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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초이스 Mar 05. 2020

억울해서 글을 씁니다.

나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다른 직장인들처럼 하루 8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합니다. 까탈스럽게 따지자면, 조금 여유롭게 8시 40분까지는 출근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6시 30분까지 일하기도 하니까 8시간 조금 넘겠네요. 그마저도 52시간제 덕분이에요. 그치만 어떤 날은 퇴근만 정시에 했다뿐 노트북을 들고 와서 집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놓친 일이 불현듯 떠올라 집에서 작업하고 회사 메일로 보내두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퇴근 후에 뭘 시작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퇴근해서 부랴부랴 저녁 먹고, 배부르면 졸리니까 TV에서 재미있는 거 뭐 없나 채널도 돌려보고, 마땅한 게 없으면 유튜브에서 노래 몇 곡 듣고 하이라이트 영상들도 좀 보다 보면 1,2시간은 훌쩍 지나갑니다. 그리고 10시가 되면 다음 웹툰, 11시가 되면 네이버 웹툰. 업로드 시간에 맞춰 좋아하는 웹툰을 읽습니다. 자기 전에는 옆으로 누워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남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브런치도 구경하고 괜찮은 아티클이 있을 땐 카카오톡 > 나에게 보내기 정도는 해둡니다. 정말로 읽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고요. 언젠가 읽고 싶을 때를 대비해 공유라도 해두는 거죠. 그렇게 든든히 미래를 위한 준비를 마치면 자정이 되기 전에 잠에 듭니다. 그래야 또 내일을 시작하죠.


이렇게 지내다 보니 갑자기 억울해졌어요. 아침엔 졸려 죽겠는데 일에 집중해야 하니깐 커피를 사 마시죠.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해서요. 커피 살 시간까지 고려해서 더 빨리 집을 나서야 해요. 가끔은 회사 밖에 나가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싶은데, 일은 왜 할수록 늘어나는지 먹고 싶은 것도 포기하고 일을 합니다. 퇴근 후에라도  뭘 좀 시작해볼까 생각하다가도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생길 것 같으면 지레 포기하게 되죠. 어휴, 건강을 위해서 헬스를 등록했는데, 매일 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만들어내느라 도리어 더 피곤해졌어요. 이 뿐인가요. 주말에도 다음 주를 생각하면 어디 놀러 가기보단 집에서 그냥 쉴까 싶고, 친구들을 만나는 건 무조건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입니다. 일요일 하루는 온전히 쉬어야죠.



처음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상이 어느 날 굉장히 억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제 하루를 돌아보니 제 삶의 모든 결정을 일에 맞춰서 하고 있는 거예요. 내일 지각하면 안 되니까, 내일 출근하면 피곤할까 봐, 운동할 시간 있으면 오늘 못다 한 업무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스멀스멀 생겨납니다. 처음에는 업무에 적응하기도 벅차고, 르겠다는 소리도 이제 그만하고 싶고, 당당하게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싶어서 가능한 많은 시간을 업무에 투자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일 년을 (깨지면서) 보내고 보니 이제는 뭐가 뭔지도 보이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도 고민하게 되면서 제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러고 보니 억울하기 시작한 거예요!


남의 돈 벌기가 쉬울 리가 있겠느냐마는 어떻게 제 삶의 우선순위가 저보다 회사일 수 있죠?


월급 루팡이 되고 싶단 이야기가 아니에요. 회사에 가면 누구보다 열심히 제가 맡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제가 생각한 컨셉으로 제품을 기획하고 제 때 출시하기 위해서 때로는 유관부서에 사정하면서, 때로는 유관부서와 싸워가며 일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 마케터들이 모두 그래요. 그거 하나 포기한다고, 조금 늦는다고 제 때 월급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다들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울고 불고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일합니다. 안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퇴근 후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내 사업도 아닌데도 그 정도로 투자하고 있다면 나한테는 그 이상으로 투자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죠.



사실 2015년에 브런치에 가입한 이후로 쭉- 작가 신청을 해왔습니다. 2015년 11월 26일에 가입하고 꼬박 12번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더군요. 저도 그 동안 받은 거절 메일을 세어보고 알게 되었어요. 참 많이도 거절당했더군요. 처음 몇 번은 만만히 보고 신청했다가 당한 뜻밖의 거절이었습니다. 그땐 어이없었죠. 이게 뭐라고. 18년부터는 주제도 정하고 글도 길게 썼는데도 불구하고 떨어졌습니다. 당시에 썼었나 뒤져봤더니 흔한 블로그 리뷰처럼 디톡스 체험기, 필라테스 체험기를 썼더라구요. 오기가 생겨서 19년 10월에는 그동안 배운 마케팅 업무에 대해 쉽고 간단하게 정리하겠노라 야심차게 썼는데도 거절당했었네요. 아, 이번엔 될 줄 알았는데.


10번 찍어 안 넘어가 한 번 더 찍으니 되더라.


10번 찍어도 안 넘어가던 게 한 번 더 찍으니까 그제야 넘어갑니다. 이전의 10번과 차이라면 저의 억울함이 만들어낸 간절함이 아닐까 싶네요. (아, 혹시 그 간의 히스토리를 보고 지겨워서 이번엔 받아주신 걸 수도 있겠네요.) 이 간절함은 저의 억울함과 분함을 해소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나에게는, 회사 밖에서의 삶에는 홀대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회사 일에 쏟고 있는 상항에 대한 억울함과 분함으로 계속 고통받을 순 없잖아요. 그렇다고 눈치 보면서 요령껏 회사 일을 덜할 방법을 고민하고 싶진 않습니다. 대신에 퇴근 후에 저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어요. 억울한만큼, 분한만큼, 열정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쓰기 싫을 땐, 책을 읽으면 되고, 그것도 싫으면 인강을 들어 보려구요. 이렇게 워라밸을 맞춰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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