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은 이득시를 체포한 네 사람을 즉시 포상하라고 명을 내렸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백성에게 신의를 보여야 한다(시신어민·示信於民)는 평소 신념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형조 도관사(都官司)는 어명을 받들어 노비들의 신분을 양민으로 높여주었다. 호조는 면포 2백 필을 광주목에 내려 보내 목사가 이득시를 체포한 네 명에게 적절히 나눠주게 하였다.
사흘 뒤에 광주 목사가 양민증서와 면포 이백 필을 나눠준 결과를 자세히 적은 장계를 올려 보냈다.
장계를 읽어본 주상은 승정원을 시켜서 무원에게 내려주었다.
무원은 주상이 내려준 장계를 찬찬히 읽었다.
***
네 사람의 양민증서와 면포 이백 필을 수령한 목사는 아전을 시켜서 이득시를 체포한 네 사람을 동헌으로 불렀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양민이다. 주상께서 약속하신 대로 면천을 명하셨느니라.
네 사람이 동헌에 당도하자마자 목사는 웃으면서 희소식을 알렸다.
-목사 나리. 그게 사실입니까? 오늘부터 저희들 모두 양민입니까? 믿어지질 않습니다.
-어명을 받드는 내가 너희들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저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저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저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네 사람은 순서도 차례도 없이 괴성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렀다. 대궐이 있는 도성 쪽을 향해 큰 절을 반복하며 기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목사는 네 사람이 마음껏 기쁨을 발산하게 내버려 두었다.
한동안 싱글벙글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네 사람은 거의 동시에 목사에게 허리를 굽혀서 감사를 표했다.
목사는 네 사람에게 득시를 붙잡을 때 자신이 한 역할을 차례로 말하게 하였다.
먼저 나이가 제일 많은 원만이 말문을 열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아우들 셋이서 힘을 합쳐 붙잡았습니다.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부존 역시 세 사람이 합심해서 붙잡았고 자기는 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금록과 막내인 두언도 똑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솔직하게 말을 해야 공로에 맞게 면포를 나눠줄 게 아니냐.
목사가 몇 차례 반복해서 말해도 말을 바꾸는 사람이 없었다.
-너희들이 나를 감동하게 하는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내가 너희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았으니 어서 바른대로 말들을 하라.
나이가 가장 위인 원만이 수훈갑의 이름을 말했다.
-꾀를 내서 작전계획을 세운 두언과 중을 쫓아가서 바람을 잡은 금록의 공이 제일 큽니다.
금록이 앞으로 나서서 원만과 부존의 공로를 밝혔다. 원만이 달아나려는 득시의 발을 걸어 자빠뜨리고 부존이 득시의 어깨를 찍어 누르지 않았으면 자신과 두언이 득시를 묶지 못했을 거라고 하였다.
나이가 제일 어린 두언이 앞으로 나서서 금록의 말이 모두 맞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누구의 공이 제일 컸다고 생각하는지 막내인 두언부터 솔직하게 말해보아라.
-도망치려는 득시를 발을 걸어 자빠뜨린 원만 형님의 공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은 풀밭에 자빠진 득시가 저항하지 못하게 무릎으로 어깨를 찍어 누른 부존 형님의 공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금록은 누구의 공이 제일 컸다고 생각하느냐?
-제 생각도 두언의 생각과 같습니다. 작전을 지휘한 원만 형님의 공이 가장 크고 그다음은 득시를 힘으로 제압한 부존 형님의 공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너희 두 사람은 형들보다 면포를 적게 받아도 불만이 없겠느냐?
목사는 네 사람의 진심을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금록과 두언이 미리 약속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같은 대답을 내놨다.
-저희들은 양민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리고 원만 형님과 부존 형님은 저희 둘보다 딸린 식구가 많으니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하옵니다.
목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네 사람과 차례로 눈을 맞췄다.
-면포 2백 필을 원만 120 필, 부존 40 필, 금록과 두언 20 필 씩 나눠주겠다. 불만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숨김없이 말을 하라. 한번 나누고 나면 돌이킬 수 없다.
목사는 오른손으로 면포가 실린 수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만 특별히 많이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조금도 차이를 두지 마시고 똑같이 나눠주십시오.
원만이 얼굴을 붉히며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는 대답 대신 나머지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원만 형님도 부존 형님도 저희들 둘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금록이 앞으로 나서며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는 앞서 밝힌 그대로 면포를 차등 있게 나눠주었다.
면포 1 필은 쌀 1 가마와 같았으니 면포 200 필은 쌀 200가 마의 가치를 가지는 실물 화폐나 다름이 없었다. 말 1 필의 값이 면포 25 필이었으니 원만이 받은 면포 120 필은 좋은 말 5 필을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때까지 범인을 검거한 노비에게 면천에 더해서 면포 2백 필을 나눠준 적은 한 번밖에 없었다. 병오년(1426)에 도성에 큰 불이 났을 때 명화도적을 붙잡은 자들에게 면천과 함께 면포 2백 필을 포상한 사례 말고는 전례가 없었다.
