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은 할머님 기일이라 부모님을 모시고 황화방에 있는 흥천사를 갔다.
무원의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믿었다. 무원의 모친은 집안에 경사나 애사가 있을 때마다 흥천사에 재물과 제물을 바쳤다. 집안의 번성과 식구들의 행운을 바라는 마음을 그렇게 지켰다.
그래서 무원이 비록 유학을 통해 어짊(仁)을 공부했어도 정신세계의 절반은 자비(慈悲)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아내가 부처를 좋아해 부지불식간에 친불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흥천사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죽은 왕후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창건한 절이다. 법당·승방·대문·행랑·부엌·욕실 등을 모두 합한 넓이가 170칸에 이르고 왕실이 하사한 토지가 천결에 달했다. 부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신성한 석탑도 있다.
명부전(冥府殿)에 제사음식이 차려지는 동안 무원은 절의 중심인 대웅전(大雄殿)을 둘러봤다. 법당 안의 높은 좌대 중앙에 금색이 칠해진 석가모니가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만행(萬行)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있었다.
무원은 반쯤 눈을 감고 두 제자와 함께 아래를 굽어보는 불상을 올려다보며 ‘대웅(大雄)’의 의미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을지문덕, 신라의 김유신과 백제의 계백, 고려의 강감찬과 최영, 그리고 고려의 장수였다가 조선의 시조가 된 이성계 같은 인물을 영웅(英雄)으로 여긴다. 영웅으로 꼽히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남(적)을 무수히 죽였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영웅은 예외 없이 무수한 살인의 대가로 ‘꽃 같은 사내(영웅)’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처는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불멸의 믿음과 존경을 누리는 ‘큰 사내’가 되었다. 역사를 통틀어서 아무도 이긴 적이 없는 ‘자신(自身)’을 확실하게 꺾은 위업에 대한 보상이다.
자신을 확실하게 꺾었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삼독(三毒·욕심·분노·우매)을 극복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108가지 번뇌를 말끔히 떨쳤다는 의미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삶과 부처의 삶은 정반대였다.
부처는 한 나라의 왕세자였다가 홀로 출가하여 자기 자신을 무찌르고 영원한 행복을 얻었다.
반면 이성계는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새 왕조를 세웠다가 후계자 지명을 둘러싼 골육상쟁의 참극을 두 차례나 겪었다.
무원이 생각하기에 이성계가 권력을 쥐기 위해 최영을 죽인 행동과 홍성부가 왜관의 통사 자리를 탐내서 이춘발을 죽인 행동은 오랜 인연을 죽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어 보였다.
권력에 대한 탐욕은 유전을 통해 진화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세자이던 동생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다. 비록 이복동생을 죽인 것이라도 핏줄을 죽였다는 점에서 적을 무찌른 아버지의 살인과 달랐다. 그렇더라도 이성계와 이방원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과 후손도 대대로 영화를 누렸다.
반면 단 한 명을 죽였을 뿐인 홍성부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빼앗기게 생겼다. 그 가족은 대대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무원은 ‘공명정대하고 공평무사한 법집행’이라는 구호가 가소롭게 느껴졌다. 남에게 알려지면 대역죄를 덮어쓰고 목이 잘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생각이 떠올랐다.
‘공정한 법적용’은 실현이 불가능한 구호다. 정의와 불의, 의리와 배반, 인륜과 패륜, 애국과 매국, 충신과 간신, 천사와 악마, 대인과 소인, 승자와 패자, 발전과 퇴보처럼 상반되는 관념들의 경계는 권력을 쥔 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정하지 않는가.
할머니 제사를 마치고 흥천사를 나서면서 무원은 주상이 강조하는 흠휼과 불교가 내세우는 자비는 한 몸이라고 생각했다. 죄수를 신중하게 다루라는 말도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라는 말도 백성을 귀하게 여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
다음날 아침 무원이 의금부 낭청에 출근하니 나장 덕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원은 덕수를 깊이 신뢰했다. 덕수는 언제 어떤 일을 맡겨도 기대 이상을 해냈다.
-아침부터 긴급히 고할 것이 있는가?
-공조(工曹) 기술자인 강용이 건달패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무원의 두 눈이 먹이를 붙잡은 맹수의 눈처럼 번뜩였다. 여러 날을 허기에 지쳐 있다가 살찐 염소를 포획한 표범의 눈빛 같았다.
-어디서 그런 정보를 입수했는가?
무원은 손짓으로 덕수를 가까이 불러서 나지막이 물었다.
-제 처남이 어제 밤에 제 집에 찾아와서 자기 친구가 그러더라고 했습니다.
생언의 자백을 받아낼 묘책을 궁리하던 무원은 자신도 모르게 '혹시'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복장을 바꾸고 공조에 은밀히 잠입해서 강용을 여기로 유인하게.
덕수는 입고 있던 관복을 평복으로 갈아입고 곧바로 공조로 갔다.
