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늘 고마워

by joyfulmito

방학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그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을 만난다. 최근 친구들을 만나 옛날이야기를 나누다가 몇 번이나 깜짝깜짝 놀랐다. 과거가 되어버린 일들에 대해 서로가 기억하는 부분이 다르고, 그 기억의 조각들은 어김없이 친구에게 받은 부분보다는 내가 친구를 위해 무언가 해 주었던 기억들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웃음 터뜨렸다. 인간의 기억이 이런 거구나.


그런 중에도 유독 서로에게 고마운 것만 기억하는 친구관계가 있다. 혼자서 마음 고생하던 사춘기 시절 나의 괜한 심술을 받아주었던 친구. 첫 아이를 낳고 훗배앓이와 갑작스러운 우울함으로 조리원에서 울고 있던 나를 찾아와 귀걸이를 선물해 주었던 친구.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났으니 벌써 30년 지기가 되었다.


지금은 멀리서 살고 있는 친구에게 놀러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친구가 대구에 올 일이 생기면서 1박 2일로 함께 포항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30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함께 여행을 가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직장을 잡느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둘 다 동시에 시간 여유가 있었던 시기는 없었더랬다. 내가 제주살이를 하는 동안 친구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를 방문하기도 했고, 친구가 살고 있는 고흥으로 내가 놀러 가기도 했지만 둘만 함께 여행을 가기는 처음이다.


갑작스러운 여행 계획에 마구 설렌다. 친구와 여행 스타일이 잘 맞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한다. 숙소를 결정하기에 앞서 친구가 시끄러운 곳에서는 잘 못 잔다고 숙소의 후기를 꼼꼼히 읽기 시작한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렇게나 잘 지내다 오기에는 우리 나이가 적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서로를 배려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꽤 성숙했고 서로를 충분히 존중한다.


무사히 숙소를 예약하고, 둘 다 서로 운전을 하고 싶어 하는 중에 ㅋㅋ 내 차를 가져가기로 했다. 여행 장소들을 주로 내가 찾아보는 편이라 내가 운전을 하는 것이 나는 편하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 약속 시간보다 미리 도착해 그림을 그리며 여유롭게 친구를 기다렸다.

그림을 마무리할 즈음 따뜻하게 무장을 한 친구가 가방을 하나 메고 활짝 웃으며 카페에 들어선다.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여행 계획 따위 세우지 않고 당장 먹을 점심 메뉴를 정한다.


날씨가 엄청나게 춥다. 주차장에서 식당까지 걸어가며 날려갈까 걱정을 하는 사이 "니 발목 안 시리나? 나이 들어서 고생할라고 발목을 다 내놓고 다니노?" 하며 친구가 잔소리를 한다. 이미 7년 전 겨울에도 친구는 똑같은 소리를 했었다. 7년의 세월을 늙어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 보다. 옛날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었다.


포항으로 가는 길,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의 대화가 깊어간다. 친구가 속마음을 많이 나누지 않는다고 어릴 적엔 섭섭하단 얘기도 했었는데... 3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더 친밀해졌고, 더 성숙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모두 다 꺼내 놓아도 든든하고 신뢰가 되는 사이가, 그러한 존재가 되었다.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일 수는 없다. 서서히 자라 가고 깊어졌음이 감사하다.


함께 미술관 구경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밤을 새워 이야기하고 예쁜 카페를 찾아가고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어릴 적 교회 수련회로 함께 갔던 바닷가를 찾아가 파도를 구경하며 신이 나는 동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나누고 함께 사색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또 함께 자라 간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우리도 많이 늙었다. 만날 때마다 서로 위로차 "옛날이랑 똑같네"하던 소리도 이제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 마음을 간직한 채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든든하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어느 한순간도 불편하지 않고 매 순간 매 순간이 자연스럽고 소중하다. 친한 친구와 여행이 잘 맞다는 사실이 내게는 무척 기쁜 일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운 여행을 선물하는 것이 큰 기쁨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대방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란 것도 안다.


최근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친구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다. 말로 위로되지 않는 큰 일을 겪은 친구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일들이 친구에게 위로가 되었기를...


"나는 너한텐 늘 고마워." 했더니 친구가 웃으며, "내한테 잘해라." 하더니 친구가 늘 하는 내게 고마웠던 레퍼토리를 꺼낸다. 나는 늘 고마웠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꺼내는데 친구는 늘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내가 친구에게 좀 더 잘해야 할 것 같다.


다음에 또 같이 여행 가자. 그전에 너네 집에 또 놀러 갈게. 나 올해 시간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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