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일지 13

적절한 무관심

by 쁘미
정신과병원 여자 폐쇄병동에서 간호사로서 근무하면서 얻은 지혜, 소중한 날들, 깊은 인연들을 담은 글입니다.


"자해생각이 너무 많이 나요. 약을 먹어도, 주사를 맞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청소년 애들하고 친한데 애들이 자해해도 제가 해결도 못해주고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요..."


우울장애로 치료받으러 온 환자가 친하게 지내는 다른 청소년 환자의 자해충동을 막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모습으로 간호사실에 수시로 찾아와 불안감을 표현한다.


이 환자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해결해 주길 바라지만, 과하고 올바르지 않은 책임감으로 본인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까지 하려고 하기에 일어난 오만이었다.


"환자분,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함께 헤아려주려 하는 당신의 마음은 정말 선해요. 하지만 그 선한 마음이 자신을 해칠 정도라면 과하고 오만한 거예요. 본인이 상대방의 문제를 어떻게 다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버리세요. 다른 환자의 행동으로 본인이 아프다면 피하세요. 적절한 무관심도 필요하답니다"


이후로도 환자가 자해충동을 호소할 때마다 내면에 있는 다른 문제점을 함께 파악하고 올바른 해결법을 지속해서 직면시켰더니 점차 간호사실에 접촉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기억하자.

상대방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함과 함께, 그것이 나에게 독이 되고 있다면 피할 수도 있는 용기는 결코 약한 것이 아니라 강한 것임을.



p.s 너무 친밀하게 지내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두며 지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