공조는 의금부 인근의 육조거리에 있어서 시간이 걸릴 일이 없었다.
문지기에게 적당히 용무를 둘러대고 강용의 일터를 찾아갔다.
연장을 만들고 있는 강용을 눈짓으로 불러서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의금부 관원이다. 우리는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소상히 알고 있다. 무사하고 싶으면 오늘 밤 의금부 정문에 와서 문지기에게 네 이름을 대라.
강용은 상체를 움찔하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려서 사방을 살폈다.
쳐다보는 시선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 고개를 상하로 끄덕였다.
-의금부도사 강무원 나리가 너를 기다리실 것이다.
덕수는 의금부로 돌아와 무원에게 강용이 반드시 올 거라고 보고했다.
무원은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마치고 강용이 오기를 기다렸다.
땅거미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질 무렵 강용이 의금부 앞에 나타났다.
무원과 마주한 강용은 팔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걱정 마라. 내가 묻는 말에 바른대로 답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이든 물으시면 아는 대로 고하겠습니다.
-네가 가입한 건달패의 두목이 누구냐?
-이득시라는 자입니다.
무원은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무원은 책상 아래로 왼손을 넣어서 허벅지를 꼬집었다.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니 꿈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방금 이득시라고 하였느냐?
-예. 이득시가 틀림없습니다.
무원의 머리에 천우신조(天佑神助)라는 말이 떠올랐다.
무원의 궁금증이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득시에 대해 네가 아는 것을 빠짐없이 말해보아라.
강용은 득시가 타고난 장사꾼이라고 하였다.
득시는 한 때 경기지역 농민들을 대신해 대궐에 말먹이를 공급하는 방납으로 재물을 모았다. 임금이 타는 수레·말·마구·목축 등을 관장하는 사복시(司僕寺)에 곡식 줄기를 먹이로 바치고 가을에 쌀을 거뒀다. 가을에는 충청도 사람들이 쌀을 운반하는 길목에 잡물을 쌓아놓고 쌀을 헐값에 사서 뒤에 비싸게 팔았다. 그러다 나라의 단속에 걸려서 가산을 모두 빼앗기고 염전에 끌려가 노역을 했다.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버릇은 없느냐?
강용이 대답 대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었다.
잠시 뒤에 고개를 원래 위치로 되돌렸다.
-친구의 부탁을 받고 관원을 죽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무원의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펄떡였다.
강용도 자신이 내뱉은 말의 무게를 재는 것 같았다.
-득시는 지금 어디 있느냐.
-며칠 전까지 남산에 있었는데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득시를 따르는 무리는 몇 명쯤 되느냐?
-대략 백 명쯤 됩니다.
득시만 붙잡으면 모든 게 끝이다.
무원의 머리에서 군졸들의 수색작전이 펼쳐졌다.
-너의 공을 잊지 않겠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서 돌아가라. 네 도움이 더 필요하면 다시 부르겠다. 오늘 나를 만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만약 어기면 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무원은 다음날 일찍 중추원으로 가서 새로 의금부 도제조가 된 판부사 허조를 만났다.
강용의 제보를 고하고 주상에게 대규모 수색작전을 건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반 시진(한 시간)이 채 안 되어서 최정예 군사 이백 명이 남산에 투입되었다.
주상의 특명을 받고 체포령을 내린 병조 판서 최윤덕은 모든 골짜기를 이 잡듯이 뒤지게 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허탕이었다.
이득시 체포는 고사하고 득시의 부하 한 명도 붙잡지 못했다.
무원은 도화서에 부탁해 수배전단 이백 장을 제작하게 하였다.
강용의 설명을 토대로 이득시의 용모파기(容貌疤記·인상특징)를 그려 넣고 체포자에 대한 포상 약속도 기재하게 하였다.
완성된 수배전단을 도성의 5부와 경기지역 고을에 신속히 배포하게 하였다. 이득시가 체포되면 고을의 수령이 관원들을 시켜서 지체 없이 의금부로 압송하게 하였다.
***
5월 17일 날 마침내 이득시가 붙잡혔다. 강용의 제보가 있었던 날로부터 보름째 되는 날이다.
득시는 도성을 벗어나 중으로 위장하고 숨어 다니다 경기도 광주에서 사노비 네 명에게 붙잡혔다. 득시를 체포한 노비들은 검단산으로 땔나무를 하러 가다 득시의 남루한 행색을 수상히 여기고 꾀를 써서 결박을 지었다. 네 사람의 이름은 원만·부존·금록·두언이었다.
처음에 노비들은 도끼와 함께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을 한 덩이씩 지게에 얹고 동네를 나섰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길을 걸어가는데 반대쪽에서 승복 차림의 사내가 걸어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사내가 먼저 길을 비껴 나 얼굴이 안 보이게 몸을 돌렸다.
맨 앞에 가선 원만이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표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형님, 방금 지나친 저 사람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맨 뒤에 따라가던 두언이 바로 앞에 걸어가던 금록의 등 뒤로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냐. 어서 가서 나무나 하자.
