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게 여행합니다.

by joyfulmito

삼척에 3박 여행 일정을 잡고 갈 만한 곳과 식당, 카페들을 찾아두었다. 하지만 일정표는 없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 일단 길을 떠난다.


예전에 난 철저하게 관광 위주의 여행객으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다녔다. 보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다음에 이곳에 또 올 수 있을까 싶어 그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 보고 와야 직성이 풀렸다. 여행만 가면 체력도 대단하다.


하지만 세월이 바뀌었고, 내가 바뀌었고, 주된 나의 여행 메이트는 남매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남편이 휴양형 여행자였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꼬맹이들의 취향과 체력이 가장 큰 고려대상이 되었다. 덕분에 나 또한 게으르게 여행하기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3박 4일의 삼척여행 중 우리의 일정은 하루에 관광지 한 군데, 음식점 한 군데, 카페 한 군데가 고작이다. 늦게까지 영화를 보고 늦게까지 실컷 자고 일어나 아점을 먹고 준비해서 집을 나서면 오전이 이미 훌쩍 지나가버린다. 가고 싶었던 곳을 한 군데 천천히 둘러보고 나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게으른 겨울 해가 이미 퇴근을 해 버린다.


삼척 여행 3일째. 적어둔 삼척 여행지가 수첩에 가득한데 오늘은 강릉으로 떠나버린다. 유명한 관광지는 주차장을 진입하기 전부터 표가 난다. 근처에 가니 이미 여기저기에 자동차들이 차고 넘친다. 입구에서 내리고 남편이 주차를 하고 올 때까지 기다린다. 운 좋게 바로 앞에 자리가 생겼다며 신이 난 남편이 의기양양하게 걸어 들어온다.


지난번 영월에서 갔던 젊은 달와이파크가 좋아서 오늘도 강릉까지 왔는데 느낌이 비슷해서인지 지난번만큼 임팩트가 없다. 하지만 산속에 있는 영월에는 강렬한 빨강을, 바다뷰배경으로 하는 강릉에는 시원한 회색으로 야외를 꾸몄다는 점이 신의 한 수다 싶다. 물론 곳곳에 마음에 드는 작품들도 가득하다.


어딜 가나 인생샷이 중요한 요즘엔 유명한 포토존 앞엔 줄이 길게 늘어진다. 게으른 여행자인 우리는 쿨하게 미련 없이 긴 줄을 지나친다. 우리만의 방식으로 우리만의 포토존을 찾아내고 충분히 만족한다.


여행 오기 전 맛집을 잔뜩 찾아두었지만 배 고플 때 멀리까지 찾아가진 않는다. 차에 앉아 잠시 검색 버튼을 두들기고 이내 이동한다.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니 이럴 때는 아무 데나 가도 괜찮다.


다시 삼척으로 돌아오는 길, 해변에 잠깐 내린다. 가장 게으른 여행자 사춘기 아들은 "전 차에 있을게요." 하고 재빨리 의사를 밝힌다. 그러려무나. 잘 기다려주는 것만도 고마울 나이다.


추암해변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촛대바위가 유명한 곳이지만 우리는 카페로 가는 길 오리 떼를 보고 신나 한 후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호기심 많은 엄마가 촛대바위를 향해 기웃기웃 거려 보지만 해변에서 바로 보이지 않는 사실을 알고 미련 없이 카페로 따라 들어간다.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보지 않아도, 일상이 좀 풀어져 게임을 더 많이 하고 과자를 더 많이 먹어도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조금 더 서로에게 친근해진다. 가족이 온종일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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