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봉합

13. 수사종결

by 조병인

농번기가 시작된 지 오래인데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고 뜨거운 햇볕만 내리쬐었다.

죽은 태종의 제삿날이면 어김없이 온다는 태종우(太宗雨)마저 내리지 않아 한재의 고통이 깊어갔다.


가뭄이 기약 없이 길어지자 주상이 사면령을 내려서 죄를 짓고 옥에 갇혔거나 자취를 감춘 자들을 대거 용서하였다.

죄 없는 자가 옥에 갇혀서 원통하고 억울함을 풀지 못한 탓으로 민간의 화기(和氣)가 약해져 재앙이 닥친 것일 수도 있으니 죽을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죄수들을 모두 용서하라.


사면령을 전해 들은 무원은 임금으로서 백성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 책무와 범죄로 피해를 당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책무 사이에서 며칠을 고민하다 어렵게 결단을 내리는 임금의 표정을 떠올렸다.

무원은 많은 죄수가 죄를 용서받고 풀려나는데 죽을죄를 저질러 사면에서 제외된 득시가 불쌍해 보였다. 그런 득시에게 분풀이를 하면 득시가 원한을 품어서 화기가 더 떨어질 것 이 자명해 보였다.

무원은 복수를 벼르는 대신 득시가 죽지 않고 살아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붙잡히기 전까지 어디에 숨어있었느냐?

무원은 옥방에 있던 득시를 데려다가 어른아이 구슬리듯 물었다.

득시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설사병으로 죽을 수도 있었던 자신을 신속히 활인원에 보내 목숨을 건져줘서 고맙다는 신호 같았다.

득시는 무원이 재차 묻기 전에 스스로 은신처를 털어놓았다.


득시는 곤지암의 산속에 사는 고종사촌을 찾아갔다고 하였다. 사촌의 이름은 신백이라고 하였다. 김생언이 왜통사를 죽이는 데 동참하면 왜관에 식재료를 납품하게 해 주기로 약속했다고 하였다. 개천교에서 범행을 마친 뒤에는 흥인문 근처 성부의 집에서 통금이 풀릴 때까지 머물렀다고 하였다. 현장에서 도망칠 때 광희문 부근에서 순관 두 명이 검문을 하려고 해서 각자 한 명씩 때려눕혔다고 하였다.


-그렇게도 재물이 탐나더냐?

무원은 어이가 없었다.

-몇 년을 놀다 보니까 식구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어서···.

잠시나마 득시에게 품었던 무원의 연민이 극단의 멸시로 바뀌었다.

-그래서 춘발을 죽인 뒤에 소원을 이뤘느냐?

-생언이 이춘발만 없애면 저절로 기회가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무원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대로 주먹을 뻗쳐서 득시의 얼굴을 힘껏 가격하고 싶었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다 다 된 밥을 망칠까 봐 평상심을 지켰다.

-개천교에서 몽둥이로 춘발의 머리를 가격한 자가 누구냐?

-생언입니다.

-그 몽둥이는 어디서 난 것이냐?

-생언이 개천교 근처 초가집 울타리에서 뽑은 것입니다.

무원은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따져 물었다.

-이춘발을 죽이려고 하였느냐? 아니면 겁만 주려고 하였느냐?

득시는 생언이 자기에게 춘발을 반드시 죽여주기를 원했다고 하였다.

-너와 생언이 개천교에서 춘발을 죽일 때 간충도 같이 있었느냐?

-같이 있기는 하였는데 간충은 살인계획을 몰랐습니다. 생언을 따라서 춘발의 집에 갔다가 개천교로 돌아와 망을 봤을 뿐입니다.


무원은 옥방에 있던 생언을 데려오게 하였다. 대질을 하기 위함이었다.

득시를 보자마자 생언이 딴사람으로 변했다.

성부와 간충 앞에서 눈을 부라리며 범행을 완강하게 부인하던 그 생언이 아니었다.

생언은 득시의 진술을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반박은커녕 득시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참극의 발단은 왜관의 통역관 자리를 노리던 홍성부와 이춘발에게 밀무역을 들킨 김생언이 이춘발을 죽이기로 공모한 데서 비롯되었다.

생언이 건달패 두목인 이득시와 자기 친구인 간충을 끌어들였다.

