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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꿀벌 May 06. 2024

식당에서 매니저가 하는 일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스포츠 감독으로

작성일 2018.9.4.


우리 식당은 점심에 손님이 많은 편인데 저녁은 거의 없는 편이다. 점심에는 반찬이 10개가 넘는 백반 정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밥 더, 반찬 더, 국 더 갖다주랴 모든 테이블에서 부르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나마 메뉴가 한 가지인데도 손님이 몰려서 오면 전쟁이 따로 없다. 손님은 계속 몰려오지, 테이블 치우는데 밥 더, 반찬 더 달라고 하지, 손님은 또 들어오지, 반찬 갖다주는데 후식 달라고 하지.. 보고만 있는데 두통이 도망가는 신기한 경험을 몇 번 했더랬다.


                                                            출처 Pinterest


주방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2명 두 세트, 3명, 1명, 4명, 그 다음 5명!" 모두가 달린 입으로 한마디씩 한다. 그럼 순식간에 홀에 100명이 넘게 온 상황이 연출된다. 작년에 여기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모두가 적응 중이라 멘붕, 대혼란, 대전쟁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스크린을 찢고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순식간에 들어간 장면은 노련한 용사들이 한 치의 흐트럼 없이 칼을 뽑아 온 몸을 던져 싸우는 곳이다. 구수한 냄새와 치지직! 보글보글! 챠~악! 소리에다가 연기는 자욱하고 멀리서 무리지어 달려오는 전차 소리를 연상케 하는 설거지 소리, 각자가 동선이 부딛히지 않게 분주히 움직이며 밥을 푸고 국을 뜨고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굽고 다먹은 접시를 쟁반에 바리바리 담아서 설거지 통에 옮기고 반찬, 밥, 국 세트가 나가고 홀직원들은 들어가고 나가면서 쟁반 바톤 터치를 하며 테이블에 나가야 할 것을 서로 지시한다. 이 모든 움직임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직원 한 사람 한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고도의 집중과 민첩한 움직임, 신경이 예민한 손님과 주인 사이에서 마음을 지켜야하는 정신력으로 거대한 파도에 몸을 실어 파도 속을 통과하며 질주하는 서퍼의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로구나. 경의로운 순간이다.


스크린을 찢고 들어간 전쟁 현장에는 13년차부터 4년, 3년, 1년, 5개월, 3주 차 직원들이 각자에게 맡는 포지션에서 알맞은 분량을 알아서 찾아(이걸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다) 훈련을 받으며 노련한 용사로 무장되고 있다.


가운데 앞 카운터에서 나는 양쪽 홀의 테이블과 가운데 통로, 통로 끝 주방 입구, 그리고 카메라로 주방 안을 살피고 주시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손이 마저 닿지 않는 부분들을 체크하고 매끄럽고 돌아갈수 있도록 기름칠을 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손님이 누가 누군지도 구별이 안가서 한 테이블에서 두 번 계산을 해도 받았고 돈 계산도 제대로 못해서 손해도 보고 실수도 많이 했다. 손님이 식사 중에 잠깐 나가도 "안녕히 가세요", 바로 다시 들어와도 "어서 오세요",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남여도 구분이 안되고 그냥 사람일 뿐이었다.(사실 이건 지금도 많이 그런다ㅋㅋ)


처음에는 동남아, 식당에서 내가 뭐하는 건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한국에서는 애들 가르치고 점잖게 회사 생활만 하다가 여기와서 별별 꼴을 다 보고 무시를 당하고 매일같이 집전체가 몸살이 나는데 현지 기술자들은 바가지를 씌우고 고쳐놓고 갔는데 고장이 나서 부르니 오지를 않는 날이 매주 일어나니 견딜 수가 없었다. 매일 애들한테, 현지인들한테, 손님한테, 엄마, 아빠한테 소리지르고 짜증내고.. 너무 비참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무너지는 나를 무너지도록 둘 곳 조차 없이 살인적으로 바쁜 일들과 스케줄에 정신이 없이 지냈다. 정신이 잠깐 외출해서 버텼나보다.


지금은 놀랍게도 많이 보이고 시야에 들어온다.

자존감도 기쁨도 보람도 유익도 감사함도 많이 회복이 되어 카운터 앞에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내 모습이 때로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가, 때로는 축구 결승전을 지켜보며 팀을 이끄는 감독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홀 직원들은 항상 눈빛을 교환하고(심지어는 뒤에서 내가 쳐다보면 뒤를 돌아본다) 내 손가락이 에어컨을 향하면 즉시 가서 켜거나 끄고, 천정을 향하면 전등을 켜거나 끈다. 손가락으로 왼쪽 두명 오른쪽 1명을 표시하면 주방에서 1명이 보고 알려준다. 눈을 맞추고 손가락에 시선이 가 있으니 나는 어느새 지휘자가 되었다.


손님이 여러 테이블에 동시에 있어서 상황이 꼬인다 싶으면 직원에게 순서를 말해주기도 하고, 테이블을 치우고 있는 직원에게 새로운 손님 응대를 먼저 하라고 지시하거나, 앉을 자리가 없으면 주방에 있는 선수를 투입시켜 테이블을 치우게 한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작전 타임에서 코치의 말을 듣고 경기로 뛰어드는 선수의 모습이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 알수 없는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축적된 경험과 반복된 시행착오가 주는 여유 속에 얻은 결실이다.


오전 11시, 오후 5시가 되면 우리는 혼연일체가 되어 거대한 곡을 연주하며 또 팀웍을 이루어 경기를 뛴다. 그러면서 매일 조금씩 변화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혼자보기에는 아까운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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