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내내 열심히 놀았지만 방학이 끝날 때까지 열심히 놀 계획을 세운다. 다음 주엔 글램핑을 1박 잡아두고 오늘은 당일치기 전주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갔던 곳에 다시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전주 한옥마을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도 않긴 했다. 하지만 최근에 본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촬영지라는 것을 알고 나니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아이들과 식당에 가기 위해 그전날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두 번이나 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결국 못 받고 왔다. 오늘 아침 일찍 가려다 검사를 받고 전주까지 당일로 갔다 오기는 너무 출발이 늦어질 것 같았다. 결국 전주에 가서 검사를 받기로 하고 일단 출발하기로 했다.
아빠는 바빠서 오늘 같이 갈 수 없다는 말에 아들이 실망한 빛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셋이 여행 가는 거 오랜만이지 않아?" 아이들 어릴 적에 차에 태우고 신나게 여행 다니던 생각이 나서 엄마는 신이 났다.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바로 지난여름 방학 때 우리 셋이 여행 갔었구나.
전주에 도착해서 바로 선별 진료소로 직행했다. 전주는 대구만큼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내 생각은 오판이었다. 더군다나 점심시간에 걸려 버려서 검사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선별 진료소를 검색해 보았지만 점심시간 정보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 대구는 백신 패스가 중단되었다고 하고, 점점 확인을 하지 않는 추세라고 하니 일단 한옥마을로 가 보기로 했다.
한옥마을 구석구석 주차해 둔 차가 많이 보이긴 했지만 "관광지에 왔으면 돈 써줘야지." 하며 호기롭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생각보다 날씨가 차갑다. 오목대에서 보는 경치가 좋다며 비탈을 오르기 전에 딸에게 의향을 묻는다. "이 정도는 괜찮지?" "응" 딸의 허락을 받고 오목대에 올랐다. 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너무나 예쁜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엄마와 누나가 촬영 모드에 돌입하자 아들의 눈빛에 또 다른 실망이 가득하다. 늘 이렇게 엄마와 누나가 신나게 사진을 찍는 동안 아빠가 같이 있어 주었는데, 오늘은 오롯이 혼자 기다려야 한다. 아빠가 같이 가지 않는 것이 아쉬운 또다른 한 가지 이유였구나. 하지만 이렇게 멋진 경치를 눈앞에 두고 어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목대를 내려와 한옥마을의 중앙대로로 나오니 아들이 수업시간에 본 경치라면 반가운 채를 한다. 다양한 먹거리 가게들을 보며 집에 갈 때 무얼 사 갈지 의논하기도 했다. 검색해 둔 맛집으로 갔는데 예상대로 백신 패스 때문에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김밥이나 사서 차에 가서 먹자며 분식집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할머니 혼자 운영하시는 작은 식당엔 큐알코드 장치가 없다. 음식을 주문하고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따뜻한 곳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너무 다행이다. 더군다나 음식도 너무 맛있다. 할머니께서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푸짐한 음식 덕분에 백신 패스로 상한 마음도 잊어버린다.
길거리 곳곳에서 사진을 찍어대는 엄마와 누나 때문에 아들은 심심함이 차 오른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아서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렇게 따라다녀야 나중에 연애라도 하지' 하며 나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그 합리화는 효력이 있어서 스스로를 당당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럴 때 쿵짝이 잘 맞는 딸이 있어서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한다. 분명 남편이 같이 와도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어 주지는 않았을 거야. 다만 이젠 딸보다 사진 실력이 떨어지다 보니 딸의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살짝 불편하게 한다. 딸이 찍은 사진의 구도를 보고 베끼거나 사진을 찍어 주고 검사를 맡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끔은 내 스스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고서 딸에게 의기양양하게 자랑을 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나온 철물점을 찾기 위해 한옥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하니 아들은 입이 뾰로통하게 나온다. 표정은 심드렁하지만 잘 참고 기다려주니 고맙다. 맛있는 거 사줄게. 가자.
목을 축이기 위해 먼저 음료 한 잔씩 사 들고서 먹고 싶은 것들을 마구 사서 담기 시작했다. 관광지라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여기 와야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온 김에 사야 하지 않겠는가. 에그타르트, 고로케, 딸기 모찌, 바게트 버거, 만두에 선물로 드릴 수제 강정까지 샀다. 그리고 지금 먹을 닭꼬치까지. (닭꼬치는 사실 먹기 좀 힘들었다. 소스가 뚝뚝 떨어지고 손이며 입이며 여기저기 처발처발) 음료에 먹을거리를 잔뜩 사들고 주차장까지 오는 길에도 여전히 그림 그리고 싶은 풍경들을 열심히 찍는다. 이럴 때는 손이 하나쯤 더 있으면 좋겠다.
호기롭게 주차해 둔 주차비 역시 장난이 아니다. 이래서 주차장 텅텅 비어 있었나 보다. 뭐 실수로 호텔 주차장에 넣어놨다가 2시간에 2만 원을 냈던 거에 비하면 반값이잖아. 이런 거 배 아파하지 말자. 마음 편하게 잘 놀았잖아. 이제 집에 가자. 가는 길에 또 마이산 보이겠네. 난 마이산 너무 귀엽더라. 마이산 휴게소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 바로 코 앞에 보이는 마이산에게 손을 흔든다. 잘 있어라.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