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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Sep 25. 2022

내가 뱁새인 거 어떻게 알았지?

아무리 포장해보려 해도 열등감

"엄마 우리 회사에서 발에 채는 게 박사고 해외 박사도 엄청 많아. 내 학벌이 젤 구릴걸" 본인 딸이 여전히 최고인지 아시는 엄마 가슴에 매번 이렇게 대못을 박고 또 박고 확인사살까지 하는 게 나라는 위인이다.

해외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국내라면 SKY나 카이스트, 포항공대 정도는 되던지, 아니면 석박사를 수료해 가방끈이 길던지. 이도 저도 아니니 회사에서 웬만하면 출신 학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같은 랩실 출신이라든지 같은 교수님께 사사한 이들끼리 반가워하며 위아래 챙기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눈꼴이 시렸다. "아니 동향이나 동문 모임 하지 말라는 회사 방침을 귓등으로 들은 거야 뭐야. 유난들이야 정말" 이것은 분명 열등감이다. 아무리 포장해보려 해도 열등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볼까?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막 창단해 역사도 없는 스노보드 동아리의 1기로 가입했다. 내 나이가 40대이니 그때만 해도 스노보드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김종서나 탈 법한 희귀한 스포츠였다. 아, 내가 그보다는 살짝 뒷세대 이긴 하다만. 여하튼 그래서인지 1기로 만난 동기, 선배, 후배들 중 재력가의 자제들이 많았다. '재력가'라는 단어가 상당히 올드하게 느껴진다만 어쨌든 그런 금수저들 사이에서 내 마음은 쪼그라들 때가 많았다. 36년의 공직생활을 여전히 자랑스러워하시는 아빠가 들으면 심히 서운해할 소리이다. 그런데 아래보다 위를 더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끼는 나의 이런 성향은 아빠에게 물려받은 DNA이니 외려 내게 미안해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스노보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동아리의 가장 큰 관심은 겨울 시즌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지였다. 이를 위해 장비나 옷 대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명색이 스노보드 동아리원인데 대여라니 모양새가 좀 빠지지 않겠나? 장비와 옷은 물론이고 시즌권과 시즌방까지 두루두루 완벽하게 갖추는 게 국룰, 아니 동아리의 암묵적 룰이었다. 스키장도 가본 적 없는 청빈한 지방 공무원의 자제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던 나는 과외를 늘리고 단기 알바를 뛰었다. 그렇게 땀을 흘려 모았지만 여전히 넉넉하지 못했다. 동아리 친구들이 더 예쁜 옷, 더 좋은 장비를 고를 때 나는 예산 내로 풀 라인업 구축이 가능할지 머릿속 계산기를 끊임없이 돌려야 했다. 우수한 판매원이라면 망설임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는 내게 다가오더니 넌지시 말했다. "학생, DP 상품은 40% 할인이 돼요" 아, 이런 내가 뱁새인 거 어떻게 알았지?

나는 나 자신이 자존감이 꽤 높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 시절의 나는 자존감이 그리 굳건하지 못했다. 아니 자존감은커녕 열등감을 가득 품고 살았다. 그런데 이 열등감이라는 녀석은 우월감과 짝꿍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열등감 콤플렉스와 우월감 콤플렉스는 이란성쌍둥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눈치챘으려나? 다음 편에서는 내가 가진 근본 없는 자신감과 우월감에 대해 고백해 볼 참이다..



#내꿈소생

#100일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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