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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꿀벌 Mar 19. 2024

매일 분출하는 화산

이 분노의 끝은 어디인가

출처 freepik


작성일 2018.8.21.


예전에 우리집에 머물던 하숙생이 있었다. 


명문대 출신에 해외 유학파, 여기서 이민 변호 라이센스로 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 분이다.


우리 집에 있을 때, 점심에 손님이 몰려와서 밥이 조금 늦게 나오면 테이블을 탁! 치면서 밥 왜 안나오냐고 소리를 치며 불같이 화를 내고, 전기가 나갔는데(여기서는 일상이다) 왔다갔다 하면서 계속 전기 언제 들어오냐고 물어보는 통에 대응을 하면서 뚜껑이 몇번 열린적이 있었다. 그분은 다혈질이라 금방 화도 내지만 금방 풀어지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무슨 이런 사이코가 있나' 했는데 나중에는 나보다 나은 면들을 발견하면서 나를 좀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또 사람에 대한 시야가 조금 넓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은 얼마 후, 집과 사무실을 얻어 나갔고 어느날 환한 표정, 밝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가게를 들어왔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집에 있을 때는 나를 보면서 왜 이렇게 인상을 쓰고 있나 했는데 현지인과 같이 일해보니 내 마음을 너무 이해하겠더라고, 나에 대한 오해가 풀리자 급친 모드로 다가왔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를 이해해줘서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동안 인상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나름 친절한 모드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몇 달이 흘렀다.
오늘 그 분이 우리 가게를 왔다.


그동안 집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현지 집주인, 직원들한테 당한 이야기들(집주인한테 덤탱이 씌이고 한달 물세를 100만원을 내고 어쩌고... 나는 여기서 그런 종류를 배로 경험했기에 모두 공감했다)을 하면서 현지인들 '개쓰레기'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 말이 어떤 저항감이 없이 그대로 흡수되더라. 그렇게 우리는 욕으로 하나되며 타향살이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었다. 아주 잠시나마.

현지인들을 안좋게 얘기하거나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을 보았을 때, 너무 한다 싶기도 하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같이 일을 하다보니 그분의 말과 분노가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민 끝에 표출된 것인지 오히려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워낙 참고 사는 게 익숙해져서 나는 좀 낫다라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여기와서 많이 깨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내 생각과 감정을 배제시키고 오직 내가 속한 곳에 용인되고 인정받기 위해 나를 누르고 참으며 몸부림을 치며 살았다. 굳센 의지와 정신력으로 내 마음을 누르다 보니 결국 몸이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무서울게 없다. 내가 주인이고 왕이다. 모든게 무장해제되니 그동안 꾹꾹 누르고 포장해서 감싸왔던 것들이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튀어나왔다. 1년 동안 화산이 매일같이 분출되었고 격하게 토해져 흘러내리는 용암 속에서 내 안에 고이 깊숙히 간직되었던, 참으면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폭발 굉음을 내며 어마무시한 마그마를 분출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놀라고 실망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처참한 재해 현장에서 실망감과 자괴감이 수증기처럼 증발하니 얼마나 그동안 아팠을까, 지금까지 그걸 이고지고 온 '내 자신'을 붙들고 많이 울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내 영혼에 보약이 되었고 웃기게도 여기와서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야, 너 처음에 여기 왔을때 볼만도 안했어야~'
'지난 번에 왔을 때 사장님 따님이 오셨다는데요..'(그게 전데요?)
'아... 굉장히 젊어지셨네요! 그때는 한국에서 바로 와서 그런가..'(수습불가) 언니랑 통화하면서 한참을 배꼽잡고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화산폭발은 매일 예고없이 진행중이다.
어제도 오늘도 몇건이 있었다.    
 
#1 남자 직원 바소(모든 직원 이름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가명처리하겠다)

뚝뚝이(오토바이 뒤에 마차같은 것이 달려있는)로 김치배달을 하는데 기름값을 매일 주면서 영수증을 가져오라는데 매일같이 매일같이 안가져오는 것이다. 같이 이동 중에 기름을 넣으면 오히려 그때는 나에게 영수증을 준다. 잔돈을 남겨오라고 쓸 돈을 정해줘도 깜빡했다며 기름을 다 넣었다고 잔돈을 안준다. 어떨 때는 기름을 자기 돈으로 더 넣었다며 돈을 더 달란다. 수없는 입바른 거짓말.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는 말도 통하지 않더라. 추적 불가능한 상황에서 돈거래를 하면 실실 웃는다. 돈을 빼먹는 재미가 쏠쏠한가 보다. 이제는 패트병에 기름을 미리 사서 놓고 쓴다. 그런 후로 기름 넣을 때 표정이 안좋은 건 뭐지? 출발하기 전 기름을 체크하라고 수도없이 이야기를 했다. 어제는 김치 배달을 갔다가 중간에 기름이 없어서 길에서 멈췄다. 그런 적이 세번째. 푹푹찌는 더위에 짜증내는 내가 힘들어서 아무말 없이 있었다.

매일 같이 고장나는 오토바이. 며칠 전에는 바퀴가 펑크나서 2만원을 달랜다. 현지돈으로 2만원어치의 뭉치돈을 주었다. 영수증을 2만5천원을 끊어서 잔돈을 만원을 남겨왔다. 슬프게도 '구구단을 외자~!'의 추억이 없는 이들은 계산을 잘 못한다. 나름 신경을 썼으나 몇십만 단위를 감당하지 못해 아뿔싸! 실수가 나왔다. 엄마랑 배꼽을 잡고 웃었다. 우리는 이런 걸로 웃는다.
여기 영수증은 다 간이 영수증이고 누가 썼는지 알길이 없다. 매일같이 믿을수 없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눈감지 않고는 화병나서 살 수 없는 곳이 이곳이다.


어제 점심에 차 안에 있는 고무 시트를 씻어서 의자에다 걸어놓고 넣어놔야 하는데 오늘 아침에 엄마는 당연히 넣어놨겠거니 하고 시장을 갔는데 시트는 하나도 없고 시장에서 신는 장화(시장 바닥이 더러운 물바다다)를 차 좌석위에 올려져있더란다. 집에 와서 왜 안넣어놨냐니까 안말라서 그랬단다. 두어시간이면 마르는 것, 모든게 이유가 있고 자기가 잘못한 건 없다. 좀처럼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글을 쓰는 내내 한숨이 나온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끝이 없는 직원 에피소드는 앞으로 찬찬히 풀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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