 오후 블루밍데일스 백화점을 갔다. 딱히 뭐가 필요해서는 아니고 5번가나 애비뉴가의 명품샵 대신 만만한 백화점이나 둘러보던 참이었다. 백화점은 정장을 입은 남자 직원들이 많이 있다는 것 말고는 우리나라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흥미를 잃으니 금방 피로가 몰려왔다. 윈도우 쇼핑이 따분해지고 지쳐갈때 쯤 아랍계의 건장하고 말끔한 남자 직원이 내 쪽을 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 Smile ! You`re Beautiful'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길래? 갑자기 내 표정이 궁금해졌다.
유치원 교사가 되고 나는 늘 위축되어 살아왔다.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은 유치원 교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늘 뭔가 잘못한 것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나를 숨기며 살아왔다. 공무원이라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방패를 차마 던질 수 없었던 비겁함과 소심함이 그 속에 숨어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비겁과 소심은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눈앞의 일을 묵묵히 견디고 애쓰며 살아온 성실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거칠고 자유로운 본성을 공무원이라는 틀 안에 욱여넣고 경직되어 살아온 내가 짓고 있을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정말 열흘이 하루처럼 지나가버렸다. 여행 마지막 밤 록펠러 센터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 밤 불어오던 여름 바람 끝자락에는 다가올 계절의 서늘함이 묻어있었다. 곧 가을이 오겠구나, 이곳의 가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런 세상을 두고 다시 교사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같이 갔던 친구는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나중에 인천에 도착하니 좋아서 안도의 한숨이 난다고 했다. 나는 뉴욕에서 해방감을 느꼈고 욕망하고 살아 있는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아무도 내게 네가 누구냐고 물어오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는 나에게만 중요한 일이었다. 사회의 틀에 꼭두각시처럼 매여있던 내가 야생의 나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꼭 다시 돌아와 뉴욕에서 가을을 맞이해야겠다고.
나와의 약속 지키기
버킷 1번의 열정을 마음에 품은 지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아팠고 늙었고 체력이 약해졌고 무엇보다 마음이 약해졌다. 뉴욕까지 장시간 비행은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고 뉴욕 한 달 살기는 렌트비와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많은 지출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 돈으로 차라리 집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것이 장기적인 행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다. 자유로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나는 이미 자유롭다. 여전히 유치원 교사로 살고 있지만 이제 그 옷에 내가 맞춰졌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 얻게 된 자유들이 있다.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 굳이 뉴욕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나뭇잎 사이 부서지는 햇살은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보다 더 나이가 들고 죽을 날이 다가오면 뉴욕의 가을을 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열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 현명함과 미래에 대한 밝은 계산 대신 눈먼 열정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고 싶다.
퇴직하고 바로 뉴욕으로 가야겠다. 그곳에서 움츠린 채 자유의 열정을 가슴속에 억누르고 있는 40대의 나를 만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잘 견디고 살아온 50대의 나를 향해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