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가 지나가시는 말로 "군위 한 번 가 보고 싶더라." 하셨다. 그리고 나는 "군위? 가까운데? 같이 가요. 엄마." 했었다. 몇 주 후 남편에게 얘기해서 아이들을 맡기고 엄마, 아빠랑 약속을 잡아두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엄마가 아무런 이유 없이 펑크를 내신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는 일념 하나로 엄마는 뭐든 " 괜찮다, 괜찮다. 너네나 재미있게 살아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이런 배려에 힘이 많이 빠진다. 자녀들도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통해 효녀라도 된 듯 뿌듯한 건데, 엄마는 이런 기회를 도통 주질 않으신다. 그렇게 불평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 엄마 한 고집하신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엄마가 무심코 "나는 군위 한 번 가 보고 싶더라." 하신다. 그 말을 들은 내가 버럭 화를 내며 옛날 얘기를 꺼냈더니 "그랬나?" 하시며, 전혀 기억을 못 하신다. 이렇게 딸의 성의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건 너무 한 거라며 열을 올리고, 다시 엄마와 군위 나들이를 약속했다.
사실 그 사이 엄마도 나이가 더 드셨고, 늘 강인하기만 하시던 엄마도 조금은 약해지셨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끊을 때면 " 그래, 고맙다." 하기 시작했고, 딸과 만나기로 한 날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여전히 "나는 괜찮다."와 "박서방하고 가는 게 더 재미있지 않겠나?" 등의 말들을 늘어놓으시긴 하시지만, 이제 조금은 엄마의 필요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셨다. 그것만이라도 큰 발전이다.
엄마가 나이 들어가시며 겪는 변화에 따라 내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 사실이다. 무작정 엄마를 좋아하던 유아기, 비판의 눈이 커졌던 사춘기,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던 청장년기를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 노인이 되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한창때의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강자로 인식하고 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고, 너무 쉽게 타박을 하기도 한다. 깊이 반성한다.
엄마를 차에 모시고 드디어 군위로 향한다. 엄마는 이야기하시기를 좋아하신다. 엄마가 딸을 만나는 데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으시다. 우리 엄마는 오로지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시다. 내가 엄마를 만날 때 우리 가족들은 두고 혼자 나서는 이유다. 많은 이야기를 하시다 보면 들었던 얘기들이 반복되기 일쑤다. 하지만 오늘은 타박하지 않고 잠잠히 듣기로 한다. 어느 시점에서는 엄마에게 치유가 일어나고 어느 시점에서는 한이 풀리기도 할 것이다. 힘든 인생을 살아온 엄마는 한풀이에 평생이 걸리시나 보다.
"엄마, 식당 두 곳 찾아뒀는데, 뭐 드실래요? 하나는 등갈비고 하나는 국숫집이에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엄마는 " 네가 고기 먹고 싶으면 등갈비 사주께"라고 답하신다. 나도 엄마가 국수를 픽 하실 줄은 이미 알았다. 그래도 엄마 모시고 가는데 조금 더 나은(?) 음식도 권하는 체면을 차린 걸지도 모른다.
화본역에 가는 길에 그 국숫집에 줄이 잔뜩 서 있는 게 보인다. 화본역부터 구경하고 다시 오기로 한다. 귀여운 화본역 앞에서 엄마 사진 찍어 드리려고 했더니 싫다고 그냥 가 버리신다. "난 어릴 때 하도 외로워서 사진도 혼자 찍는 건 싫어." 엄마의 레퍼토리가 시작된다. 둘이 같이 셀카를 찍어보지만 셀카로는 예쁜 화본역이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오늘 하늘도 예술인데... 화본역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엄마 내 사진 찍어주세요." 하며, 사진 찍을 각도를 보여준다며 억지로 엄마를 화본역 앞에 세웠다. 그렇게 엄마 사진을 찍고 '이렇게 찍어주세요'하며 주문을 넣는다. 그렇게 엄마와의 여행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화본역을 돌아보고 동네 마을을 산책한다.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지만 이렇게 동네를 돌아보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 내가 엄마 닮은 거였구나. 다른 사람들과의 여행에서는 제안해보지 못한 것, 나 혼자 여행할 때만 하던 것을 엄마가 먼저 제안하신다. 엄마랑 꽤 잘 맞는 여행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동네를 걷다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건물들을 발견하고, 주황색 커어다란 호박과 주황색 지붕이 잘 어울리는 예쁜 집도 발견하고, 엄청나게 크고 울창한 나무도 만난다. 이런 예쁜 풍경들을 찾아내는 것은 보물찾기 놀이와 같은 즐거움을 준다. 여전히 줄이 긴 국숫집을 지나 우연히 사 먹은 호떡 맛이 또 일품이다. 그 자리에서 금방 구워 겉은 바삭하고 속은 꽉 찬 정성스러운 호떡이다. 맛있는 호떡을 먹으며 꽉 찬 소를 마스크와 옷 여기저기에 묻혀버린 칠칠맞은 마흔네 살 딸을 위해 엄마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고 예비용 마스크를 꺼내 주신다.
