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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작가 Sep 26. 2022

욕심 많은 여우의 '빈정대기'와 '자기 합리화'

근본 없는 우월감과 자신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조금만 더 지질한 이야기를 해볼까? 열등감을 가진 이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체득하는 방어기제가 여럿인데 그중 짝을 지어 다니는 두 녀석이 있다. 바로 '빈정대기'와 '자기 합리화'이다. 속으로 부러움이 구만 리나 되어도 대놓고 부러워하는 건 절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겉으로는 도도하게 굴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연스레 '빈정대기'와 '자기 합리화'가 앞다퉈 존재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물론 스스로 빈정대거나 자기 합리화를 했노라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저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 아냐?"
"엄청 대단한 것처럼 굴더니 별거 아니네"
"시간도 없는데 이 정도나 했으면 잘한 거지"
"몇 년만 일찍 시작했어도 지금쯤 더 대단한 성과를 냈을 텐데"

자, 이런 문장을 대놓고는 못해도 속으로 이야기하며 입을 씰룩거리거나 한쪽 입꼬리만 삐죽하고 올려본 적이 있지 않는가? 욕심 많은 여우가 나무에 매달려있는 포도를 먹지 못하고는 포도가 맛이 없을 것이라며 자신을 위로했듯 스스로를 위로했던 경험 말이다. 사실 나는 꽤 자주 그랬다. 누군가 공들여 준비한 자료를 휙휙 넘기면서 그랬고 (이건 주로 회사에서),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올린 이들을 보면서 그랬다 (이건 주로 인플루언서나 작가들을 보면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들을 보면서는 수도 없이 그랬다.

인정하자. 사실은 배가 아팠던 거다. 나 스스로가 그들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니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를 마구 발휘한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다. 정말 내가 그들보다 그렇게나 부족할까?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솟구치는 열등감에 나 자신이 타버릴까 봐 빈정대고 자기 합리화를 할 만큼 나는 잘하는 게 없을까?

내가 가진 최근의 열등감은 출산 후 3개월이 지나도 줄지 않는 몸무게와 도무지 늘지 않는 인스타 팔로워 숫자이다. 하나는 줄지 않아 걱정이고 하나는 늘지 않아 고민이라니 숫자의 역설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이런 숫자에 연연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지질하게 느껴지면서도 비슷한 시기에 인스타를 시작한 이들의 성장을 볼 때면 그렇게 배가 아팠다. 아프면 약을 써야 하니 만병통치약 같은 '빈정대기'와 '자기 합리화'를 시전 했다.

"팔로워 증가를 목적으로 보여주기 식 피드 발행은 진정성이 좀 부족한 거 아냐?"

빈정대기이다.


"갓난아이를 키우면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인스타 계정을 키우고 커뮤니티를 관리하겠어. 지금 정도면 잘하는 거지"

자기 합리화이다.

아, 이렇게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이토록 솔직하게 드러내도 되려나 모르겠다. 하는 김에 좀 더 부끄러운 고백도 하나 해볼까?  

얼마 전 10년 전쯤 미국에서 잠시 스치듯 인연을 맺었던 이가 몇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육아 교육 인플루언서가 된 것을 알았다. 똑똑한 친구인지라 육아도 자신의 전공을 살려 똑소리 나게 하고 있었고, 이런 경험에 자신이 공부했던 뇌 과학 이론을 접목해 육아 교육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모양이었다. 새벽에 잠이 깨서 피드 파도를 타다 월척을 낚은 기분이었다. 굳이 굳이 페이스북에 저장된 인연의 흔적을 찾아 캡처했다.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자니 스크롤을 꽤나 올려야 했다. 어머 어머 웬일이야를 외치며 신나게 찾았건만 막상 캡처를 하는 순간 요즘 말로 현타가 제대로 왔다. '아 나 지금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상대는 기억도 하지 못할 스쳐간 인연의 단상을 왜 기어코 찾아낸 걸까? 그 증거를 들이밀고 아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나?   

"우리 삼촌이 청와대 출신이셔"
"우리 조카가 유명한 변호사야"
"내 친구가 대학병원 의사야"
"친구 아빠가 대기업 임원이셔"

유난히 주위의 인연을 끌어다 자신을 수식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자신만으로는 충분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멋있는 척, 잘난 척, 아는 척, 유명한 척... 수도 없는 척들 뒤에 숨어서 그 안전지대가 영원하리라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흰 새벽 시린 눈을 부릅뜨고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라도 된 듯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던 나는 이 중에 어떤 경우였을까? 뭐가 되었던 어쨌든 열등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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