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방학 과제

by joyfulmito

방학이 시작되면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만나는 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는데도 우선순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단연코 넘버 원을 차지하는 친구는 대학 때부터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 ㅇㄱ이다. 다른 친구들이 전화를 할 때마다 늘 둘이 같이 있다며 너네는 친구 너네 둘밖에 없냐는 농담도 많이 들었더랬다.(사실 삼총사 중 하나가 대학 졸업 후 서울로 가면서 우리 둘만 남게 되긴 했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도 시험 기간이면 늘 어김없이 오후 시간을 같이 보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복직을 하고 나니 둘 다 자주 만날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방학만 하면 제일 먼저 만나야 직성이 풀린다.


역시나 방학을 하자마자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점심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아이 둘이 친구들과 나가서 점심을 먹겠다기에 혼자된 김에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했나? "오늘도 시간 괜찮으면 오늘 볼래?" 그리고 반가운 친구의 연락, "그래 12시 반에 거기서 보자."


친구네 동네 친구 추천 식당까지는 걸어서 1시간. 약속 시간 1시간 전에 그림도구를 챙기고 장갑으로 무장하고 집을 나서 역사 강의를 들으며 길을 걷는다. 바쁠 일 없으면서도 발걸음이 빠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지면 본능적으로 뛸까 말까를 고민한다. 워~워~ 난 안 바쁘다. 발걸음이 빨랐던지 10분이나 일찍 도착할 듯하다. 가던 길 걸음을 멈추고 아트박스에 들렀다. 두리번두리번 구경을 해 보지만 어릴 때만큼 재미나지 않다. 별로 필요한 물건도, 갖고 싶은 물건도 없다. 예전에 문구점 쇼핑도 눈이 돌아가도록 재미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보내려던 시간 10분을 채우지 못하고 문구점을 빠져나온다.


친구와 만나면 별 일 아닌 이야기에도 깔깔대게 된다. 알고 지낸 지 25년이 되었고 그 사이 많은 변화도 있었지만 여전히 대학 시절 깔깔대던 바이브가 친구를 만나면 바로 살아난다. 쉴 새 없이 조잘대며 식사를 마친 후 친구가 야심 차게 "갈 카페도 골라놨지. 우리 동네 카페 큰 거 생겼거든." 하는데, "팀버? 지난번에 같이 갔잖아." 대답하며 다시 함께 깔깔댄다. 팔짱을 끼고 카페를 찾아가는 내내 뭐가 그리 재미있었던가.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친구는 나의 영향으로 토지를 읽고 있다고 하고, 다음에 만났을 때는 파친코를 샀다고 자랑하겠지. 친구가 알려준 방학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기 다이어트법을 나는 절대 성공할 수 없겠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 네 덕분에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자랑 해야겠다고 다짐한다.(영어쌤이 국어쌤, 미술쌤처럼 사냐고 친구가 깔깔댔다.) 어느새 친구의 알람이 울린다. 아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친구는 옛날 일들이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지만 친구와 함께 나눈 추억이 많다. 바나나를 좋아한다며 대학 교정에서 바나나 한 손을 사서 나눠 주던 일,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드나들던 도서관, 함께 자주 가던 학교 앞 생과일주스 가게, 면허를 처음 딴 친구의 차를 타고 팔공산에 올라가며 진땀 흘리던 일, 서울로 간 친구에게 놀러 갔던 일, 친구 생일날 사갔던 케이크, 친구의 어학연수 시절 놀러 갔던 밴쿠버와 로키 산맥, 남편이 출장 간 날 신혼집에 놀러 온 친구와의 하룻밤,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갔던 경주 펜션과 미술관, 함께 쇼핑 다니며 옷을 사려고 할 때마다 '너 이거 비슷한 거 있다'며 저지시키던 일..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떠올리며 돌아오는 길 혼자 또 웃으며 다른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는다.

친구랑 헤어져 그림 한 장 그리고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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