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거운 꿀벌 Apr 29. 2024

가해자가 되어 깨달은 것들

출처 freepik


작성일 2018.8.27.


어렸을 때 나는 까불이, 말괄량이, 촉새였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조용한 사색가? 몽상가?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대충 돌이켜보면 양심이 발달하고 착했던 것 같다. 남을 도와주기 좋아하고 정직하려고 내가 맡은 일에 전력을 다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만큼 삶의 의미와 가치, 본질을 찾으려고 했기에 그렇지 못한 악하고 옳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용납하지 않는 마음도 이면에서 함께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기독교인이 되면서 천성적 착함과 도덕에 신앙심이 더해져 나의 착함은 서서히 병이 되었다. 신앙심이 착한병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본질을 알지 못한채 종교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병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착함은 어느새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또 그렇게 쌓아올린 높은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무기가 되었다. 착함을 유지하다보면 피해자가 된다. 피해를 감당할 수 없으면서도 계속해서 착한 척을 하고 착해지려 하니 내 마음에 병이 온 것이다.


목숨을 다해 착한 딸, 착한 동생, 착한 직원으로 살아오면서 내 마음에는 함부로, 자기 멋대로, 자기 맘대로 행동하는 사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 쉽게 분노하는 사람, 남에게 피해주고 자기 이익만 쏙 빼먹는 사람,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처세술이 능한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이 우선시 되는 사람들을 끔찍히 싫어하고 무시했다. 그 이면에는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부르르 떨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혼자 자취생활을 계속 했고 몇년 뒤, 부모님은 해외로 가셨다. 그래서 따지고보면 고등학교 이후로 부모 없이 고아로 살아간다는 것을 물심양면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홀로 세상 짐을 지고 착하게 살려고 했다. 


그.리.고..


여러 직장에서 밟히고 밟히면서도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참았던 시간들, 막다른 골목에서 발악하며 그동안 참으며 살았던 것을 후회했던 시간들을 거쳐..(사실 추상적으로 표현되었지만 이 스토리를 쓰면 아주 멋진 드라마 각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왜냐면 살면서 내가 영화 속 주인공 같다는 착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동남아. 우리 엄마가 주인인 식당에 와 있다. 내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누르며 살다가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살던 중에 여기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렇게 착했던 나였는데! 그동안 고도로 훈련된 선함이 나오지 않고 내 밑바닥에 깔린 분노와 짜증이 잔인하리만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나왔다. 물론 여기 처음 오면, 대부분 이런 과정을 겪기에(심지어 비슷한 동네 아시아인들도) 약간의 위로가 되지만 나의 악한 모습에 사뭇 놀랬다. 매일 CCTV를 보는데 내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랜다.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고, 행동을 거꾸로 하는 현지인들을 가르치고 온갖 진상 손님들을 대하면서 분노가 아낌없이, 주저함없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그 중에는 나의 분노가 정당화 아니 더 표현못해 아쉬울 정도로 생각되는 경우들도 많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사이코처럼 신경질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 만한 일들도 있다.


그 중 후자를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것이 있다.(서론이 너무 길었네;;)


내가 착함을 유지하면서 살았을 때, 나에게 분노하고 무례하고 나를 이용하려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사람들을 향해 칼을 갈았었다. 나는 착한 사람, 피해자, 그 사람은 악한 사람, 가해자라는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화를 낼 지극히 합당하고 정당한 이유를 만나,

그것을 맘껏 분출하고 나서,

뒤돌아서서 내 안에서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그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시작했다.(아직 완성이 덜 되었다는 의미임) 어쨋든 내게는 큰 전환이었다.


아, 이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겠구나.

이렇게 살아왔다면 이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이게 그 사람의 연약함이었겠구나.


과거에 내가 미워하고 심지어는 증오까지 했던 몇몇의 인물을 만나 화해의 과정을 걷고 있다. 이것 또한 억지로 하려하지 않으련다. 단지 시간과 기회의 이끌림에 거부하지 않고 나를 맡겨보련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기회가 오면서 자연스레 되는 것들이 있는데 예전에는 그걸 몰랐고 내게는 그런게 오지 않을 것 같아 내 노력으로 다 되는줄 알고, 내 노력만이 살 길인 줄 알고, 스스로 만들어내려 했던 것이다.


그 가해자들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 때 왜 그토록 나를 미워했었는지, 왜 나에게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거 같아요. 당신에게 이런 상황이, 이런 이유가 있었다는 걸 몰라서 이제껏 그토록 당신을 미워했어요.


그.런.데..

뒤돌아서서 보니 또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

가해자가 된 내 앞에 피해자로 살았던 과거의 내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듬으며 이야기 해주었다.


미안해.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화가 불쑥 튀어나왔어. 그러고 나서 너를 생각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니가 미워서 그런게 아니야.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되서 너무나 힘들어. 내 부족함, 악함을 부디 용서해 주길.. 

이전 04화 사치를 누려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