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권토중래

3. 정답 노트

by 조병인
그렇다면 주식투자를 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주식투자를 하려면 사전에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주식, 주식시장, 상장기업, 시가총액, 기업공시, 상장폐지, 공모주, ETF, 기업분석, 기업분할, 인수합병, 유(무)상증자, 자본잠식, 공매도, 신용거래 등등.


그 외에도 주식투자를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모두 열거하면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의 수보다 많을 것이다.


그런데 5년 동안 직접 경험하고 나서 공부의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것들을 모르면 주식투자를 할 수 없지만 속속들이 알아도 수익을 늘리는 데 생각만큼 도움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자랑스러운 무용담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뒤늦게 후회한 바를 털어놓는 것이다.


드러내서 자랑할 일이 아닌데도 굳이 밝히는 이유는 내가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등잔 밑에서 찾아낸 정석(定石)을 주식에 관심을 가진 전국의 은퇴자와 직장인들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예컨대, 축구시합을 제대로 하려면 기본적으로 반드시 <표 1>의 왼쪽에 적힌 사항들을 알아야 하지만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오른쪽에 적힌 사항들을 최대한 깊이 최대한 자세하게 알아야 한다.

캡처.JPG


그런데 내가 수년에 걸쳐서 축적한 다양한 지식들은 왼쪽에 집중되었다. 축구시합을 위해 경기규칙, 경기장규격, 잔디 조건, 축구공과 축구화 규격, 경고·퇴장 사유, 프리킥·코너킥·승부차기 방법, 오프사이드 기준 등등.


승부가 중요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경기를 이기고 싶으면 상대팀의 전략과 선수들의 체력·기량·강점·약점, 훈련방식, 감독과 코치들 기질과 성향 등을 파악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팀의 선수, 감독, 코치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상대팀이 알면 경기의 승패가 갈릴 수도 있는 정보들을 비밀에 부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포기하면 승리와 멀어진다. 상대팀의 비밀을 어떻게든 알아내는 것도 팀의 실력이다. 상대팀은 우리 팀을 소상히 아는데 우리는 상대팀에 대해 아는 것이 적다면 이미 진 경기를 하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주식공부도 마찬가지다. 과정이 어렵고 힘들어도 수익을 늘리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익혀야지 기초를 다지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사리를 밝혀 일을 잘 처리하는 ‘슬기’와 거리가 멀다.


<표 2>의 왼쪽에 열거된 사항들의 일부를 어설프게 알거나 전혀 모르면 주식투자가 매우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전부를 속속들이 안다고 해서 수익이 커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식투자를 하기 위해 알아야할 것들.JPG

반면, 오른쪽에 나열된 사항들은 주식투자에 따른 수익의 크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는 것이 많으면 수익이 커지고 모르는 것이 많으면 수익이 줄어들 것이 거의 명백한 지식들이다.

뒤늦게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주식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망주’라는 단어에 거의 집착 수준의 ‘애착’이 생겼다.


주식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주식강의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유망주(기대주)를 고를 줄 모르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의 관건은 유망주를 찾는 것이다.


확신을 굳히고 나서 장차 업계의 대장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춘 우량주를 찾는 방법을 탐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가장 먼저 ETF 상품의 구성종목에 높은 비중으로 포함된 기업들에 관심을 가졌다. 투자전문회사의 노련한 펀드매니저들이 장래성이 없거나 불투명한 기업들을 골랐을 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순진한 초보의 얄팍한 잔꾀였다. 그래도 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결과물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값진 교훈이 남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금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유망주를 알아내는 비법을 백방으로 찾았다. 수확이 제법 있었지만 실전에 적용하려니까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림의 떡, 무용지물 같은 말이 연달아 떠오를 뿐이었다.


<표 3>은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어서 스스로 전문가를 자처하고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고수로 통하는 여덟 명이 투자종목 선정과 관련해
자신의 저서에 서술한 조언들을 간추린 것이다.
종목선정과 관련된 누자고수들의 조언.JPG


먼저 강방천의 조언을 보면, 「평균 이상, 일등 기업, 경쟁을 즐기는 기업과 함께 하라.」라고만 하고, 그런 기업을 식별하는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또, ‘지갑과 깔림을 보라.’ 거나 ‘망원경/현미경적 시각으로 주식을 해석하라.’는 훈수는 초보 투자자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훈수로 여겨졌다.

존리의 조언 역시 초보 투자자가 그대로 따를 수 있는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 산업계에 인맥이 없는 초보 투자자가 어떤 경로로 경영진의 자질, 기업의 확장성, 진입장벽, 기업의 수익성과 가치 등을 세세하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특히 요즘처럼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가 엄격한 세상에 영장도 없이 무슨 재주로 경영진의 도덕성과 역량을 파고 들라는 말인가.

박영옥도,「경쟁력 있는 1등 기업, 비니니스 모델이 좋은 기업, 재무구조가 건강하고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 열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기업에 투자하라.」라고만 하고 그런 기업을 찾는 방법론 대신 자신의 경험담을 적었다.

