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철학이 필요한 이유 1
모두 애쓰며 산다.
놀이터에 앉아 가만히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애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놀이터에서 친구와 함께 노는 순간이 행복하고 즐겁지만, 놀고 있는 친구의 마음을 맞추며 노는 것은 내 생각이나 행동을 조절하고, 사회적 규칙을 지키면서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일이거든요. “안돼!” “싫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하자.”라고 한 걸음 물러서서 친구의 편을 들어주는 아이의 표정은 여러 가지 생각을 말해줍니다. 한참 놀다가 한 친구가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저에게 다가가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요, 쟤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줬더니 계속 자기 말만 들으래요. 자기가 대장인 줄 알아요! 완전 짜증나요!”라고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을 터놓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그랬구나, 네가 친구랑 잘 지내려고 애썼던 것인데 그 맘도 몰라주고. 진짜 억울하겠다.”라고 맞장구쳐줍니다. 흥분하던 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습니다. 어쩌면 매일 놀이터에서 친구와 짝짝꿍 잘 놀았다는 기쁨과 친구의 마음을 맞춰주며 꾹 참으며 꾸역꾸역 놀았다는 짜증과 실패를 느끼며 인생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선택이 있다면?
어떤 날은 저들끼리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으면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저는 얼음땡을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이 세 명은 싫대요. 그래서 뭘 하고 싶냐고 했더니 모르겠대요. 모르면 그냥 제가 하고 싶어하는 거 해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도 생각하는 중이라고! 너처럼 하고 싶은 것이 없을 수도 있잖아.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냐고? 저번에도 네가 원하는 거 했잖아. 오늘은 안 할거야.”
“그럼 뭘 하고 싶은지 말하라고!”
“그렇게 소리치면 우리가 생각할 수가 없잖아. 그냥 너랑 안 놀아!”
“아니, 그게 아니잖아. 너랑 놀고 싶다고.”
“그럼 소리 좀 치지마! 짜증나.”
이미 마음이 상한 아이들이 목소리를 높여 가며 자신의 입장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모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봅니다.
“글세, 지금 하고 싶은 놀이가 생각이 안 나면 우선 준호가 하고 싶어하는 걸 하는 건 어때?”
“그건 싫어요. 그거 맨날 해서 재미없어요.”
“아,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이 뭘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할까?”
“그것보다 경찰과 도둑 어때?”
“아이디어가 많이 있네, 그럼 이제 많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되겠네.”
“더 나은 선택이라.... 손들어볼까?”
아이들은 여러 가지 놀이를 두고 다수결로 결정하고, 가장 많이 나온 놀이부터 순서대로 놀자고 결론을 내리고 훌훌 제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또 놀이터 의자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유모차의 아이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애쓰며 살까
아이들의 삶에는 매일 갈등이 있습니다. 특히 여럿이 함께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일에는 깊은 고민과 갈등이 따릅니다. 그때마다 소리를 높여 싸우거나, 마음이 토라져 삐지거나, 안할거라고 피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자꾸만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부딪혀봐야 합니다.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철학입니다. 여기서 철학은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말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주어진 질문과 고민을 붙들고 해결해보려는 것입니다. 철학은 영어로 Philosophy, philo 사랑한다, 는 말과 sophia 지혜의 합성어로 지혜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방법을 아는 것보다 그 놀이를 친구들과 재미있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지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더 나은 생각’, ‘더 나은 선택’, ‘더 나은 판단’을 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렇게 지혜롭게 삶을 세워가는 과정이 바로 철학 하는 삶입니다.
아이들은 모두 애쓰면서 살아갑니다. 좋은 친구가 되려고, 좋은 학생이 되려고, 좋은 자녀가 되려고, 또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씁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좋은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좋은 학생이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구체적으로 묻고 따지고 여럿이 함께 대화하며 그 길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을 실천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삶에 철학이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려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살아갈래? 무엇을 위해 어떻게 애쓰면서 살래? 같이 생각해볼까?"라고요. 명확한 답을 주진 못하겠지만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하면서 살도록 말입니다.
쓴 날 2023.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