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과 루틴 그리고 리추얼이라는 말이 혼재되어 불리고 있다. 모두 같은 뜻인 듯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외국 사이트에서는 그래프로 이 세 단어 간의 차이점을 설명하기도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래서 습관과 루틴 그리고 리추얼 사이에 대관절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습관은 말 그래도 어떤 행동을 의식하지 않고도 할 수 있을 수준이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밥과 국이 함께 나오면 국물부터 한 수저 떠먹는다. 버스에서는 창가보다 복도 쪽 자리를 먼저 찾고,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적막이 흐르는 것을 견디지 못해 화재를 찾아 던지는 편이다. 머리가 길던 짧던 일을 할 때는 오른쪽 머리는 귀 뒤로 넘겨줘야 하고, 집중을 하거나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입술을 물어뜯는 습관을 가졌다.
그럼 루틴은 무엇일까? 습관이 점이라면 루틴은 이를 연결한 선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누운 채로 핸드폰을 한번 확인하고 침대에서 나와 전기포트 전원을 누르고 양치를 한 후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신다. 회사에 출근하면 우선 자리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PC에 전원을 켠 후 텀블러에 물을 채우러 탕비실로 향한다. 십수 년째 변하지 않는 이런 행동 하나하나는 일종의 습관이고, 이를 연결한 일련의 행동은 나만의 루틴이라 할 수 있겠다.
책 《글쓰기에 진심입니다》 책에서 소개했던 나의 외할아버지는 식사 후 반드시 걸어야만 살 수 있는 분이시다. 복덕방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아 걷지 않아도 되는 지금도 아침 식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약수통을 들고 집을 나서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말이다. 식사 후 걷기는 할아버지의 습관이자 루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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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리추얼(ritual)은 무엇일까? 리추얼의 사전적 의미는 꽤나 거창하다. 종교상의 의식이나 절차 같은 일을 칭한다. 우리의 일상에 종교상의 의식이나 의례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일까? 몇 해 전부터 특히 MZ 세대를 중심으로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리추얼(ritual)이란 일상 속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행위를 찾아 그것을 신성한 의식으로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즉, 앞서 소개했던 나의 습관적인 행동들에 '의미 부여'를 해준다면 리추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습관보다 리추얼이 더 중요한 것일까? 하루 24시간 중 평균 7~8시간 수면을 취한다고 치면 인간이 깨어있는 최소 16시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진행해야 할까? 사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노력해서 한다 쳐도 굉장히 피곤할듯하다.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 '리추얼'이라는 단어에 열광하는 것일까?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 사태가 길어지면서 무기력증에 빠진 이들이 많다. 일상적으로 친구와 만나고, 동료들과 차를 마시고, 가족과 외출을 하는 일에 제약이 생겼다. 업무조차 넓은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어우러져 진행했던 것이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고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었다. 외부의 수많은 관심사에 둘러싸여 살던 사람이 그런 외부 자극이 모두 끊겨버린 것이다.
허망하고 허무하고 무기력해지는 게 당연하다. 익숙하지 않은 나 자신만이 관심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무엇을 하면 뿌듯함을 느끼고 기분이 좋은지 알지 못했다.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니 의미를 부여하고 의식적으로 하나씩 해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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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중에 반복적으로 행동하는 습관, 그리고 이런 습관들이 연결된 루틴은 우리의 뇌를 덜 쓰고도 비슷한 생산성과 성과를 내는 방법이다. 이렇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동 반복하게 되는 행동 패턴 중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행동이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는 5분이, 누군가에게는 향기로운 향초를 켜고 명상을 하는 10분이,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칭을 하며 땀을 내는 20분이, 또 누군가에게는 책 속에서 만나는 문장을 손으로 옮겨 써보는 30분이 그런 의미 있는 행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동이 자신만의 '리추얼'이 되어 평범한 일상 속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게 해 줄 것이고, 나아가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게 할 것이다.
우선 그 시작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행동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이어야 한다. 발견했다면 그 행동을 할 때는 특별히 의식적으로 해보면 좋겠다. 결국 리추얼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또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쓰는 활동이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럼 내게 특별한 의미를 주지는 못하지만 성장을 위해 지속하고 싶은 행동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행동은 가능한 에너지를 아껴 진행할 수 있도록 습관으로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누구나 매일 24시간의 자원을 새롭게 받는다. 그 시간을 채우는 방법은 각자의 상황과 지향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행동으로 그 시간들을 채울지, 어디에 에너지를 더 배분할지가 달라진다.
나의 습관 목록 그리고 루틴에 추가하고 싶은 행동이 있다면 우선 현재 가득 찬 나의 스케줄표에서 덜어낼 곳을 찾아봐야 한다. 처음에는 10만큼의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행동이 습관으로 안착된다면 2~3 정도여도 충분할 것이다. 여분의 에너지와 시간은 다시 새로운 습관에 안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하고잡이'라면 설레지 않겠는가? 그렇다. 나 역시 그런 '하고잡이' 중 하나인지라 벌써부터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