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스템을 여는 혁신은 어색하고 이상한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혁신의 장은 경쟁이 주가 아니다. 노자의 눈에 비친 물은 경쟁하지 않는다. ... 그래서 노자에게 가장 탁월함은 물과 같다.
- 최진석, 「나홀로 읽는 도덕경」중에서 -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기존의 것들에서 벗어나 새로워지는 것을 추구하는 혁신, 그 새로워지는 것을 시스템화하여 변화가 정착되도록 하는 정보전략, 이것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는 일하고 있다.
기존 이론과 연결되어 있으나 새로운 것이 추가되고 틀어지고 변형되며 나타나는 신기술의 등장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내가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기에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절대 자연스럽지 않은, 치열한 것이리라. 남들이, 다른 나라에서 새롭게 만든 그것을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보며 '아, 이런 기술이 등장했고 이런 적용사례들이 나오고 있구나. 몇 년 뒤에는 이런 모습으로, 십여 년이 흐른 뒤에는 이런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조금 더 먼 미래를 고민하고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아질 뿐, 내가 그 물결을 만들어가려는 다짐도 시도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학교에서는 1등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점수를 잘 받는 것이 중요했다. 사회인이 되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도 고과를 매기고 그것이 진급과 연봉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우리는 남들과 경쟁하며 그들을 이기는 것에 익숙한 시스템에서 살고 있다. 판을 깨기 어려운 구조이다. 흘러갈 수 없다. 시간은 흐르고 이 세계의 생각, 기술, 문화도 흘러가는데 기존에 없는 첫 생각, 첫 기술, 첫 문화는 경쟁 시스템 안에서는 생겨날 수가 없다. 그것들은 경쟁할 대상이 없는, 새롭게 솟아나는 무엇이다. 싸워서 이겨서 얻는 것이 아닌, 싸울 수도 있는 대상을 전부 품고 그것을 딛고, 혹은 거부하며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나는 현실을 보이는 데로 보고 미래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 생각하고 실천하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왜 그리하지 못했는가 반성하고 삶을 새롭게 하고자 나아가는 중이다.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나 실천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회생활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고객 코드 한번 생성해 보지 않고 그 데이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번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내가 만든 고객 코드 관리시스템 기획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운영을 해 보았고 그러면서 달라진 모습을 꿈꿔왔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되어(IT 인프라, 조직 등) 직접 기획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이 내가 되어 진심으로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면서 그 시스템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대상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작은 것을 직접 해보는 것. 그것은 큰 일을 하기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다. 지식에 경험이 더해져야 실제 적용하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
내가 고객 코드 관리시스템을 기획할 때,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그와 유사하거나 혹은 더 큰 개념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때, 우리 회사가 거래하는 고객의 범위를 벗어나 전 세계 기업의 정보를 관리하고 표준화하여 고객정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 그 정보를 활용하는 체계를 기획하고 회사가 그것을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기업의 업종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지금은 이미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 누군가는 그러한 생각을 하고 실행하여 세계시장을 선점했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도하면서 필요한 지식을 쌓고 실패하고, 그 실패에서 얻은 것들이 쌓이다 보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시도, 변화는 주위의 다른 시도와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은 그렇게 변화해 간다.
물은 어디에나 담기고 어디로든 흐른다. 다른 물과 합쳐질 뿐 경쟁하지 않는다. 더러운 흙탕물이 되기도 하고 마실 수 있는 정수된 물이 되기도 하며 세상 어디에든 존재한다. 기업+혁신+정보전략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나는 더욱 물과 같아야 한다. 그릇을 키우고 때로는 내 그릇을 버리고 다른 그릇으로 옮겨가야 하며 아예 그릇이 없는 새로운 곳으로 흘러가야 한다.
지금과는 결이 다른 생각과 다짐 앞에서 다시 동굴을 찾는다. 당분간 타인과의 접촉면을 최소화하며 이 생각을 더 끌고 가보려 한다. 물론 엄마로 직장인으로 학생으로의 필수적인 것들은 행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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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학교와 혁신학교 매거진을 닫았습니다.
기본학교는 면접에서 떨어지고 혼자 공부하는 내용을 담으려 하다가 운 좋게 추가 합격되어 더 이상의 글을 쓰지 않았고, 혁신학교는 제가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자기 자신을 혹은 본인이 하는 일을 혁신하고 싶은 분들께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쓰려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제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혁신 근육, 기본을 좀 더 쌓은 후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