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유럽 갈까?" 하는 말을 더러더러 해 왔었다. 그런데 이렇게 적절한 때에 가게 될 줄이야.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다니지 못하는 사이에 여행 경비가 넉넉하게 쌓였고, 여행이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시점에 첫째는 중3, 둘째는 중1이 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나는 휴직을 결정하면서 2월 말이 여유로워졌다.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는데 안 갈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유럽 여행을 가면 어디에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늘 모든 면에서 취향이 갈라지는 두 아이가 똑같이 파리와 베니스를 꼽는다. 그러면 엄마가 가고 싶은 로마도 같이 넣어서 가자. 6개월 전 항공권을 끊으면서 말로만 떠들던 우리의 꿈이 현실에 한 발짝 다가선다.
지난 겨울 방학에 딸아이가 중고서점에서 루브르 박물관에 관한 책을 한 권 사며 '언젠가 갈 거니까 미리 읽어둬야겠어.' 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실현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버킷리스트에 '에펠탑이랑 개선문 보러 가기'를 적었다는 아들이 어른이 되어서나 갈 수 있을 줄 알았다며 감격한다. 몇 년 전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로마에는 꼭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 주는 떨림과 설렘, 감격이 있다. 11박 13일의 여행 동안 가는 곳마다 멋지고 좋았지만 내가 갈망하던 것들이 주는 감격을 다른 어떤 것도 뛰어넘지 못한다.
사실 사춘기 두 아이를 데리고 두 주 가까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충분히 자란 아이들의 체력은 나를 능가하고, 수십 킬로를 걸으면서도 징징대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가며 감정 기복을 겪는 중에, 많은 것들을 신경 쓰며 여행을 꾸려나가느라 예민해진 엄마 아빠의 감정이 부딪힌다. 한없이 신나다가 어이없이 사소한 일에 기분이 틀어진다. 가족이지만 다 이해하기 힘들고 가족이기 때문에 쉽게 감정을 드러낸다. 서로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존중하며 큰소리 내지 않고 고비들을 넘긴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줄 모르는 사춘기 아이들을 너그럽게 참아주는 데는, '본전 생각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비결이 될 것 같다. 큰맘 먹고 멀리까지 큰돈 들여왔으니 더 많이 보여주고 싶고 더 많이 느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욕심이다. 어른들만큼 많이 보고 많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은 깜냥껏 많은 것들을 이미 보고 느끼고 있다. 두 주 동안 감격으로 눈물 날 것 같다고 한 곳은 각자의 버킷리스트 한 장소씩이었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본전 생각하지 않는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보다 내가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여행이다. 아이들은 같이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다리가 아파도 참아내고, 음식이 맞지 않아도 이해하고, 여행지에 대해서 함께 찾아보고, 여행 중에 엄마 아빠 인생샷도 남겨줄 수 있으니 충분히 기특하고 대견하다.엄마 아빠도 이만하면 훌륭한 팀워크를 이루며 아이들에게도 잔소리 많이 하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가족여행을 꾸려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