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고귀한 희생, 감사합니다

by joyfulmito

일어나자마자 나는 그림을 그리고 아들은 성경책을 읽는다. 포인트 제도의 힘이 대단하구나. 학교에서 ‘칭찬스티커 모으기’는 늘 일등 한다더니, 목표가 생기니 집중력이 대단하네. 1년 내내 5장도 읽지 않던 성경을 사흘 만에 20장을 읽어냈다. 어려운 단어들을 물어가면서.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문제집을 끝내고 짐을 꾸린다. 여행 중에 할 일을 스스로 끝내니 기특하다. 포인트 제도 덕분에 엄마는 아이들을 마구 부려(?) 먹을 수 있다. 아침 준비하는 데도 주방 보조 하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네. 전날 빨아 둔 빨래를 개고 이불 정리하는 것도 아이들 몫이 되고 나니 체크아웃 준비는 일찌감치 끝내고 엄마도 아침에 그리던 그림을 마무리하며 마음껏 여유를 부린다.


오늘의 첫 장소는 숙소에서 가까운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이다. 딸은 박물관이라면 관심 제로인 데다가 이런 잔인한 역사는 무서워하기까지 한다. 역시나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귀신의 집에라도 들어가는 것처럼 잔뜩 겁을 먹고 “무서워”를 반복한다.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이곳에서 버젓이 자행된 현실이었다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마음 여린 딸을 데리고 오기에 버거운 장소이긴 하지만 광주에서 5.18의 기록은 꼭 찾아보고 싶었다. 어제 과학관에서 열심히 견뎌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아이들이 선선히 ‘엄마가 가고 싶은 곳도 한 군데 넣어야지.’할 때, 당당히 고른 장소가 이곳이다.


“무서우면 안 보고 그냥 지나가도 괜찮아. 그래도 이런 희생 덕분에 우리가 더 좋은 곳에서 살게 된 거니까…. 알긴 알아야 할 역사지.” 하니, “나도 알아. 그래도 무서워.” 한다. 딸은 눈을 가리고 대충 훑어보며 기록관을 휙휙 지나가고, 역사에 관심 많은 아들은 꼼꼼히 설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을 엄마에게 열심히 설명해 준다.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기록관 내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이곳에 비치된 5.18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시간을 더 보내고 싶지만, 현실은 겁에 질린 딸아이를 따라 걸음을 재촉하며 곁눈질로 기록관의 내용들을 살핀다. 아쉽기는 하지만 아이들과 단편적인 이해를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관을 나오며 아이들과 5.18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어느 대목에서는 분노하기도 하고 어느 대목에서도 감격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울컥한다. 고귀한 희생, 감사합니다.


박물관에서 1시간 남짓 시간을 보내고 나왔는데 딸아이가 하는 말. “엄마, 어제 과학관에서 엄마가 피곤하다고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나도 어제 똑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하하. 각자 지겨운 시간을 보내면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아주 의미 있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광주 동구 금남로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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