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히 알려고 하라.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져라!

<칸트가 어린이들을 만나러 옵니다> 서울교대 어린이철학교육센터

by 동그래



[서울교대 어린이철학교육센터에서 개최한 칸트 3주 특강 요약정리입니다.


개인적으로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으로 잘못된 이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댓글로 알려주세요.]






과감히 알려고 하라.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져라! (Sapare Aude!)




그동안 수동적으로 지식을 수용하던 것에서 벗어나 과감히 비판하고, 스스로 생각하여 판단하라고 했던 칸트.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고, 직관없는 개념은 공허하다. 라고 말하며 개념과 직관을 함께 사용하라고 했다. 그동안 철학이 뜬구름같은 말을 하고 일상의 삶과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웠던 칸트는 철학을 자연과학의 방법처럼 가설을 세워 설명하고자 했던 철학자였다.



세상은 물자체와 현상계로 이뤄져있다.


세상을 물자체과 현상계로 나눠 생각했다. 물자체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사람이 알 수 없는 영역이고, 현상계는 인간이 아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인간인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다.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상은 선험과 경험을 통틀어 선험적 경험판단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선험은(apriori) 경험과 독립적으로 있는 지식으로 도덕법칙, 수학적 지식과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나다. 빨간 사과는 사과다. 와 같은 분석 명제(선험 명제, 항상 참인 명제)등으로 주어에서 술어가 나온다.


경험은 경험의 인식을 통한 결과이다. 예를 들어, 이 사과는 빨갛다. 분석해도 빨간 것은 안 나오게 되는 것, 그러니까 경험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칸트는 선험과 경험, 모두 이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선험적 종합 판단으로 확장적이고, 정확하다. 항상 참이면서 새로운 지식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칸트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종합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칸트의 책은 순수이성판단, 실천이성판단, 판단력 비판이라는 책 3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순수이성판단은 실존주의, 인식론, 이론 철학이면서 종합판단에 대해 말했고


실천이성비판은 윤리학,


판단련 비판은 자연과 자유를 합치하여 판단해야 할 것을 말했다.


책을 직접 읽으면서 강의해주셨는데 어려웠다.



칸트의 말에 대해 한 장의 프린트로 내용을 풀어주셨다.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기록하되, 잘못된 이해가 있을 수 있다.



'선의지'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 갖고 태어난 것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 선의지를 사용하여 살아야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은 '경향성'이 있어 어딘가 기울어지고 삐뚤거리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이 경향성은 간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pathos)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되는 신이 아니기에 늘 실수하고 어긋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경향성(감성)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의무)가 필요하다. 의무는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심이다. 이 의무를 기억하면서 선의지를 제대로 표현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법칙에 대한 존경은 상위존재에 대한 이성적인 경외감이라 볼 수 있다.



칸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의지, 곧 실천 이성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의지는 호라동성, 자율성 도덕법칙을 산출하는 힘으로 자기 스스로 존엄한 존재에 대한 존경심을 다해 행하는 것이다. 자연에도 법칙이 있듯 도덕에도 법칙이 있단고 본다. 도덕 법칙은 내 안에 선의지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의무를 갖고 존경심을 따라가는 것이 의지, 실천 이성이라고 본다.(칸트는 유신론자다. 결국 신이 존재한다고 하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이 때 따라간다고 하는 것이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면이다. 이렇게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존엄이다.



가엄명령(~하면~~해줄게)은 조건을 건 명령이지만 우리가 도덕성의 최상의 원칙이라고 여기는 것은 정언명령(스스로 마땅히 항상 그래야 한다고 여기면서 사는 것)이다. 이 때 이성과 감성 모두를 사용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감정(경향성/욕구)과 잘 싸우기 위해서는 정언, 명령이 필요하다. 자신의 도덕적인 판단으로 잘 살다면 그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닌가 하고 묻는다. 근본적 동기는 어느 누구에게라고 언제라도 절대적으로 통할 수 있는 명령이 있다는 것, 그것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율성의 원칙은 자기 선택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도 되기를 바랄 수 있게 오직 그렇게만 선택하라.


이것이 실천적인 규칙 하나의 명령법이다."(102p)




선의지-경향성-의무-도덕법칙-정언명령을 이루는 삶에 대해 말하는 칸트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의지(힘)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때의 힘은


자유~로부터의 자유(소극적 자유)와 ~할 수 있는 자유(적극적 자유)를 통해 오는 것으로


소극적 자유와 의지의 교집합이 자율(autonomic)이라고 말한다.



즉, 자율 도덕이란 내 스스로한 명령에 따르는 것으로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큰 개념만 설명한다. 그것이 비판받기도 하지만, 어쩌면 칸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구체적인 내용보다 어떤 판단의 형식(항상 옳은 것이 있다는 전제로)을 찾는 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에게 인간이란 무엇이었을까?


감정과 지성, 이 두 세계에 발을 딛고 있는 연약한 존재다.


선의지를 발휘하고 싶지만 경향성의 덫에 걸려 허덕이는 존재,


그래서 '정언명령'을 갖고 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해야하는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고


삶의 일관성을 가지고 산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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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인간이란 무엇일까. (감성과 이성, 둘의 조화는 가능할까. 어느쪽에 더 기울어져 있는가.)


어떻게 선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경향성과 의무, 선의지)


조건이 없이 선한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가언명령과 정언명령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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