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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Feb 09. 2022

갤럭시 버즈2의 친환경 포장이 일으킨 파도

지구를 위한 파도타기 응원

난 어떤 면에서는 꽤 빠르고, 어떤 면에서는 또 한없이 느린 사람이다.


한 가수의 인터뷰에서 미묘한 딜레이가 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딱히 유선 이어폰의 아날로그 감성이 싫지 않아 그동안 무선 이어폰의 구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버스에서 길게 늘어뜨린 유선 이어폰을 꺼내면 시대에 뒤처진 이를 보는듯한 측은한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는 외려 이를 유니크한 감성으로 포장하고 즐기는 편이었다.


이렇게 무선 이어폰의 유행에 한참 뒤처지고 느리던 내가 배가 불러오면서 읽고 쓰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어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끝에 오디오북에 입문하게 되었고, 좀 더 자주 편하게 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오랜만이었다.


이것저것 알아볼 열정은 부족해 관성적으로 갤럭시 버즈2를 구입했다. 어제 배송받은 택배를 오늘에서야 풀어보았다. 택배 상자 안에 또 다른 제품 상자를 열고 빽빽하게 채워진 스티로폼과 뽁뽁이를 거둬내야 제품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나의 예측은 일격을 당했다.


종이테이프를 뜯고 택배 상자를 여니 골판지 재질의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동그란 종이테이프를 다시 뜯고 골판지를 펼치자 그제야 갤럭시 버즈2라고 써진 작은 상자가 나왔다. 작은 상자 안에 제품이 놓인 틀도 보통의 플라스틱 재질이 아니라 두꺼운 종이였다. 하얗고 조그만 갤럭시 버즈2 무선 이어폰을 만나기까지 나는 스티로폼이나 비닐 뽁뽁이 등의 일반적인 완충재를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독서 모임에서 기후 위기와 환경 위기를 논하는 책을 읽고 토론을 할 때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위로부터의 개혁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지만 한 번도 시원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은 둘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국 표심을 따라가고 그러니 아래로부터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투표권을 가진 이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심이 쏟고 예산을 편성하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한편 의식 있는 기업이 먼저 움직이 그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하나의 '밈'처럼 유행이 된다면 평소 관심이 없던 일반 소비자들도 자신의 소비 패턴을 바꿀 수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재생 농법으로 생산된 소재로 옷을 만들고 재생 유기농 인증(ROC) 컬렉션을 출시하는 등 친환경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파타고이나'이다.


환경 위기는 사실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에 체감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기업이 먼저 움직여 주고 의식 있는 이들이 동참해 파도가 만들어지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그런 면에서 직접 눈으로 마주한 국내 대기업의 변화가 바람직해 보였고 반가웠다.


출처: 삼성전자


최근 삼성전자가 일명 '유령 그물(Ghost nets)'이라고 불리는 폐어망을 스마트폰 등에 사용 가능한 소재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신소재 개발은 개인이 하기 어려운 실천이다. 기업에서 이익의 일부를 할애해 연구비에 투자하겠다는 결단을 해줘야만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또 2025년까지 모든 갤럭시 신제품에 재활용 소재 적용, 제품 패키지에 플라스틱 소재 제거, 스마트폰 충전기의 대기전력 제로화 등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세부 목표도 발표하였다. 이런 '지구를 위한 갤럭시' 비전 발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기 위한 다짐으로 보였다.


일부는 환경을 위한 노력을 제품 비용에 전가하지 말라는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삼성전자의 새로운 실천을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핀터레스트


얼마 전 분당독서모임 위미독 5기 4번째 지정도서로 읽었던 책 《우리가 날씨다》에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 작가는 감정이 파도타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파도타기가 감정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야구장에서 파도타기 응원이 시작되면 태어나 처음 야구장을 가본 이도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기 마련이다.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행동을 촉구한다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행동의 흐름이 이어지면 내 차례가 왔을 때 기꺼이 행동을 하게 된다. 파타고니아의 '재생 유기농 인증(ROC) 컬렉션'이나 삼성전자의 '지구를 위한 갤럭시'처럼 기업이 파도를 만들어 준다면 좀 더 많은 이들이 기꺼이 그 파도를 타게 되지 않을까? 나만 해도 친환경 포장으로 보내준 덕분에 갤럭시 버즈2 소비가 환경에 해롭지 않다는 기분을 느꼈고, 다음 파도에도 한번 몸을 맡겨볼까 싶은 용기가 생겼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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