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갑니다.

아이넷과 벤쿠버로 떠나다.

by 동그래

내가 20대 때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내가 태어난 이유가 있으며, 종교적인 소명이 있으니 그것을 발견하며 그 목적이 현실에서 실현되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야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 책을 순수하게 믿었고, 받아들였으며 내 삶의 목적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 돌아보니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틀에 내 자신을 가두어둔 것 같았다. 여전히 내 삶의 목적을 찾지 못했으니, 그 목적은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했다. 또한 그 목적을 찾았다 하더라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삶인 것인가 하는 회의도 느껴졌다.


삶에 목적이 꼭 있어야 할까?


아이들을 낳고 함께 지내다보니 목적을 세우고 목적을 달성하면서 살아가는 삶 그 너머의 반복되는 일상을 얼마나 조화롭고 즐겁게 누리면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내 인생의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목적이 나를 이끌게 하는 삶만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 목적은 바뀌기도 하고, 없을 때도 있지 않아? 반발심도 들었다. 뭔가를 해야 좋은 삶이라는 조건을 다는 삶이 지긋지긋해지기도 했다. 엄마로 사는 것도 빡센데, 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은 더 더 더 나를 조이는 삶이었다. 가정에서 육아를 하고 살림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날이 있는데, 어떤 거창한 목적을 이루는 사회적 자아를 가져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인 거야? 만약에 그렇게 조건을 걸어야 좋은 삶이라고 인정받는다면, 그런 인정따윈 버리고 싶었다.


사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가 그냥 좋았다. 내 아이라서 좋은 거지, 어떤 이유가 없었다. 사실 사랑할 이유나 조건을 찾는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찾아야 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저 사랑스럽고 예쁜 거였다. (물론 365일 매일 그런 건 아니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목적이 이끄는 삶 말고, 그냥 존재하는 삶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자기 전에 찝찝한 날이 있다. 수없이 이불킥하고 반성하면서 나 자신을 쭈구리면서 쪼그라들게 하는 밤. 내일 해가 뜨면 '더 잘 해야지'라고,내 삶을 채찍질하며 살았던 시간을 매일 매일 보내다보니, 더 이상 살기 싫어지기도 했다.



'이제, 더 잘 하려는 삶'을 종료, 나가기 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더' 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잘' 하려는 마음을 끝내고 싶었다.

더 솔직한 마음은 이 세상을 뜨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 이런 저런 생각으로 삶의 번아웃이 왔고, 떠나고 싶었다. 익숙했던 곳을 떠나서 다시 백지로 시작하고 싶었다. 아이넷을 데리고 가더라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보고 싶었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조건이나 목적 따윈 필요없이 그냥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캐나다에 가기로 했다.

아이 넷을 데리고.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떠나기로 했다.


무엇이 되려고 우린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그냥 살아보자.

목적도 없고,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을 거다.

매 순간 배움의 거리를 찾지도 말고, 성장하고자 애쓰지도 않을테다.

자연스럽게 그저 나를 풀어줄거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연에게 시간에게 맡겨버릴테다.


낯선 곳에서 아이들이랑 어떻게 지낼거야? 라고 걱정어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냥 살거야."


이런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비행기를 탔고 우리는 벤쿠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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