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약속이 없는 날이다. 오늘은 기필코 세차를 맡기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세차기가 너무 추워서 안 하거나, 늦은 시간이라 안 하거나, 고속도로 타면 어차피 더러워질 거라고 미루다 보니 차 꼴이 말이 아니다. 오늘은 실내 세차까지 맡겨야지.
오랜만에 여유로우니 좀 뒹굴거려야겠다고 아침부터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핸드폰 이 녀석이 내 시간을 홀랑 훔쳐가 버렸다. 오전이 다 날아가다니. 그제야 급히 일어나 대충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세차장에 차를 맡겨놓고 여기저기 걷다가 그림 그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여유로우니까 그림도 정성 들여 그린다. 요즘 시간을 많이 안 들여서 그런지, 정체기인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늘은 팔레트도 바꾸고 그림도 천천히 그린다.
아이들 하교할 시간 되어 집에 갔다가 곧 세차장에서 다 했다고 연락이 와서 차를 찾으러 갔다. 깨끗해진 차를 뿌듯하게 주차해 두고 집에 들어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며 "오늘 세차한다더니 안 했어?"하고 묻는다. "엥? 세차한 건데? 더러워?" 했더니 본네뜨에 새똥이 묻어 있단다. 이럴 수가!!!
설마 새똥이 묻은 채로 내게 차를 넘기지는 않았을 텐데? 겨우 5분 차를 몰고 집에 오는 길에 새똥이 묻었나?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기 전에 다른 데 세워둔 것도 아닌데?
남편이 의아해하며 차 받을 때 확인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차를 찾으러 갔을 때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실례될까 봐 확인을 못 했다. 이런 걸 확인하는 건 당연한 거구나.
어떤 직업이나 직업병이 없을 순 없는데, 교사인 나는 혹시 내가 아이들에게만 해야 할 행동을 다른 어른들에게도 하게 될까 봐 조심스럽다. 세차를 맡긴 후 차를 보는데 '청소 검사'를 하는 것 같아 미안해서 확인을 못 했다.내가 필요 이상으로 민감했구나. 내가 확인을 하지 않는 바람에 괜히 상대를 의심하게 돼 버렸다.
남편에게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하고 나면 그전 날 서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거 다른 사람들도 그래?" 하고 물었다. 어른들끼리 약속을 했는데 굳이 하루 전 날 왜 잊었을까 봐 서로 확인을 하는지 난 늘 이해가 잘 안 되었는데, 내 주변 사람들이 다 교사라서 그런지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그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난 어른들한테 그런 거 한 번 더 확인하면 어린애 취급하는 거 같아서 싫어할 거 같았거든. 너무 민감했네. ㅋㅋ
최근에 발견한 내 직업병은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하는 거다. 이 버릇을 고치려고 했더니,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이해도가 확 떨어진다. 이래서 내가 두 번씩 이야기하게 됐구나. 방학 중에 친구들 만났을 때는 확실히 이런 현상이 줄어들던데, 학기 중엔 어른들과 얘기할 때도 자주 이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