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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l 24. 2019

우연히 만든 건물

 _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알쓸신잡」으로 유명한 유현준 교수의 책이다. 원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던 책이긴 했지만, 「알쓸신잡」 이후에 어마어마하게 잘 팔리는 책이 되었다. 건축이나 도시와 관련해서 책 한권 정도는 읽고 싶었는데, 마침 눈에 띄어서 사 읽게 되었다.


매우 읽기 쉽다. 「알쓸신잡」에서도 쉽고 재미있게 설명을 잘하던데, 그 모습 그대로다. 말로 이야기한 것을 누가 녹음했다가 적어놓은 것 같다. 읽기 쉬운 반면, 두서 없다. 체계를 정해서 진행한다기 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와장창 쏟아내고 나서 파트를 나눈 느낌이다. 그래서 비슷한 소재가 몇번 반복해서 등장하기도 한다.

재미있었던 부분 일부 소개한다.


걷고 싶은 거리


걷고 싶은 거리의 요소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중요한 것이 이벤트다. 볼 거리도 많아야 하고, 들어가고 싶은 카페도 필요하고, 건물 수, 매자의 수도 많은 것이 좋다. 홍대, 명동이 대표적인 예다. 반대로 테헤란로나 강남대로는 깨끗하고 이쁜 도로긴 하지만, 이벤트 수가 부족하다. 광화문 앞 세종로는 바꾸고 싶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우리가 세종로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려면 건축물 앞에 한 줄로 가게를 설치하고 인도 위에는 버스 정류장 외에도 노천카페를 설치하여 전체적인 공간의 속도를 낮추어 주어야 한다.


맞다. 크고 이쁜 길이지만, 그래도 왠지 걷고 싶지 않았다. 노천 카페가 들어서면 훨씬 좋을 것 같다.



로프트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자주 가는 곳이 성수동 카페다. 로프트 하면 떠오르는 데가 대림창고인데, 사실 로프트는 뉴욕이 원조다.



로프트는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건물을 말한다. 뉴욕에서는 남아도는 공장 건물을 영리하게 잘 다루었다.


초기 산업 시대에 뉴욕은 미국 최대의 항구도시였다. 그래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산업도시로서의 기능도 많이 요구되어 고밀도의 공장이 생겨났다. 그것이 지금의 소호 지역 등에 많이 지어진 높은 천장 높이의 건물들이다. 건물 안에는 방적기계 같은 큰 기계가 설치되어야 했기 때문에 기둥 간격도 넓고 천장도 높았다. 그리고 물건을 옮기기 위해서 대형 화물엘리베이터가 잇었다. 높은 천장 높이 덕분에 창문도 크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햇볕과 통풍이 잘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전에는 닭털 뽑는 공장이나 섬유공장들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2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이러한 공장들이 차차 문을 닫고 비어 있는 건물로 남게 되었다. 버려진 공장 건물들은 빈 상태로 방치되어 치안 문제가 발생하였다. 뉴욕시는 방법을 고안했다. 시는 헐값에 예술가들에게 임대해 비어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살게 하였다. 가난해서 임대로를 내기 힘든 미술가들이 이 빈 공장 건물에 대거 들어오기 시작했다. 큰 창문과 높은 천장 높이는 커다란 캔버스에서 작업해야 하는 화가들과 조각가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커다란 화물엘리베이터는 완성된 대형 그림이나 조각품을 옮기기에도 적합한 최적의 임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뒤는 일반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흐름을 따른다. 예술 작품을 사고 파는 갤러리가 주변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전시회를 보고 그림을 살 부유한 금융가들이 이사왔다. 그러면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명품샵이 들어서고, 임대료는 차츰 오른다. 예술가는 다른 곳으로 쫓겨나고, 비슷한 과정이 반복된다.



가족을 위한 아파트


한옥은 처마가 있고, 툇마루가 있다. 비 올 때 피할 수 있는 처마와 툇마루 덕분에, 집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 우리는 내부에 있지만 외부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아파트는 다르다. 창문을 통해서 바깥을 본다. 단절되어 있다. 저자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아파트를 꿈꾼다. 그래서 방의 창을 바깥이 아니라 거실을 향해서 내고 싶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집이 넓어보일 것 같다.


창문으로 연결된 공간은 적절한 사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느슨하게 관계를 형성해주는 장치이다. 부모는 안방에서 책을 읽고 있고 안방 창문을 통해서 거실 너머로 자녀 방의 창문을 통해 자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아파트, 이것이 필자가 보고 싶은 우리나라 아파트의 풍경이다. 그런 모습의 집에서는 가족끼리의 대화가 끊이지 않을 것 같다.



교회


내가 가지고 있는 교회의 이미지는 스테인드글라스다. 그런데 이는 어쩌다 보니 기술적 한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고딕 성당의 원리는 간단하다. 기독교에서 빛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따라서 더 많은 빛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큰 창문이 필요했다. ...


창문에는 유리로 창을 막아야 했는데, 당시 기술력으로는 유리를 완전한 투명판 유리로 만들기 어려웠다. 유리라는 것이 작은 조각으로만 제작이 가능했고 게다가 불순물을 정화시킬 기술도 부족했다. 유리는 불순물이 들어가면 색을 띠게 된다. 예를 들어서 철분이 많이 들어가면 녹색을 띤다.


이렇게 여러가지 색의 유리를 붙여서 그 유명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한옥


벽은 주면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지푸라기로 만들었다. 흙벽은 빗물에 씻겨 나가기 때문에 비를 피하기 위해서 처마를 만들었다. 처마를 직선으로 만드는 것이 더 힘들어서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만들었다.


건축 양식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예술적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기 보다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수긍이 간다.


이 과정에서 보이듯이 대단한 철학적인 사고 없이도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서 한옥 디자인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한계와 적용 가능한 기술을 최대한 적용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전통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속 상상을 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어떤 건물이 효율적일까, 어떤 거리가 걷기 좋을까, 어떤 도시가 재미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읽기 쉽고 재미있는 건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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