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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래 Jun 21. 2023

철학은 누구나 하고 있는 거잖아. 그걸 또 배워야해?

9살 은유  

"엄마는 뭘 공부하는거야? 선생님이면 계속 배워야해?" 은유가 책을 읽던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엄마는 어린이 철학을 공부해. 어린이들이 철학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공부야." "아.. 그런데 철학이 뭐야?"  "철학? 철학은 생각하는 거야. 더 나은 삶을 위해 잘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또 잘 살아가도록 하는 거지."라 대답하니 "아.. 엄마! 철학은 누구나 하고 있는 거잖아. 생각없는 사람이 어딨어! 그걸 또 따로 배워야해?"라고 곧장 질문한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누구나 모두 생각하면서 살까? 생각없이 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아니야. 누구나 생각을 하고 살아. 그 생각이 나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생각은 모두 하고 있지." 책상 아래에서 놀던 은수가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도둑! 경찰은 잘 생각하고, 도둑은 나쁜 생각을 해. 둘 다 생각은 하는 거지!"라며 똑부러지는 말투로 이야기에 끼었다. 이때다 싶어 "철학은 지혜롭게 생각하는 거야. 좋은 생각을 더 좋은 생각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 엄마는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좋은  생각을 잘 하도록 돕는 공부를 하는거야."라며 신나게 대답했다. 여전히 은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철학을 왜 배우는 거지?"라며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되내이며 놀이터로 신나게 떠났다. 


은유는 '누구나 생각하면서 사니까 누구나 철학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그 말을 의심한다. 살다보니 정말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고, 나 조차 내 생각으로 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적어도 우리 어린이들은 좋은 삶을 살고 싶어하고, 부단히 생각하며 살고 있어서 어린이들은 철학자라고 믿는다.  어린이철학(philosophy with/for children)을 공부하고 실천한지 15년 정도 되어 간다. 처음 어린이철학을 공부할 때는 더 잘 생각하는 내가 어린이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내가 철학수업을 디자인하고 아이들이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요즘엔 아이들을 초대하여 아이들이 실컷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 조금 더 깊고 넓게 생각하도록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 이 둘의 수업 형태는 비슷해보이지만, '어린이가 철학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내 인식의 차이는 분명히 달라졌다. 어린이들을 주어진 질문에 대답해야 하며, 어른이 가르쳐야 뭔가를 배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철학하며 서로에게 배우는 동반자로서 아이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은유의 말처럼 "누구나 생각하고 있어. 누군나 철학하고 있어." 라고 믿으며 어린이와 철학을 하고 있다. 이 생각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나의 아이들 덕이다. 나는 아이들을 낳고 키우기 전까진 어린이들이 잘 생각한다해도 어른의 생각보다 수준이 낮고 좁을 것이라 여기며 어른의 역할을 강조했었다. 좋은 어른이 되어 약한 어린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 본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고 찾아 부모님들에게 강조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ㅡ 어른의 나이가 되고 보니, 어른도 여전히 아이처럼 약하며 여러 면으로 성숙한 삶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물론 나이듦에 따른 경험과 생각의 깊이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몸이 작고 말이 서툴지만 아이들의 생각이 얼마나 경이롭고 지혜로운지 발견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좌지우지 하는 완벽한 어른으로 살 수 없겠다고,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한 사람으로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여러 자리에서 묻고 따지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철학을 더 진실되게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기대여 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고 싶어진거다. 


만약 은유가 철학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누구나 철학하고 있는데 왜 또 배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엄마는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삶을 배우고 있고, 그것은 너와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생각 연습이고 실천이야."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그런데 여전히 은유의 질문에 의문이 남는다.

정말 모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살까? 철학하고 있을까? 

은유의 말을 믿고 싶은데, 정말 그럴까?

철학하자고 말하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 세상은 분명 참 좋은 세상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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