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왜 갑자기 등산을 해?

by joyfulmito

바닷가에서 실컷 놀고 부여에 있는 우리 숙소에 도착했다. 방은 작지만 커다란 창밖으로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호수가 펼쳐지는 곳이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준비해두신 뽀오얀 침구는 또 얼마나 푹신한지. 이틀을 머물 숙소가 마음에 들어 다행이다. 인덕션이 하나뿐이라 요리하기에 불편하긴 하지만, 우린 바쁠 것 없는 여행객이니 천천히 해서 푸짐하게 차려 먹는다.


다음 날 아침도 여유롭게 차려 먹고 오전 내내 침대에서 쉬며 뒹굴었다. 아이들도 오전 내내 깔깔거리고 투닥거리기를 반복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숙소에서 점심까지 챙겨 먹고 오후가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백제문화단지를 향해 나섰는데 하늘이 시꺼멓게 어두워지더니 눈비가 내린다. 이 날씨에 야외 다니긴 힘들겠다 싶어 부여박물관 쪽으로 방향을 돌렸는데 이내 다시 맑아진다. 날씨 맑을 때 실내에 있기는 아쉬워 다시 낙화암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 와 보는 곳이라 가보고 싶은 곳은 많으니 사정에 따라 아무렇게나 방향을 바꾼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삼천궁녀 이야기 외엔 아무런 정보 없이 낙화암에 왔는데 잠시 들러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부소산성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경사가 완만해서 걷기에는 괜찮았지만 오르막에 취약한 딸이 갑자기 왜 등산을 하냐며 입이 잔뜩 나왔다. 미리 장소에 대해 알았더라면 충분히 이야기하고 의논해 보고 결정했을 텐데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으니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다. 느릿느릿 발걸음이 축축 늘어지는 딸을 데리고 낙화암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을 듯했다. 물론 나도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이 녀석이 누굴 닮았겠는가. 어릴 적 주말 아침이면 뒷동산에 가자는 아빠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나서긴 했지만 가는 내내 엄청나게 투덜거렸더랬다. 나 역시 날 닮은 딸을 억지로 질질 끌며 산을 오르게 될 줄 그때는 상상도 못 했지.


등산을 좋아하는 아들은 의기양양하게 앞서가며 “누나 빨리 좀 와.”를 수백 번 반복하고, 그 사이 딸은 다리를 질질 끌며 곳곳에 앉아서 “나는 더 못 가겠어. 갔다 와.”를 수백 번 반복한다. 나는 그사이 어디선가 보조를 맞추며 두 아이를 살펴야 했다.


지친 아이에게 조그만 흥밋거리라도 될까 싶어 올라가는 길 매점에서 뻥튀기 하나를 사려는데, 현금이 없다. 내가 당황하니 할머니께서 계좌이체 해도 된다며 계좌번호를 보여주신다. 그렇게 뻥튀기 하나를 외상으로 샀다. 역시 먹을 게 있으니 분위기가 달라진다. 뻥튀기를 잘라먹으며 의자왕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낙화암에 도착했네. 멋진 경치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은 훨씬 수월하다. 뻥튀기로 재미난 모양을 만들며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비탈길을 내려왔다. 들판에서 민들레 씨를 불며 또 신나게 뛰어다니며 논다. 아이들은 넓은 들판이 펼쳐지면 무조건 신이 나는 것 같다.


다음 장소로 부여박물관에 들어가며 “박물관도 내가 싫어하는 곳인데” 하며 입을 삐죽 내밀던 딸이 막상 박물관에 들어가더니 신이 났다. 책에서 본 걸 직접 보니 신기하다며 문화유산 답사기 만화에서 읽었던 내용도 들려준다. 문화예술이 발달했던 백제답게 박물관도 마치 미술관인 듯 아름다운 작품들로 가득하다.

함께 다니는 여행에서는 각자의 취향을 모두 따를 수 없으니 때로는 가기 싫은 곳도 따라다니게 되지만, 그곳에서 의외로 신기한 장면을 만나기도 하고, 의외로 마음에 드는 것들을 찾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의 시야가 넓어지고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된다.

부여 초동펜션: 충남 부여군 규암면 호반로 164번길 12

낙화암: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여박물관: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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