금록은 물어본 두언이 무안할 정도로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잠깐만 돌아서서 저 중 행색을 좀 보세요. 머리도 길고 수염도 기르고 옷도 꼬질꼬질하잖아요. 짚신도 너덜너덜하고요.
두언은 포기하지 않고 재차 금록의 무관심을 두들겨 깨웠다.
-흉년이 길어서 제 집을 떠나 거지가 되는 사람이 많다더니 저 중도 그런 자겠지. 놀음판에서 알거지가 되어 마누라가 쫓아낸 놈팡이던지.
금록은 여전히 중의 행색이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두언이 손바닥으로 무릎은 치더니 일행을 멈춰 세웠다.
세 명의 얼굴을 나이순으로 돌아가며 한 번씩 쳐다보았다.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
두언은 나이는 어려도 머리가 명석하고 기억력이 뛰어났다.
-보기는 어디서 봐. 세상에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금록 바로 앞에 가던 부존이 손사래를 치며 “어서 가자.”라고 재촉했다.
-아! 맞다. 벽보 속의 사내와 닮았어요. 지난 장날 괭이 사러 장터에 갔다가 제가 똑똑이 봤어요. 넓은 이마, 진한 눈썹, 커다란 눈, 긴 턱주가리가 벽보의 그림하고 똑같아요.
두언은 조용한 열변으로 세 사람을 설득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해가 저물기 전에 나무를 해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자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틀림없어요. 우리가 붙잡아다주고 상금을 받자고요. 노비가 붙잡으면 양민으로 올려주고 면포 2백 필을 내려준대요. 내가 글을 몰라서 지나가는 먹물에게 물어봤거든요. 먹물이 내게 거짓말했겠어요?
두언은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동조를 재촉했다.
-그래 우리 넷이서 저 놈을 붙잡자. 누가 알아 우리 모두 양민이 되고 팔자도 고칠는지? 붙잡았다가 아니면 미안하다고 하고 놓아주면 되지 뭐.
-당장 잡으러 가십시다. 다른 사람이 먼저 붙잡으면 아까운 기회가 날아가잖아요.
힘이 장사인 부존이 두언의 제안에 힘을 실어줬다.
두언이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잡자. 반드시 잡아서 나라에 공을 한 번 세워보자. 그런데 어떻게 잡지?
-말을 꺼낸 사람에게 생각이 있지 않겠어요?
그때까지 세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원만이 두언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면 내놔보라고 하였다.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지게를 벗어서 지게꼬리를 전부 푸세요. 그런 다음 돌돌 말아서 힘껏 뛰어도 밖으로 나오지 않게 품속에 숨기세요. 금록 형은 주먹밥을 가지고 놈을 따라가서 먹으라고 주세요. 행색을 보아하니 아침도 못 먹은 것 같아서 주는 것이라고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시간을 끄세요. 그러면 제가 형님들과 함께 저쪽 개울을 타고 다가가서 일시에 덮칠게요. 넷이서 놈을 자빠뜨리고 각자 지게꼬리를 꺼내서 손발을 묶으면 끝이에요. 자 어서들 움직이세요.
뜻밖에도 두언이 말을 마치자마자 방금 전까지 가장 소극적이던 금록이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지게를 벗어서 작대기로 지탱해 놓더니 소쿠리에 있던 주먹밥을 손에 쥐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놈이 멀어지면 놓칠 수 있습니다. 형님들도 서두르세요.
금록은 말이 아직 혀끝에 붙었는데 앞서 간 중을 뒤따라갔다.
뒤에 남은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지게를 내려놓고 논둑 옆의 개울로 내려가 상체를 숙였다.
두언은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달려서 곧바로 사내를 따라잡았다.
-잠깐만 거기 서보시오.
사내가 힐끗 뒤를 돌아다보았다.
금록은 주먹밥을 꺼내서 입에다 대고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였다.
사내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보이며 금록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금록은 사내에게 주먹밥을 건네줬다.
사내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단숨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배가 너무 고파서 자신의 처지를 깜빡 잊었는지 얼굴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사는 곳을 물으니 한동안 용문사에 있다가 주지와 싸우고 뛰쳐나왔다고 하였다. 고향은 강화라고 하였다.
금록은 사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형들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예상한 대로 형들은 상체를 구부리고 소나무에 기대앉은 사내의 등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고 있었다.
형들이 가까이 다다른 순간 금록이 바람처럼 몸을 날려서 사내의 어깨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사내는 입 안에 넣고 있던 밥알을 내뱉으며 뒤로 나자빠졌다.
네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어 사내의 어깨와 가슴을 무릎으로 누르고 지게꼬리로 손과 발을 묶었다.
여러 끼를 굶었기 때문인지 사내는 몇 차례 다리를 버둥거리다 저항을 포기했다.
붙잡힌 중에게는 인생이 끝나는 순간이었고 붙잡은 노비들에게는 팔자가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