동네 구경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줄을 서야 하는 국숫집 앞을 지나 우리는 중국집으로 향했다. 맛집에 별 흥미가 없는 모녀는 미련도 없이 국숫집을 지나쳐 중국집에서 짜장면 두 그릇을 시킨다. 늘 짬뽕파인 엄마와 딸은 짬뽕은 시간이 좀 걸린다는 말에 미련 없이 짜장면으로 메뉴를 바꾼다. 바쁠 일 없는 여행객이지만 음식을 기다리는데 시간을 쓰는 일에는 흥미가 없다. 금방 차려진 짜장면 한 그릇씩을 달게 비우고 근처 카페로 향한다. 내 취향의 카페가 근처에 하나 보이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오늘도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는 영 흥미가 없던 우리 엄마조차 최근 카페의 아늑한 공간에 반하기 시작하셨다. 카페에서 아무런 메뉴도 먹을 게 없다고 주문을 안 하시더니 오늘 시킨 말차라떼는 달지도 않고 쌉싸름한 게 괜찮다는 평가를 내리셨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 얘기를 꺼냈더니 엄마도 읽으셨다며 무심결에 스포를 해버리신다. 엄마와 이런 책 이야기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참 좋다. 내가 토지를 읽고 난 후 엄마와 하동 최참판댁을 가서 책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더랬지. 엄마와 참 많이 다른데 또 참 많이 비슷하다. 그래서 엄마와 딸은 영혼의 친구인가 보다. 카페에서 나온 후에도 우리는 카페 주변 마을을 산책한다. 대추밭 구경도 하고 닭장 구경도 하고 노랗게 익은 들판도 구경한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이다. 나는 그곳에 이미 가 봤고 엄마는 그 영화를 보시지 않았지만, 가는 길에 누렇게 펼쳐진 논 풍경을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 논 풍경보다 엄마는 조금 더 많이 딸과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하시는데 관심이 크신 것 같았지만, 어찌 됐든 엄마가 좋아하시니 만족스럽다. 영화 촬영지 앞에서 또 한 번 엄마 사진을 찍어드리기 위해 실랑이를 벌인다. 몇 시간 전에 읊었던 그 대사를 또 읊기 시작하신다. " 나는 어릴 때...." "엄마, 이제 그 말 그만해. 외로웠던 시절의 두배를 안 외롭게 살았는데, 아직도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 그렇긴 하네. 그래도..."
사람은 어릴 적 행복했던 기억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엄마가 어릴 적 불행했던 기억으로 평생을 불행하다고 주장하실까 봐 겁이 난다. 엄마가 옛날이야기를 그만하셔도 될 만큼 지금 이 순간이 충분히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엄마랑 더 자주 여행을 와야겠다. 내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선물해 준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행복한 노년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
집에 와서 엄마가 찍어준 내 사진을 보다가 깜짝 놀란다. 딸에게 "할머니 사진 진짜 잘 찍으셨다 아이가?"하니, 딸은 "응,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잘 찍으셨는데? 완전 요즘 스타일이야."한다. 엄마가 찍어준 사진을 카톡 프사로 바꾸고 엄마에게 칭찬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엄마가 지금까지 해 보시지 않은 일들 중 엄마가 잘하시는 게 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