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옆자리 동료가 PCR 검사에서 양성을 받아 나는 밀접접촉자가 되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늘 정부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왔다. 방역 패스 기간이 남은 접촉자의 경우 정부 기준에 따르면 격리가 필요하지 않지만, 회사 기준으로는 7일 격리가 필요하다. 또, 자가진단키트나 신속항원검사가 아닌 PCR 검사 결과를 동료가 양성 판정을 받은 날과 출근 전 2회 제출해야 한다.
현재 정부의 변경된 방역 수칙은 60대 이상 또는 자가진단키트나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경우만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나처럼 해당되지 않는 경우는 검사가 가능한 일반 병원을 수소문해야 한다.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는 비급여로 PCR 검사를 바로 해주는 병원이 없어 시 경계를 넘어가야만 했다. 그나마 점심시간 30분이나 진료 마감 후, 환자가 없는 시간에만 사전 예약으로 검사가 가능하고 비급여라 비싸다는 등 제발 오지 않길 바라는 눈치였다.
불합리하지만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소속된 조직의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불편한 마음으로 검사를 받기 위해 집을 나섰다. 게다가 나는 현재 임신 중이라 감기 환자나 코로나 의심 환자가 있는 병원을 방문하는 게 외려 위험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 코로나 TF의 탁상행정에 불평이 차올랐다. 그러나 이 부분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당장 바꿀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대신 기쁜 일 하나를 찾아보자 마음먹었다.
'나는 지금 검사를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를 사러가는 것이다. 드라이브 스루 매장에 들려 임신으로 그동안 마시지 못했던 커피를 디카페인으로 즐길 것이다'
자기 암시 혹은 자기 최면쯤 되려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보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검사소에는 대기자가 많았다. 하루 몇만 명씩 확진자가 나온다는 뉴스가 그제야 내 일처럼 느껴졌다. 야외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느라 손발은 차가워졌고 몸은 으슬으슬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서 냉기가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그 순간 저 멀리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PCR 검사로 얼얼했던 코의 진통도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돌체 라테 디카페인 톨 사이즈로 한 잔 주세요."
그렇게 나는 2시간 반 외출의 목적으로 스스로 정의했던 디카페인 커피를 손에 쥐었다. 사내 코로나 방역 기준을 확인하고 병원을 알아보느라 하루가 다 지나갔지만 그래도 제법 괜찮은 하루를 보낸 기분이었다. 적어도 마시고 싶었던 달콤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지 않은가? 불편한 상황 속 유일한 기쁨을 뜰채로 건져 올리자 작은 행복도 함께 딸려온 것이다.
살다 보면 억울하고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일들이 도처에 가득이다. 그러나 분명 그 틈새 어딘가에서 잔디의 여린 새싹이 흙을 들어 올려 싹을 틔우고 있을 것이다. 그걸 발견하는 것도 능력이지 않을까? 기쁨도 행복도 애써 노력해야 다다를 수 있는 육상 경기의 결승점이 아니라 발견과 선택의 대상이다.오늘도 묵묵히 싹을 틔우고 있을 행복을 발견하고 선택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