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우치다 타츠루 「곤란한 결혼」
결혼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사회와 인생 전반에 대해 다루지만, 그래도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결혼이다. 저자는 서양철학, 그중에서도 레비나스에 대한 책을 쓰는 저자이자, 무도가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에세이다. 글의 형식이 가볍다는 거지, 주제가 시시콜콜하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쉽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다.
책은 다소 두서없이 진행이 되는데,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한다.
진짜 나
누구와 결혼하든 진짜의 나를 만난다
누군가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 모습도 그에 맞춰 변하는데, 다만 그중에 어떤 모습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가짜인 것은 아니다. 다양한 모습이 전부 나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럼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아낌없이 발휘해보고 싶으니 계속해서 배우자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하고 물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겁니다. 그런 분에게는 거꾸로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은 자기 안에 자신이 아직 모르는 무수한 가능성이 잠들어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시냐고.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결혼으로 리스크 해지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플 때'와 '궁핍할 때'입니다. 결혼이라는 건 그러한 인생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안전장치인 것입니다. 결혼은 질병과 빈곤을 전제로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저자에 의하면, 결혼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것이다. 둘이 함께 힘을 합치면 위기를 더 잘 극복할 수 있다.
공개적 서약
연애와 달리 결혼은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재미있게 표현한다.
이는 다시 말해 "저희 관계는 지금까지는 사적인 것이었지만 오늘부터는 공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향후 '결혼생활 어떠세요? 잘 지내시죠?'라는 하객 여러분들의 질문에 (다소 이야기를 꾸밀지도 모릅니다만) 즉시 대답할 의무를 안게 되었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 참 시끄럽네. 남의 일에 왜 이리 참견질이야?"라는 반응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집안일
집안일을 분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방법을 제시해보지만, 결국 쉽지 않다고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전부 내가 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물론 실천은 어렵겠지만.
가정 내에서도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내가 책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있으면 더 이상 트러블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제가 이혼에 이르게 된 데는 경제력의 변화에 따라 가사 노동 분담에 관한 말다툼이 매일 같이 일어난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누가 무슨 일을 하느냐 마느냐 가지고 정말 자주 다투었지요.
이혼 후 어린 딸과 둘이서 살기 시작하니 이런 트러블은 사라졌습니다. 전부 제가 해야만 했으니까요. 가사 분담을 둘러싼 우울한 교섭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게 된 거죠. 그때서야 비로소 돈을 버는 것도 가사노동도 그 자체로는 별로 힘든 일이 아니지만, 가사노동을 가정 내에서 적절하게 분담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통감했지요.
참고로, 저자는 이혼했다.
곰인형
저자는 아내에게 자기 이야기를 조잘조잘 하길 좋아하지만, 반대로 아내의 이야기는 건성으로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걸 아주 잘 포장한다.
그러니 상대가 불평을 늘어놓을 때는 그저 이쪽은 신문을 넘기면서 "아, 그랬어"하는 반응 정도를 해주면 되지 않나요? "당신 정말 내 말을 듣고 있는 거야?"라고 상대가 추궁하면 "응, 듣고 있어. 듣고 있다구!"하고 대응하면 됩니다. "정말? 그럼 내가 5분 전부터 하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말해봐"라고 추궁하면 그때는 후다닥 무릎을 꿇고 "죄송합니다! 사실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어요"라고 사과하면 됩니다. 보통은 이런 상황까지 가는 경우는 없지요(저는 딱 한 번 딸애에게 이런 상황으로 추궁당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도 그럴 것이 독신 여성들은 집에 돌아오면 곰인형에다 대고 "오늘 참 힘들었어. 과장이란 놈이 말이야..."라며 불만을 털어놓지 않나요(제 상상에 불과합니다만). 기능적으로는 배우자도 그 곰인형과 똑같습니다.
★★★★★ 너무너무 재미있다. 지인들은 별로라고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별 다섯 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