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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Feb 22. 2022

17화. 꿈

자신이 옛사람의 수고로 부유해진 이상, 자신도 후손을 위하여 수고함으로써 후손들에게도 그 덕분에 부유해질 만한 것들을 남겨야 한다. 사회 문제에 관한 이론을 습득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어떤 이바지를 하고자 고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자기 본분을 멀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 김태유, 패권의 비밀 / 단테, 단테 제정론 -


지난해 우연히 김태유 교수의 동영상 강의를 본 후 패권의 비밀을 읽었다. 프롤로그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문장을 오늘 아침 다시 읽었다.


20여 년 전, 신입사원 시절에 멕시코 출장을 갔다. 미국 국경에서 삼사십 분 소요되는 곳이라 샌디에고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출근 첫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 국경을 넘자마자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발의 아이들과 양동이,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나는 샌디에고가 사막지대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멕시코에 가서야 기억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멕시코는 너무 달랐다.


A 국가에 3개월간 출장을 갔다. 호텔에서 사무실까지 택시로 이동하는데 택시기사와 소통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택시기사에게 현지어로 회사 주소가 적힌 명함을 보여주거나 영어로 이야기를 해도 안되어 호텔에 요청하거나 현지 직원에게 전화하여 택시기사를 바꿔주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길을 건널 수가 없었다. 8차선 도로에 횡단보도가 없었다. 한참을 걸어 겨우 찾았는데 신호등이 없었고 차들은 그야말로 쌩쌩 달렸다.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몇 발짝 움직였는데 차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뒤로 물러섰다. 길은 건너지 못했고, 이후로 출장기간 내내 숙소가 있는 도심에서만 지냈다.


멕시코도 A 국가도 도심의 상황은 달랐다. 국경지대, 도심 외곽 일부의 모습이었겠으나 신입시절 이 두 번의 출장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의 우리를 보았다.

'우리도 예전에 이랬겠구나. 내가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해서 지금 이 모습이 낯설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노력으로 나는 이런 경험을 하지 않고 살았구나.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미국처럼 살아보려 노력하는 중이구나.'


그 마음을 한동안 잊고 지냈다.


부모 세대 덕분에 경제성장률이 우상향 하며 그 혜택을 누린 나는 대학시절 IMF를 맞았다. 그때부터 경제성장률 추이는 답보 내지 하락하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들쑥날쑥 하지만, 추세로 보면 분명 상승하지 않는다. 육아 스트레스, 우울증, 갱년기 이런 것들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자식 공부시키고 열심히 살림하고 열심히 일한 세대는 드디어 먹고살만해졌는데 IMF로 수입이 끊겼고, 그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경제적으로 부모세대와 유사하거나 그보다 못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경제성장률 상승 시대에 자라나 하락 시대에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이전 세대의 수고에 감사하고 이후 세대의 어려움에 안타까워하며 그저 답답해 한다. 경제성장률을 다시 우상향 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의 주도적 위치에 설 수 있는, 국가의 미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대통령을 기대한다는 것이 조롱거리가 되는 현실은 안타깝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 막막함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이론을 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IMF 세대임에도 지금 대학생인 아들보다는 취업이 쉬웠고 물려받은 재산은 없으나 부부가 열심히 일 하고 투자하여 40대에 내 집을 마련했다. 우리 아이들은 그럴 수 있을까? 내가 자랄 때 부모님께서 말씀하셨듯, 열심히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너무나 어렵게 하는 중이다. 어려운 세상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말은 쉬운데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해 뭐든 해야 한다.  


경제성장률이 상승해야 한다. 그런 꿈을, 꿈이 아니기를 바라며 꾼다.



[영감을 준 것]

- 김태유, 패권의 비밀, 2017

- 김태유, 한국의 시간, 2021

- 박재완, 아시아 국가의 경제(1) 4차산업혁명, 아시아와 한국경제, 2021

  http://asiabrief.snu.ac.kr/?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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