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고 갑니다

by joyfulmito

밤에 또 잠을 설쳤다. 자다가 한 번 깨면 잠이 잘 들지 않는데, 여행지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가는 신호인 것 같다. 잠이 깨서 글을 쓰다가 책을 읽으며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잠이 들었더니 알람소리에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게 아니라 같이 내려가 차려진 조식을 먹는 일이니 몸이 힘들어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10분을 더 자고 10분을 더 자고 일어나 아이들과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여러 가지 음식이 차려져 있어서 몇 개의 메뉴만 떠와서 깨작되는 아들 옆의 다른 테이블에 우리 아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다른 집 아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난다.


오전에 창경궁과 창덕궁을 돌아볼 예정이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일정을 바꾸었다. 딸이 가고 싶은 전시회가 있었지만 동생의 바람대로 뜻을 바꾸어 주어 오후에는 아쿠아리움에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조금 더 쉬고 10시쯤 숙소를 나섰다. 오늘 일정은 4시 40분에 버스를 타기 전에 빈센트 발 전시회와 아쿠아리움뿐이니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덕분에 아침을 먹고 와서 눈을 잠깐 더 붙일 수 있었다.


버스를 한 번 환승하고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여정에 버스를 바로 앞에서 보내거나 놓치기를 반복하며 1시간 30분 이상이 걸려 전시회에 도착했다. 날씨는 싸늘하고 밖에서 버스를 기다리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중에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늠름하게 자란 아이들이 기특하다.


오늘 전시회는 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골랐지만, 오늘도 재빠르게 관람을 끝낸 후 벤치에 자리를 잡고 폰을 친구 삼아 엄마와 누나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휘리릭 둘러볼 뿐이지만 창의적인 아들에게도 재미난 관람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사춘기 아들에게는 티켓값의 본전 생각 따위 해서는 안 된다. 기대를 확 낮춘다. 아들은 자신의 속도로 꾸준히 자라고 있다.


한창 점심시간이라 웨이팅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했는데, 가격이 좀 있는 식당이다 보니 우르르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의 타깃은 아닌가 보다. 덕분에 여행객인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롭게 식사를 즐긴다.


아쿠아리움에 오랜만에 오는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더 자주 갔던 곳인데 말이다. 사실 난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을 좋아한다. 나 홀로 다니던 해외여행에서도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곧잘 찾아가곤 했었다. 아들이 원해서 온 곳인데 관람 속도는 미술전시회와 다르지 않다.


무거운 가방과 거추장스러운 겨울옷을 라커에 넣어두고 간편하게 다니니 날 듯이 가볍다. 덕분에 재미난 물고기들도 찾고 사진도 찍으며 신나게 곳곳을 누빈다. 우리와 관람 속도가 다른 아들도 앞서 갔다가 다시 우리를 찾아와 모델 역할도 가끔 해주고, 먼저 찾아본 물고기들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여전히 손에서 핸드폰을 떼지 못하지만 이 정도면 아주 관심 있게 관람 중이라고 엄마는 판단한다.


확실히 평일이라 사람이 적은 편이다. 큰 수족관 앞에서 마음 놓고 사진을 찍어도 별로 방해받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적은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카페에서 음료 한 잔 마시며 쉬어 가기로 한다. 이번 여행도 1일 1카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카페 산업에 공헌이 크다는 생각을 한다. 조용한 공간에서 쉬고 싶지만 그런 카페를 찾아다닐 만큼의 여유 시간은 없다. 쇼핑몰 5층에 눈에 보이는 카페 3군데 줄 빈자리는 딱 한 군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끄러워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옆 테이블의 아기의 하이톤의 끝없는 옹알이가 귀를 찌른다. 잠깐만 쉬어가는 거라 다행이다.


금요일 오후 기차표를 구할 수가 없어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예상대로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부터 심상찮다. 밤에는 잠은 설치고 하루종일 길도 꽤 헤매고 핸드폰은 떨어뜨려 액정이 깨지고 대구로 가는 길을 심각하게 막히고 덕분에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긴장을 하면서도 나는 여행이 너무나 좋다.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이 과정이, 이 긴장감이 나를 뿌듯하게 한다.


이번 여행도 충분히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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