괜한 말이 아닌 것이 나라창고에서 관물을 훔친 용의자를 제보하면 도난당한 물건의 일정비율을 현물로 주었다.
관청의 창고에서 쌀이나 곡식 혹은 지폐인 저화(楮貨·지폐)를 훔친 자를 신고하면 훔쳐간 물품의 1/4에 해당하는 쌀·곡식·돈 같은 현물을 주었다.
소나 말을 도살한 자를 고발하면 저화를 주었다. 소나 말을 도살한 자를 고발해 체포되게 한 자에게는 도살범의 재산을 처분해서 저화 2백 장을 주었다. 법대로 포상하고도 저화가 남으면 전액을 관에서 몰수하였다. 도살범의 재산이 저화 2백 장에 미달하면 포상하지 않았다.
면포 배분을 마친 목사는 네 사람의 공로를 치하였다.
너희들이 범인을 붙잡은 덕분에 왜통사 이춘발이 불행하게 피살된 사건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포상으로 면천의 은전을 받고 기뻐하는 너희들의 모습을 주상께 그대로 아뢰겠다. 내가 관직에 나온 이래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경우는 수없이 봤어도 너희들처럼 공을 서로 미루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재물을 두고 형제끼리 서로 싸우고 물어뜯는 일이 허다한데 너희들은 면포를 서로 덜 갖겠다고 다투는 걸 보면서 가르침은 경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는 오늘 너희들이 내 앞에서 보여준 행동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라의 일을 도울 일이 생기면 이번처럼 적극 나서서 돕도록 하라. 범인들의 재산을 나눠주기로 한 약속은 거쳐야 할 절차가 있을 것이니 집에서 기다리면 머지않아 중앙에서 연락이 있을 것이다.
목사는 관아의 노비들을 시켜서 네 사람이 상으로 받은 면포를 각자의 집까지 지게로 져다 주게 하였다.
***
노비들에게 붙잡힌 이득시는 광주 관아에 잠시 갇혔다가 오라에 묶여서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득시의 도착을 확인한 무원은 나장들을 시켜서 은밀히 강용을 데려오게 하였다. 득시가 모르게 강용에게 득시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득시가 확실히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득시가 틀림없습니다.
득시는 자신이 진짜 중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무원이 몇 번에 걸쳐서 진짜 신분을 물어도 자신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중이라고 우겼다.
-네가 진짜 중이면 평소 즐겨 읽는 불경 구절을 암송해 보아라.
무원의 한마디에 득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무원은 지루한 여정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득시의 자백만 받으면 생언의 자백을 받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득시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다. 조금 있다가 설사를 시작했다. 입고 있던 잠방이가 흠뻑 젖고 구린내가 사방으로 번졌다. 무원도 나장들도 얼굴을 찌푸리며 엄지와 검지로 코를 잡고 입으로 숨을 쉬었다.
잠시 뒤에 득시가 구토와 경련 증세를 보였다. 체온이 올라가고 피똥을 내질렀다. 무원은 득시를 빈민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활인원(活人院)에 입원시켰다. 무원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고 법으로 정해진 의무를 따른 거였다.
6년 전인 계묘년(1423) 삼월에 「죄수가 병에 걸리면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모두 활인원으로 옮기라.」라는 주상의 교지가 있었다.
어명을 받들어 살인용의자 신문을 진행하려다 다른 어명에 발목을 잡히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어명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만다행으로 다른 죄수들에게로 설사병이 번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의금부의 우물마다 금줄을 치고 관원과 죄수들이 먹을 물을 밖에서 길어오게 하였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록 득시가 돌아오지 않았다.
나장을 보내 알아보니 득시의 병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만약 득시가 죽는 날에는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사흘이 지나고 이틀이 더 지나도 득시가 돌아오지 않았다.
무원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가슴 한구석에 날마다 숯덩이가 쌓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열흘이 더 지나고 나서 득시가 퇴원을 해서 의금부로 다시 왔다. 입원하러 갈 때는 창백했던 얼굴이 통통하게 살이 쪄있었다.
무원은 부아가 치밀었다. 수사책임자는 날마다 노심초사하며 걱정을 쌓을 동안 살인용의자는 활인원에서 편안히 지냈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무원은 자신을 골탕 먹인 득시에게 복수를 갚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득시가 다음날부터 후유증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자취를 감췄던 무원의 조바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었다.
무원은 득시의 병이 완치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스스로 참고 기다린 것이 아니고 어명에 가로막혀 어쩔 수가 없었다.
4년 전인 을사년(1425) 삼월에 「옥에 갇힌 죄수가 병에 걸리면 활인원의 의원이 가서 성심껏 구려하고 과도한 형벌을 막아서 구금된 죄수가 죽는 일이 없게 하라.」라는 주상의 교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원은 자신이 수사를 잘못해서 엉뚱한 사람이 처벌을 받는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질서를 파괴한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법절차가 살인범의 목숨에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득시가 원기를 회복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