달빛이 절반 비추는 날 밤에 이춘발을 개천교로 유인해 몽둥이와 주먹과 발로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

생언과 득시가 춘발을 살해하는 동안 간충이 망을 봤다. 득시는 범행 후에 경기도 광주로 달아나 곤지암 산속에 사는 고종사촌 신백의 집을 찾아갔다.

신백은 득시가 사람을 죽인 사실을 알고 득시를 집에 들이지 않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내에게 설득되어 득시를 열흘 동안 숨겨줬다.

1429년(세종 11) 5월 21일.

조회가 열리자마자 주상이 침통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무신년(1428)에 경상도 진주에서 자식이 아비를 죽인 일이 있어서 내가 백성들을 대할 낯이 없었다. 이번에는 재물에 눈이 멀어 관원을 때려죽이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아무리 재물이 탐나기로서니 어떻게 밀무역으로 부자가 되겠다고 사람을 죽인단 말인가. 춘발을 죽인 범인들은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다. 모든 책임은 임금인 내게 있지만 날이 갈수록 인심이 타락하는 것 같아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무원은 결안(結案)을 서둘렀다.

결안은 용의자의 자백을 토대로 범죄사실과 적용할 법조문을 종이에 기재하는 행위 혹은 그런 내용이 기재된 공문서를 말한다.

결안이 없으면 임금에게 재가를 청할 수 없었고, 따라서 용의자의 죄와 벌을 확정할 수 없었다.


***


무원이 결안 작성에 몰두하는 사이 가뭄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주상은 술을 끊고 저자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였다. 북교(北郊)에서 비를 빌게 하고 전국에 금주령을 내렸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아니하자 도마뱀을 잡아다 창덕궁 연못가에서 석척(蜥蜴) 기우제를 지내게 하였다.

제향 때 외에는 북을 치지 못하게 하고 범의 머리를 만들어 한강에 빠뜨리게 하였다.

중들을 시켜서 흥천사에서 비를 비는 의식을 행하게 하였다.

흙을 다스리는 토신(土神)과 곡식을 다스리는 곡신(穀神)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社稷壇)과 바람·구름·천둥·비를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 지내는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에서도 비를 빌게 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원의 불만이 하루 만에 무색해졌다. 임금의 지성에 하늘이 감동하였던지 이틀에 걸쳐서 천둥과 번개가 치고 큰 비가 쏟아졌다. 칠일 뒤에 다시 또 큰 비가 오고 전라도 일대에 폭풍이 불어서 농작물과 나무들이 무수히 쓰러졌다.

피해 소식을 접한 무원은 고관들의 위선적 처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위관료 가운데 기우제의 효과를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뭄 때마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명백히 백성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하늘에 빌어서 비를 얻을 수 있다면 농사철 전에 미리 기우제를 지내야지 매번 가뭄이 심해진 뒤에야 기우제를 지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칠월 중순을 고비로 폭우와 폭풍이 완전히 그쳤다. 그 사이 관원들의 발이 묶였던 의금부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비를 피해 잠시 거처를 옮겼던 각종 새들도 순차로 돌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잘거렸다. 퇴근길의 청계천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번쩍였다.

***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가뭄과 태풍이 그치자마자 장래에 국모가 될 세자빈이 기이(奇異) 행동을 벌이다 대궐에서 쫓겨났다.


주상의 보령은 서른셋이고 세자는 열여섯 살인데 세손(世孫)이 없어서 주상이 걱정을 키우던 차에 왕실에 망신살이 뻗치는 변고가 생긴 것이다.


장래에 보위를 물려받을 세자 향(向)은 외모가 수려했다. 성품도 온화하고 효성과 우애도 지극했다. 윗사람을 지성으로 받들고 아랫사람을 인정으로 대했다. 또, 공순하고 검소하였으며 이단을 멀리하고 안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새댁인 세자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한 궁녀만 가까이하였다. 상심한 세자빈이 남편의 사랑을 받아볼 요량으로 망령되게 미신에 빠졌다가 시부모인 주상 내외에게 발각되었다.


