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국 혼자다. 홀로 완전히 독립된 주체! 그것으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응원과 지지를 주고받으며 무너지지 않고 힘을 낸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나누고 세상과 주고받으며 성장한 사람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완전히 독립된 '나'를 추구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잘 지내기를 바라고 노력한다. 그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나보다 가족, 동료, 친구가 더 중요했던 순간들도 있었으나 지금은 나를 중심에 두고 벨런스를 맞추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학교에서 만나 마음을 나누고 있는 세 명의 친구들과는 27년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연을 이어갈 수 있는 '우정'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가족도 아닌데 눈만 뜨면 친구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할 수 있을까? 수업 중에 쓰러진 친구에게 고기를 사주고 노래방을 데려갈 생각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 잘 먹고 스트레스를 풀면 해결될 것이라는 걸 알고, 또 노래를 불러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남녀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과 우정의 큰 차이는 바라는 것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좀 심하게 말하면 바라는 것이 없어서가 아닐까? 부부 사이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이럴 땐 이랬으면, 저럴 땐 저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마련인데 친구들과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함께 하면 좋고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편안함, 뭔가 더 내어주고 싶은 사랑,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끈끈함, 그러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예의와 배려. 이런 것들로 묶인 우리 넷은 그래서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일 것 같다.
인연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우정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이유는 일상을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인연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우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사고로 가족을 잃거나 혹은 가족에게 상처받거나 하는 등의 많은 일들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을 보내는 친구와의 우정 말이다.
종교생활을 하며 만난 신부님, 대모님도 그러하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평안을 빌며 자주 연락드리지 못하지만 마음의 끈이 이어져 있는 인연이다. 기도 중에 함께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분들을 통해 배웠다. 자주 연락드리지 못하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함께하는 듯한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다.
기본학교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는 인연도 있다. 사는 곳, 나이, 직업 등은 각기 다르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과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바람과 노력, 열정이라는 교집합이 있는 우리는 함께 공부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시를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동지애를 키우고 있다. 처음에는그저 열심히 공부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모두의 건강과 발전을 빌며 나의 역할을 찾는 중이다.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실질적인 지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질문하는 중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든 인연도 있다. 단순히 직장 상사, 동료가 아닌 서로의 뜻, 의지를 밝히고 응원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선배들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었고 선배들이 받아주었다.
팀장과 그 아래 조직장 두 분이 회의를 했다. 저녁도 못 드시고 몇 시간째 이어졌다. 나는 밥을 먹고 와서 요기가 될 수 있을 법한 율무차와 간식을 조금 챙겨서 회의실에 들어갔다. 세분 모두 업무적으로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선배였다. 그 이전의 상사들과 차이가 많이 나서 더 감사했던 부분도 있다. 나는 그분들이 식사를 못하셨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행동한 것인데, 비서냐? 아부하냐? 등등의 말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차피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거 그냥 마음 가는 데로 하자는 생각에 나는 계속 그분들께 마음을 열고 다가갔고 많이 배웠다. 물론, 혼이 나기도 했다. 그 지적들이 납득이 되었기에 그것이관계를 깨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이분들께 연락을 드린다.
그리고 후배들과 왜 그런 관계를 만들지 못했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함께 일을 하는 직속 상사인 내가 그들을 후배로 여기고 마음을 내어도, 그들에게 나는 일을 주는 사람이기에 그들이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내가 덕이 부족하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후배들이 있다. 나와 직접적인 업무관계가 없거나 내가 간부가 되기 전이라 일을 주기보다는 그들의 일을 가르치고 지원해주던 때 만났던 인연들이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고 술을 사주는 등 주로 내가 주는 관계였는데 이제 그 친구들이 더 잘 벌어서 그런지 자꾸만 무엇을 보내준다. 내가 이렇게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이제 건강을 많이 회복했으니 마음만 보내지 말고 선물도 보내야겠다.
살면서 다양한 인연이 만들어진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다가오기도 하고 내가 원해서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스쳐가기도 하고 가슴에 남아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스쳐가는 인연을 억지로 붙잡을 필요도 그것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내 마음이 움직인다면 내가 먼저 마음을 내어보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마음을 보였는데 상대방이 답이 없으면 스쳐 보내면 그만이나, 혹여 상대방도 마음을 열면 좋은 인연이 만들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직장 상사가 인생의 선배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가 서로 완벽히 독립된 존재여야 한다. 독립된 각자들이 서로 응원과 지지를 보내며 더 나은 각자로 발전해 가는 관계, 그러한 인연이라면 그 수가 많지 않더라도, 단 한 명이라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관계가 부부 사이라면 인생이 더 멋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