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어쩜 그리 한 치 앞도 예견하기 어려운지. 어느 날 어린이집 등원을 시키기 위해 집을 나섰던 엄마는 늘 지나던 골목 어귀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차에 아이와 잡았던 손을 놓치고 세상과 작별하게 되었다. 뉴스 사회면 페이지를 1분만 들여다보아도 당장 나의 이야기가 되어도 이상할 것 없는 이런 일들이 가득하다.
노르웨이 유학을 다녀와 세계 100위 안에 드는 상하이 푸단 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역시 대학교수인 남편을 만나 아들을 둔 장래가 유망한 서른 살의 여교수는 어느 날 갑자기 강렬한 고통에 쓰러졌다. 유방암이었다. 손쓸 수 없을 만큼 온몸에 암이 퍼졌다. 암을 진단하지 못한 채 이어졌던 물리치료들이 병을 악화시켰다. 책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를 쓰고 세상을 떠난 위지안 작가의 이야기이다.
불의의 일격을 받고 앞날이 창창한 대학 여교수에서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초라한 말기 암 환자 신세로 무너져 내린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저렇게 될 거야' 하고 기대한들, 언제나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그녀는 굳건하게 믿었던 법칙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일들을 보고 들을 때면 무엇을 목표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 외에 또 무엇이 중요하겠나? 한 차례 시원하게 비가 쏟아지고 나더니 뜨거운 바람이 숨이 죽었다. 해가 지고 선선해진 바람이 앞뒤로 활짝 열어놓은 창으로 맞바람 쳤다. 남편은 누워서 11년째라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을 보고 있고, 나는 극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평온한 일요일 밤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보낸 지난 일주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할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그러나 이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우리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
"저는 살사와 스노보드를 좋아해요.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한동안 매주 주말 반복했던 문장이다. 소녀 시절, 아니 20대의 내게는 나만의 분명한 프레임이 있었다. 외모, 직업, 스타일, 목소리, 취미 등.. 소개팅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프레임은 더 촘촘하고 견고해졌다. 30대 초반이 되어 배우자를 찾기 시작하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프레임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가는 남자랑 어찌어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희한한 일이다. 그런데 결혼해서 살아보니 이리 재고 저리 재며 따졌던 모든 조건들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느끼게 되었다.
짧은 생의 끝자락에서 위지안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고 마침내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아집처럼 지니고 있던 전제 조건들을 하나하나 버리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 맥도널드(헤어스타일 때문에 아내 위지안이 부르는 애칭)처럼 나의 남편도 해가 다르게 이마의 M자가 진해지고 있다. 시아버지의 현재의 모습으로 미루어볼 때 조금 시원한 헤어스타일의 남편과 살아가게 될 나의 미래는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나 기억력 등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지만 순기능도 물론 있다. 그중 하나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을 좀 더 수월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견고하게 쌓아 올렸던 프레임에 M자형 이마를 가진 남자가 있었을 리 없다. 난임의 터널과 끝내 아이가 없는 딩크족의 삶도 없었다. 이렇게 내가 집착하던 조건과 거리가 멀어진 지금의 내 삶을, 이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세월이 가져다준 지혜 덕분이다.
"우리 요즘 너무 sexless 부부 같지 않아?"
아이를 가지기 위한 모든 노력을 중단한 이후 남편과 잠자리가 거의 없었다. 우리에게 sex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위한 숙제 같았던 걸까? 그렇다고 사이가 소원하거나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지도 않은데, 이대로 괜찮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민감한 주제일수록 진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심하게 툭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 택배를 보내러 편의점에 함께 가면서 던진 내 질문에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임신은 잘 되지만 유지가 되지 않고 계속 유산을 하고 말았던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미안했었나 보다. 내가 다시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고민과 걱정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견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언제나 순탄한 꽃길만은 아니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각자의 길을 걸어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차갑고 험난한 벌판을 걷게 되더라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을 존재가 곁에 있을지이다. 남편은 길게 누워 책을 읽는 아내의 발을 들어 올리더니 꾹꾹 힘을 주어 손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신경 쓰지 않고 읽던 페이지에 집중하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프잖아!!" 나의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은 심각한 투로 말했다. "여기 눌렀을 때 아파? 여기 아프면 신장이 안 좋은 거라는데. 유미양 신장이 안 좋은가?' 이 남자라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족보 없는 발 지압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내 손도 꽉 잡고 놓지 않을 게 분명하다. M자를 넘어 거꾸로 놓인 W자처럼 시원하게 벗어진 이마를 흔들어대며 주름지고 두터워진 내 손을 잡고 족보 없는 손지압을 하겠다고 난리를 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