처음에 세자빈이 몸종의 말을 듣고 세자가 좋아하는 두 여인의 가죽신을 태운 가루를 자기 약주머니에 보관하였다. 기회를 봐서 술에 섞어 세자에게 먹이려고 한 것인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세자빈은 몸종을 다시 졸라서 뱀들이 교미할 때 흘린 분비물을 수건으로 닦아서 몸에 지녀서 사내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사이 세자궁의 순덕이라는 시녀가 세자빈의 약주머니에 들어있던 가죽신 조각을 몰래 꺼내서 감춰두었다.

주상이 소문을 듣고 순덕을 불러서 친히 물으니 순덕이 가죽신 조각을 바쳤다.

주상 내외가 세자빈을 불러서 따져 물으니 세자빈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주상은 세자빈을 서인으로 강등시켜 세자빈 지위를 빼앗고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세자빈에게 술법을 알려준 몸종은 참형에 처했다.


***


한재와 기우제, 폭우·폭풍 피해, 세자빈 파동을 거의 동시에 겪은 주상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하지만 다만 며칠이라도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었다.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사직과 백성의 안위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최대 강적은 중국대륙을 장악한 명나라였다.

바로 직전에 명나라 사신들이 황제의 하사품을 가지고 와서 정복자처럼 굴다가 돌아갔다. 황제에게 바칠 처녀들을 데리러 와서는 각종 고가품을 한도 끝도 없이 요구했다.

물량이 미흡해 보이면 관원들에게 거칠게 욕설을 퍼붓고 매질을 가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심지어 자기가 부른 기술자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담당관원들을 짐승처럼 다뤘다.

사신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별의별 물품을 다 요구했다.

어떤 사신은 황제의 애완용이라며 백 마리가 넘는 매(鷹)를 요구했다.

사신이 내놓은 목록에, 검은 매 여섯 마리, 조롱에 담긴 난추니 열 마리, 새끼 난추니 열 마리, 어미 난추니 열 마리, 누런 매 서른 마리, 새끼 누런 매 서른 마리, 비단색 누런 매 마흔 마리 등이 적혀 있었다.


주상은 평안도와 황해도 감사와 절제사에게 명을 내려, 그해 가을에 진헌할 난추니들을 각 고을에 나눠주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 써서 기르게 하였다.

경기·강원·함길·충청·전라·경상도 감사와 절제사들로 하여금 난추니를 바치게 하였다.


두 달쯤 지나서 사신들이 여가수 여덟 명, 요리사 열한 명, 어린 화자 여섯 명을 데리고 명나라로 돌아갔다.

사신들이 가져가는 물품궤짝 한 개당 운반인력이 여덟 명씩 붙었다.

물품궤짝을 메고 가는 운반행렬이 사신들이 묵은 태평관에서 무악재까지 이어졌다. 사신 한 명은 혼자서 물품궤짝을 이백 개 넘게 가져갔다.


사신들이 돌아간 뒤에 주상은 해청(海靑) 그림 백 장을 팔도 감사에게 보내 해청을 보는 대로 생포해 바치게 하였다.

해청은 우리나라 해안이나 섬 절벽에 서식하는 맷과의 새다. 독수리보다 작으며 등은 회색, 배는 누런 백색이다. 부리와 발톱은 갈고리 모양이며, 작은 새를 잡아먹고 사냥용으로 사육되기도 하였다.

주상은 2년 전에 명나라 사신이 와서 매를 가져간 뒤에 사신들의 매 요구가 계속될 것에 대비해 도화서를 시켜서 미리 매 그림들을 그리게 하였다.


그다음 강적은 왜국이었다.

삼면의 바다와 해안에서 왜구의 약탈이 끊이질 않았다. 십 년 전에는 충청도 앞바다에 함대를 보내 아군의 병선들을 격침시켰다. 곧바로 대마도에 원정군을 보내 항복을 받은 뒤에도 수시로 바닷가 마을에 상륙해 식량을 빼앗고 사람들을 붙잡아갔다.


마지막 강적은 북쪽의 야인(여진족)들이었다.

동북면(함길도)은 동맹가첩목아 일족이 두만강 일대를 수시로 어지럽혔다. 서북면(평안도)은 동맹가첩목아와 인척 사이인 이만주 무리가 압록강 일대를 유린했다. 동맹가첩목아도 이만주도 명나라 황실의 비호를 받아서 나라에서 악행을 제지하는 데 애로가 많았다.

월, 토 연재
이전 13화제2부 봉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