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라고 하는 것을 자신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멀리 떨어진 것이라 여기고 있다. 혹은, 도서관에 즐비하게 꽂혀 있는 낡은 책 속에 있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에게도 틀림없이 역사가 있다. 그것은 일상의 역사이다. 지금의 하루에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였는지가 일상의 역사 속 한쪽인 것이다. 겁을 먹은 채 착수하지 못하고 하루를 끝낼 것인지, 태만한 채로 보낼 것인지, 혹은 용감하게 도전할 것인지, 어제보다 잘할 수 있도록 무언가 노력할 것인지. 그 태도 하나하나가 자기 일상의 역사를 만든다.
ㅡ 니체, 즐거운 지식 중에서 ㅡ
나의 하루는, 내 삶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질까?
"책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읽고, 세상의 흐름을 읽고 싶다. 그렇게 읽어낸 것들과 내 안의 것들이 만나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라고 하는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나에게 묻는다.
한동안 나는 아이들의 엄마, 부모님의 딸, 남편의 아내, 어머님의 며느리, IT기획자 등 나의 역할에 기반을 둔 이름들을 떨쳐내고 온전한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그 많은 이름표들을 달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이름들을 떼어낼 수가 없다.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른이다. 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가족을 챙기며 나를 챙기는 것이 내 삶이다. 그들의 일상에 내가 있고, 나의 역사 속에 그들이 있다.
요즘 열 살 딸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즐거우면서도 힘든 중이다. 아이가 엄마 껌딱지가 되어 종일 떨어지지 않는다. 공부할 때도 엄마가 옆에서 자신을 봐주기 원하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도 내 손을 꼭 붙든다. 학교생활도 성당 생활도 너무나 잘하는 아이가 이런 퇴행을 보이는 이유를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받아주는 중이다.
아이가 5,6살 때 아이를 재우고 다시 회사에 나가 새벽까지 일했다. 아이가 깨어나기 전에 집에 도착하려 뛰어다니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내가 속한 조직과 나의 가족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이는 자다가 깨서 엄마를 찾으며 울었고 그 사실을 초등학교에 가서야 내게 털어놓았다. 아빠의 품에서 엄마를 찾았을 아이와 남편의 모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어린이집 행사, 학교 운동회 등 친구들이 엄마와 함께하는 행사 날에 나는 병원에 있었다. 홀로 씩씩하게 그 모든 일들을 해내며, 그 속이 어땠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 없이 그 많은 일들을 해 냈을 아이들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생일파티를 원하는 딸을 위해 조촐하게 준비를 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개인 마스크 케이스, 손소독제 등을 준비하고 친구 두명을 초대했을 뿐이지만 아이는 너무 행복해했다. 엄마의 건강이 좋아졌으니 아이는 그동안 못 한 것들을 하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나 역시 최선을 다 하는 중이다.
아이의 역사 속에 나는 어떤 엄마일까? 남편, 아들, 동생, 부모님, 친구들 역사 속에 나는 어떻게 자리하고 있을까?
한파주의보, 오늘 새벽 기온은 영하 16도였다. 그럼에도 남편은 여느 때처럼 운동을 나갔다. 길도 미끄럽고 너무 추우니 하루 쉬기를 바랐으나 결국 뛰러 갈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한바탕 뛰고 온 남편은 기모 운동복에 바람막이 잠바 하나를 걸치고 손끝이 얼었을 뿐이라며 여느 때처럼 신문을 가져다주었다.
기도를 하고 차를 마시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필사를 하던 나는 남편의 언 손을 거쳐온 신문을 받아 들었다. 서재에 앉아 신문을 펼치는데 고마운 마음과 함께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살아서 일상을 살아가며 이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구나, 우리 부부가 이렇게 성실히 열심히 살고 있으니 아이들도 잘 커가겠지 등의 생각과 함께.
남편은 출장, 여행을 가도 운동복과 러닝화를 챙긴다. 언제 어디서든 새벽이면 달리는 일상의 루틴을 지켜간다. 내가 수술을 마치고 입원 중이었을 때도 몇 주간 내 곁을 지키며 어김없이 새벽이면 병원 주위를 뛰었다.
한 번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물었다. 나갈까 말까 고민되는 순간들이 있지만 하기로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해야 한다고, 일단 몸을 일으키면 그다음은 하게 된다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하기 시작하고 나의 루틴을 만들어가면서 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자주 떠올렸다. 일단 침대에서 나오기만 하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얼마 전부터 남편의 루틴에 추가 항목이 생겼다. 뛰고 와서 양배추를 갈아 마시고 보온병에 보이차를 챙겨 출근한다. 남편이 아침에 무언가를 해달라고 한 것이 처음이라 반가웠고 덕분에 나의 루틴도 늘어났다. 매일 새벽 양배추를 갈고 차를 내리며 남편이 이것으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고 피곤을 풀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차를 마시는 나의 루틴을 지원하기 위해 보이차에 대해 공부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주고 같이 즐기게 되기까지의 정성에 감사하며 나 역시 내가 쏟을 수 있는 정성을 다 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서로 지원하고 응원하며 각자의 일상 루틴을 지켜가기를 바란다.
나와 내 일상 속 그들을 소중히 대하는 날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