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재학 사례] 아날로그, 단단한 토양
엄마, 오늘은 돌로 공기를 했어요. 작은 돌을 갈다가 손 다칠 뻔했지만, 재미있었어요.
엄마, 저녁노을이 너무 예뻐요.
엄마, 어제는 눈이 엄청 왔어요. 자주학 하다 말고 전부 뛰어나가서 눈싸움하다가 전화를 못했어요.
엄마, 고양이들이 너무 예쁜데 고양이 간식 좀 보내주실 수 있어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폰을 내려놓게 된 아이는 다른 놀이를 찾았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저도 어릴 적 공기놀이를 즐겨했으나, 자연의 돌을 사용해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시골의 학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중입니다. 전체 학생 수가 백 명이 안되다 보니 눈이 오면 전원 운동장에 나오는 신기한 광경이 펼쳐지고, 어느 여름 체육대회 때는 모두 물총을 들고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탄생의 장면이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부러 만들어주지 않으면 아날로그적 삶을 경험하기 어려운 알파 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입니다. 그런 아이가 손 안의 세상을 너머 하늘을 보고 운동장과 시골길을 걷다 엄마에게 손 편지를 쓰는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70년대 생인 저는 아날로그의 끝자락과 디지털의 시작을 함께 경험했습니다. 삐삐에서 스마트폰으로, 천리안에서 제미나이로, 비디오테이프에서 넷플릭스로, 플로피 디스크에서 클라우드로 이어지는 거대한 전환을 체험했죠. 돌아보면, 학창 시절에 책을 읽고 별밤을 듣고 시를 쓰고 사색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참 감사합니다.
아이와 편지를 주고받고, 서로에게 다음 통화가 가능한 시간을 알려주고 전화를 기다리며 아이는 '응답하라 1988'의 감성을 느끼는 중입니다. 디지털시대에 태어나 범용인공지능시대를 살게 될 아이는 가상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저녁노을의 감동과 서늘한 바람, 손 끝으로 전해지는 자연의 감촉을 느끼는 중입니다.
아이의 학교에는 특별한 '엄마'들이 계십니다. 학교 식당에는 동네 할머니와 어머님들께서 근무하시며 아이들의 먹거리를 챙겨주십니다. 선배들이 그래왔듯, 우리 아이도 그분들을 '엄마'라 부르며 따릅니다. 산책길에 그분들의 집을 지날 때면, 아이를 불러 옥수수나 딸기를 주시기도 합니다. 입안 가득 계절의 맛을 물고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계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랑으로 아이를 안아주시고 아이 역시 선생님을 따르고 의지합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선생님을 믿고 따르고, 선생님은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지원해 주는 그런 바람직한 관계를 경험했습니다. 물론, 이 학교의 모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그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학교에서 생활을 하기에 전적으로 선생님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역시 한몫할 것이고요. 아이가 존경하는, 사랑하는 선생님이 학교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할 일입니다.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는 아이가 학교를 둘러싼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인사하고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디지털 문해력, AI리터러시, 미래문해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네,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력(力)'들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내가 나를 위해 디지털과 AI를 활용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힘(力)'들은 나 자신을 깊이 알아야 잘 길러질 수 있습니다.
디지털 디바이스, 생성형 AI의 세계에 나를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위해 도구를 활용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국가와 교육계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자신만의 '결'을 찾고 그것을 살리며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 그 아름다운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가 생활하는 대안학교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아이들이 손 안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신뢰의 힘을 배울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단단한 삶의 토양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 애써야 합니다.
글쓴이 정원 | 전략연구소 [결] 독립연구자 | 전략 자문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당신께, 이 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