정재호도「우량기업, 위대한 기업,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 태양이 비추는 기업을 찾으라.」라고만 하고, 그런 기업을 알아보는 방법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

그처럼 훌륭한 기업에 투자하고 싶어서 그런 기업을 알아보는 방법을 알고자 한 것인데, 질문을 돌려받은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김정환은「산업과 정책의 방향, 생활 속 트렌드, 미래를 주도할 산업 등을 집요하게 분석하라.」고 하였으나, 역시 쉽게 따를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산업과 정책의 방향을 파악하여 미래를 주도할 산업을 점치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으나, 생활 속의 트렌드를 남들보다 일찍 포착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배진한 역시 「열 배의 수익을 안겨줄 텐베거(ten bagger) 기업, 메가트렌드에 속한 주도기업, 이익이 턴어라운드 되는 기업, 저평가된 자산주, 최고의 CEO가 경영하는 기업 등을 고르라.」라고만 하고, 그런 기업을 알아보는 방법은 말하지 않았다.

「텐배거 종목 한 가지만 알면 된다!」라는 말과 함께 ‘복기’ 방법을 권했지만 초보자로서는 매우 버겁게 느껴졌다(149쪽).

바둑 프로기사들은 대국을 마친 뒤에 항상 대국을 복기하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고 한다. 투자도 동일하다. 과거에 텐배거를 달성했던 최고의 종목들을 복기하는 것이 텐배거를 발굴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다.
미국의 전설적 투자자 윌리엄 오닐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최고의 종목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파악하여 텐배거 종목들을 찾아냈다. 100개가량의 종목을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다 보면 텐배거 종목의 특징을 발견하게 되고 관련 종목들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박세익은 「가시성이 떨어지고 실현가능성이 낮은 기업, 대리인 비용이 우려되는 기업, 마진구조의 헤게모니를 정부가 갖고 있는 기업, 마진구조에 대한 검증이 어려운 기업 등을 배제하라.」라고 하였다.


주식을 사면 안 되는 나쁜 기업의 특징은 투자하기에 적합한 좋은 기업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될 여지가 적을뿐더러 개인투자자가 그런 기업을 가려낸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맛있는 사과를 찾으면 사과의 품종, 색깔, 원산지, 생산자 같은 것을 말해줘야지 「흠집이나 벌레가 먹은 자국이 있으면 절대 사지 마라.」고 하면 소비자가 어떻게 맛있는 사과를 고르겠나?


더구나 과일에 벌·나비·조류 등이 파먹은 자국이 있으면 당도(糖度)가 매우 높다는 증거여서 한 조각 베어서 먹어보면 맛이 뛰어나다. 내 고향집에 과수원이 있어서 어릴 적부터 아는 상식이다.


마지막으로 채상욱은 「멀티플, 시가총액, 성장가능성, 재무제표, 성장의 최대치 등을 점검하라.」고 훈수를 두었으나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멀티풀, 시가총액, 성장가능성, 재무제표, 성장의 최대치 같은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판단의 기준’을 알려줘야 할 것 아닌가?


종합하자면, 유감스럽게도 내가 찾고자 한 ‘유망주(기대주) 찾는 법’은 어느 책에도 없었다. 하나같이 제목만 ‘좋은 주식을 고르는 기준’으로 되어있고 실제 내용은 ‘좋은 주식을 골라야 하는 이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기운이 빠지고 풀이 죽어서 고민에 빠졌다가 그 사람들이 주식전문가로 명성을 얻기까지 걸렸을 시간을 떠올렸다.

십 년 동안 주식시장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어렵게 터득한 기법들을 이제 막 주식을 시작한 풋내기가 똑같이 따라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산악인 엄홍길이 히말라야 최고봉을 정복할 때 사용한 장비 일체를 손에 넣는다고 해서 내가 히말라야를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축구 애호가들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메시, 호나우두, 네이마르, 음바페 같은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를 즐겨보지만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안다.


첫째. 모든 선수가 경기 중에 공을 영리하게 패스를 주고받다가 기회가 오면 절묘하게 골을 넣지만 선수들마다 순간동작이 다르다.


둘째.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의 발기술과 득점 장면을 아무리 집중해서 관찰하고 반복해서 연습을 해도 똑같은 기량을 갖출 수 없다.


그렇다면 주식의 대가라는 사람들이 ‘좋은 주식 찾는 법’으로 제시한 기준은 모두 무용지물이다. 본인들은 세상에 하나 뿐인 비법이라고 우길는지 몰라도, 내 눈에는 형상만 있고 실체는 없는 신기루로 비쳤다.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여도 먹을 수가 없는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았다.

손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가가면 저만치 달아나는 무지개 같았다.


게다가 나이가 이미 칠십대라 대가들을 따라잡을 시간도 없다. 운이 좋아서 백 살을 산다고 해도 주식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10년 미만일 것이다.


주식을 계속할 의지가 꺾이고 열정도 식었다. 주식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주식에 정나미(情糯米)가 떨어졌다.


‘정나미’에서 ‘정’은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또는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다. ‘나미’는 낟알에 찰기가 있는 찹쌀을 말한다. 그러므로 ‘주식에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말은 주식을 생각하기조차 싫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축구경기처럼 후반전이 있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더니, 주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긴 역사지식이 극적인 기사회생을 견인하였다. 덕분에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제2막(Next Ground)을 활짝 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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